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면접 보기
면접이라면 늘 나에게 익숙한 일이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실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던 나는 고등학교 3학년 1학기에 난생처음 면접이란 걸 보았다. 여상 출신들은 보통 은행을 많이 취직하였는데 내가 졸업하던 2000년 초반에는 은행권보다는 보험, 카드, 증권사가 대세였다. 19살 어린 마음에 돈을 많이 준다는 대기업을 어찌나 가고 싶었는지, 종이에 빼곡히 써서 면접 준비를 하였다. 면접관들이 곤란하고 어려운 질문들을 많이 한다더라, 면접관 중 한 명은 관상가가 앉아 있다더라 등등 이야기를 들으며 어찌나 떨었는지 모른다.
좋은 회사에 취직하여 부모님께 돈을 많이 가져다 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고등학교 내내 상위권 성적을 유지했고 성실한 태도로 학교 생활을 했다. 그런 내게 기회가 온 것이다. 그때 당시 가장 연봉이 높던 '삼성카드' 면접을 보게 되었다. 고졸신입사원 공채로 입사하는 것이었고 '가면접-서류심사-SAT-그룹면접-최종면접' 식의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다행히 감사하게도 나는 최종 합격을 하였고 삼성그룹의 고졸신입사원이 되어서 부모님께 많은 돈을 가져다 드린다는 목표를 이루었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로 나는 대학도 진학하고 다른 대기업으로 이직도 하기도 하는 등 진취적인 모습으로 인생을 살았고 그 과정 속에 늘 면접은 함께하는 과정이었다. 이렇게 20년도 넘은 시절부터 면접이란 걸 봐왔는데 나이 마흔둘에 또 면접준비를 해야 할 줄은 몰랐다.
마흔 넘어 미국에 온 나는 애 셋을 키우며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아 보였다. 내 전공을 살리기도 어려워 보이고 무엇보다 아이 셋을 잘 케어하는 것이 내게는 첫 번째 목표였기에 차라리 아이들이 매일 가는 학교에서 나도 일해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서는 자격이 있는 선생님들 외에 장애아동이나 특수발달을 겪는 학생들을 위한 보조교사 자리가 있었다. 이 일은 파트타임으로 자격증 없이도 지원이 가능했다. 나도 아이 셋을 키우며 학교에 봉사를 많이 다녔는데 그때마다 보조교사분들을 알게 되어 대충은 어떤 일을 하시는지 알고 있었다. 미국은 공립학교 여럿을 관리하는 School District 가 있는데 우리나라 교육청과 비슷한 개념이다. 그 디스트릭마다 채용공고를 내는 홈페이지가 있었고 그곳에 지원을 해두면 필요한 학교에서 면접을 보라고 이메일이 온다.
처음 연락이 온 곳은 동네 근처 초등학교. 하루 3시간 특수장애 아동을 맡아서 케어하는 일이었다. 면접을 오라고 해서 학교로 찾아갔는데 너무 긴장이 되었다.
나이를 먹으면, 면접을 많이 보면 긴장이 안될 줄 알았는데... 게다가 영어로 나의 의지를 표현하고 내 생각을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 큰 부담으로 느껴졌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면접 준비하겠다고 핸드폰앱하고 영어 하는 것보다는 이 편이 더 효과적일 것 같아 보였다.
부딪혀보자!
학교에 도착해서 오피스에 들러 오늘 방문한 용건을 이야기하고 인적사항을 적고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부교장이라는 젊은 백인 여성이 나와 인사를 하였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사무실로 들어가니 세 분이 앉아 계셨다. 각자 간단한 소개를 해주셨고 면접이 시작되었다.
3명이 돌아가며 질문을 하였고 총 12문제 정도 되었던 것 같다. 내가 답변하는 것을 꼼꼼하게 적으시던데 그게 규정이었던 거 같다. 그래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취조실 분위기였다. 마음속으로 계속 생각했다. '그래 이건 돈주고도 배울 만큼 귀한 시간이야. 내가 언제 미국인 셋 앞에서 이렇게 질문과 답변을 해보겠어. 최선을 다해서 내 의사를 제대로 전달만 하자. 발음 같은 건 신경 쓰지 말자.'
다행히 미국학교 선생님들은 다양한 영어 발음에 익숙하시다. 전 세계에서 오는 이민자가 많고 아이들의 다양한 발음에 익숙하셔서인지 나의 이야기도 일반의 미국인들에 비해 잘 이해하시는 것 같았다.
간단한 상황 질문에서부터 나의 목표와 인생, 가치관에 대한 질문까지 광범위하게 질문을 받고 답변을 하였다. 거의 40~50분간 지속되었던 것 같다.
결과는????
탈락이었다.
아쉬웠지만 그래도 소득이 아주 많았다.
미국에서는 이렇게 면접을 보는구나, 영어로 면접 보는 건 생각보다 더 어렵구나, 더욱 철저히 준비하고 노력해야겠다. 등등
그리고 결과와 상관없이 그냥 나 자신이 기특했다. 집에서 그냥 밥하고 애들만 키워도 되는 건데 인생에서 계속해서 도전하는 내 모습이 그냥 좋았다.
집에 와서 오늘 면접이 어땠냐고 묻는 딸들에게 엄마 영어가 너무 어려웠어라고 하니
엄마 그래도 너무 멋지다. 엄마 칠전팔기래. 이렇게 노력하다 보면 꼭 합격할 수 있을 거야.
라고 위로를 해준다. 고마워 딸들아.
그리고 여기서 이미 일하고 계신 분들의 피드백도 들어보니 큰 도움이 되었다. 한국은 겸손하게 대답하려고 하지만 미국에서는 그러지 말라고. 오히려 자신을 어필하고 더 자랑하라고. 그리고 사례 위주로 디테일하게 답변하라고 등등.. 이렇게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된다.
한발 한발 나아가다 보면 그래도 뒤돌아보았을때 조금은 성장한 나를 발견하리라 생각한다.
느려도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고 도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