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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추에서 돌아보다

나는 어디쯤 와있는가

by 시애틀 이작가

깊어지는 가을, 요즘 시애틀은 빗줄기가 예전보다 강해진 것을 느낀다. 가을이 가득함을 느낀다. 한국을 떠나 시애틀 근교에 새 보금자리를 잡고 정착한 지 2년 6개월이 흐르고 있다. 아이들은 학교생활에 빠져들고 이곳의 문화에 많이 젖어듬을 느끼고 있다.


그런데 나는...

그런데 나는...


영어? 정말 조금 늘었다. 듣는 것은 특히 많이 늘었다. 그것이 '영어 듣기'인지 '눈치 채기'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미국 사람들 뭐라고 하는지는 대부분 알아듣는다.


나의 일상?

처음에 야심 차게 랭귀지 스쿨을 다니던 이민 1년 차를 지나니 그것마저 안 하게 된다.

누군가가 그러더라. 이민 후 3년까지 늘린 영어실력이 평생의 영어실력이 된다고...

늘 똑같은 일상과 반복이다. 내 본능에 이끌려 한국 사람들과 만나고 수다 떨고 그러다 보니 점점 더 영어는 제자리걸음이고 늪에 빠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몸담고 있는 미국 봉사단체에 가서 더 열심히 활동도 해보았다. (미국인 95% 이상인 단체) 역행자가 되어보니 무언가 나자신이 뿌듯하긴 한데 또 마음이 공허했다.

대체 뭐지???

그래서 결론을 내린다. 아 나는 한발 한발 걸치고 평생 살아야 하는 팔자구나...

미국인들 사이에서 마음의 상처가 생기면

한국인들에게 달려가 위로받고

한국인들의 늪에 빠지겠다 싶을 땐

다시 미국인들 사이로 가고..

평생 냉온탕을 와리가리 해야 할 운명...


마흔이 넘어 자아성찰을 하고 인간관계 고민을 뼈저리게 하였다.

그러다 보니 어느 정도 태세전환도 할 줄 알게 되었고 중립기어 놓고 살 줄 알게 되었다.

이것 또한 나의 운명이로다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도 그렇게 사는 운명이 나쁘지만은 않다.

나는 늘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고 자아성찰을 하고 있고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경험은 아니지 않나.

감사한 것이다. 모든 것이.


그러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렇게 평생을 아이들 셋 운전사, 요리사로 살고싶지는 않았다.

미국 땅에 마흔 넘어 정착했지만 좀 늦긴 했지만 그래도 아주 늦은 것은 아니잖아?

여기는 나이도 인종도 상관없다는 자유의 나라 아닌가?

나도 무언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또 무언가가 마음속에서 꿈틀대기 시작한다.

참 나란 사람....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셋째 딸을 낳고 두 돌이 지났을 때 난 박사과정을 시작했었다.

셋째 임신 전까지는 직장생활을 해왔던 나인데, 셋까지 낳고 보니 그건 말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직장을 그만두고 큰 상실감에 빠졌었다. 그러다가 예전 직장 선배의 추천으로 한 연구실을 알게 되었고

내가 너무 연구하고 싶던 분야, 나와 너무 잘 통하는 교수님과 연구실 모든 분들. 이 모든 것이 운명처럼 느껴졌었다.

정말 열심히 했고 행복하게 학교를 다녔다.

그렇게 한 번 도전을 한 경험이 있어서일까?

미국에서도 도전을 해야할 것만 같았다. 당장 뭐라도 말이다.


그날부터 챗gpt와 많은 대화를 시작한다.

나의 학력, 경력이 담긴 resume와 cover letter를 주고 내가 이 미국 땅, 특히 시애틀에서 할 수 있는 걸 찾아달라고 했다. 물론 주변 휴먼 데이터도 유용했다. 이곳에 정착해서 일한다는 한국 엄마들이 있으면 계속 물어봤다. 전공을 살린 건지, 어떤 자격이 필요했던 건지, 어떤 준비를 했는지 등등...


그러한 시도와 노력을 하는 것에서부터 내 일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늘 똑같은 일상은 맞지만 '나는 미국에서 사회적으로 정착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일상이야'로 전환한 것이다. 운전하면서 맨날 폴킴, 포지션, 임창정 노래만 듣던 나는 미국 로컬 뉴스를 듣기 시작했고 설거지하면서 한국드라마가 아닌 미드를 보기 시작했다.


이런 노력이 과연 효과가 있을까 하면서도

이렇게라도 해야 점차 스며들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다.

역행자가 되는 삶은 순탄치 않다.

당연히 몸에서 거부반응이 올라온다. 어떤 날은 영어가 너무 듣기 싫고 미드도 보기 싫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 주말에는 꼭 보고 싶었던 한국 드라마나 예능을 본다.

일주일을 열심히 산 나에게 주는 보상이랄까.


다음 편에서는 내 인생 최초, 미국에서 면접 본 이야기를 써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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