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 때문에 자존감이 낮아진다.
한창 자존감 열풍이 불었던 시기가 있었다. 책이나 강연에서 자존감에 관한 이야기가 밥 먹듯 쏟아져 나올 때를 다들 기억할 것이다.
사실 나도 처음 사귀었던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난 뒤 자존감이 바닥을 친 적이 있었다. 그때 무작정 자존감 관련 서적을 빌려다가 내내 읽었던 기억이 난다.
사전에 보니 자존감이란 내가 무엇이 되어서도 아니고 무엇을 해내서도 아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할 수 있을 때 올라가는 것이란다. 근데 그것이 나를 사랑하자고 주문처럼 자꾸 되뇐다고 하여 저절로 올라가는 것이라면 참 좋겠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결국 선천적으로 자존감이 부족한 사람은 후천적으로라도 자존감을 키워야 한다는 뜻인데, 그러려면 우리는 계속해서 무언가를 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나 또한 취미로 방송 댄스를 배우고 됐고, 끊임없이 책을 읽고 이렇게 글도 쓰고 있다.
내가 생각해도 예전보다는 자존감이 많이 높아진 것 같았고, 주변에서 긍정적인 성격으로 변했다는 소리도 꽤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나름대로 공을 들여 쌓아 온 자존감이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모임에 나가 나보다 훨씬 잘난 사람들을 만났을 때도 그랬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거절당하는 순간에도 어김없이 자존감은 급격히 낮아지곤 했다. 심지어 심각한 길치라서 약속 장소 코앞에서 30분 넘게 길을 헤맸을 때도 내 자존감은 낮아졌다. 남들이 보기에 별거 아닌 일에도 쉽사리 무너지는 게 그놈의 자존감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뭐지? 나는 많이 달라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어떤 한 심리학자 교수님께서 하신 말이 생각난다.
“자존감이 꼭 높아야만 하는 건가요? 그거 좀 낮다고 인생 어떻게 안 됩니다.”
너무 자존감 올리는 일에 혈안이 된 사람들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물론 그 자체는 좋은 일이지만, 그렇게 자존감에만 연연하게 되면 오히려 자존감이 낮아졌을 때 자신을 더 몰아붙이고 부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신도 아니고, 성직자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사람이기에 자존감이 올라갈 때도 있고, 낮아질 때도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자존감의 높낮이의 문제가 아니라 회복력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자존감이 낮아지더라도 오히려 그것을 인정하고 그 생각에 깊게 매몰되지 않음이 더 중요한 것 같다. 언제든지 자존감은 쉽게 회복될 수 있는 것이라 믿고, 나만의 방법으로 그 회복력을 높이는 일에 더더욱 집중해야 한다.
이제라도 자존감 자체를 절대 흔들리지 않는 감정 인양, 무겁게 포장하는 일을 관두고 생각보다 엉덩이가 가벼운 자존감이란 녀석에게 우리가 휘둘리지 않을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자존감을 높여야지! 가 아니라, 자존감 좀 낮으면 어때!라고 스스로 말할 수 있을 때야말로 진정한 자존감이 발휘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