구부정한 어깨와 굽은 등, 거북목, 힘없는 걸음걸이는 30여 년 간 나의 디폴트값이었다. 평소에는 잘 의식하지 못하다가 사진 속 나를 보며 한 번씩 놀라곤 했다. 임신과 출산을 겪으면서 자세는 더욱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사진 속의 나를 마주하기가 힘들었다. 수십 장의 아까운 사진들을 서둘러 삭제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 '
바른 자세를 유지하려고 노력해 보지만 평생 동안 이어 온 습관을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아무리 어깨와 등을 펴보려고 해도 이미 굳어진 몸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역시, 답은 운동 밖에 없겠지?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게 된 뒤, 곧바로 헬스장에 등록했다. 타고난 운동신경 자체도 없었고, 꾸준히 운동을 해본 경험도 없었다. 그래도 매일같이 헬스장에 출근도장을 찍고 1시간 이상씩 운동을 했다. 이대로 몇 개월만 하면 나도 핫걸이 될 수 있겠지? 혹시 너무 근육질이 되어 보기 흉해지면 어쩌지? 내 추구미는 청순에겐녀인데, 하는 걱정도 들었지만 참으로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몇 년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근육빵빵걸은 되지 못했고, 육안상으로도 큰 변화는 없다. 오히려 운동 시작 전보다 체중이 살짝 더 늘기도 했다. 다만, 예전에 비하면 자세가 훨씬 좋아졌다. 영원히 접어져 있을 것만 같았던 내 어깨, 새우랑 친구 먹기도 가능했던 내 등이 드디어 펴진 것이다. 덩달아 키도 몇 센티가 커졌다.
바른 자세를 유지하면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잘못된 자세에서 비롯된 통증을 약화시키고, 허리디스크를 완화시키며, 혈액순환에도 기여한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바른 자세를 갖는 것만으로도 자존감이 올라간다고 한다. 당당한 자세에 당당한 정신이 깃드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스스로만 그렇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실제로 그렇게 느낀다는 것. 길을 걷는 사람들을 관찰해 보면 금방 알게 된다. 아무리 잘 차려입었어도 자세가 구부정한 사람들은 어쩐지 뽀대(?)가 나지 않는다. 근심, 걱정이 가득할 것만 같고 자신감도 없어 보인다. 반대로 추레한 행색이지만 자세는 꼿꼿한 사람을 보면, 숨겨진 뭔가가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저 나이에 어떻게 저렇게 바른 자세를 유지할까, 경외감 마저 든다.
바른 자세를 얻으면서 추가로 얻게 된 것이 있다. 바로 자신감 있는 눈빛과 목소리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것이 어려웠다. 목소리도 작았고, 말투에도 자신감이 없었다. 그런데 지난 몇 년 간, 나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언제부턴가 사람들과의 눈맞춤이 자연스러워졌다.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여유롭게 이야기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당당하게 스스로의 의사표현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자존감이 높아졌다는 증거다.
요즘 미모 대세 아이돌인 퀸, 장원영은 바른 자세로 유명하다. 잠깐씩 흐트러진 자세를 보였다가도 곧바로 허리를 곧추세우곤 한다. 스스로가 의식하며 노력한다는 뜻이다. 노력 없이 바른 자세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몇 년 간 꾸준히 운동을 해왔지만, 지금도 몸에 힘을 빼면 한없이 웅크릴 수 있다. 자세 흐트러트리기만큼 쉬운 게 또 있을까? 하지만 천년돌, 장원영도 저렇게 노력하는데 내가 뭐라고?
내가 좋아하는 노래, 카라의 '프리티걸'에 이런 가사가 나온다.
If you wanna pretty, every wanna pretty,
안 된다는 맘은, no, no, no, no
If you wanna pretty, every wanna pretty,
어디서나 당당하게 걷기.
오늘부터는 길을 걸을 때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걸어 보자. 구깃구깃한 트레이닝복에 낡은 슬리퍼 차림이라 할지라도, 마치 내가 여왕님이라도 된 듯한 느낌이 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