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goes on

Ah, Free ka!

by 슈나

남아공 거기 위험한 데 아니야?


스카이프 화상 인터뷰가 다 끝나고 회사에서 나에게 진짜로 케이프타운까지 갈 수 있겠냐고 최종 확인을 했을 때, 순간 어렴풋이 들어왔던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 중 하나인 요하네스버그Johannesburg (보통 줄여서 조벅Jo’burg이라고 부른다)생각이 스쳤다. 옛날에 고등학교 때 쯤이었나, 조벅의 별명이 유령도시라고 한다는 걸 들은것도 같고..심지어 남아공 월드컵전에 케이프타운에서 지내다 왔던 아는사람은 하얀색 이어폰만 꽂고 있어도 아이폰인줄 알고 와서 핸드폰을 빼앗아간다며 겁을 주었다. 소매치기범들이 카메라를 채갈 때 간절히 부탁하면 메모리카드는 돌려주고 갈 거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들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초콜릿인지 베지마이트인지는 직접 찍어 먹어보고 판단하라는 수칙이 있다.


그래,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인데 뭐 다 똑같겠지.그리고 케이프타운은 아프리카의 유럽인걸! 어차피 난 털어갈 것도 없는데, 일단 가서 내가 직접 판단하겠다!



케이프타운은 안전하네,뭐!


하필 또 도착한 게 6월 말, 내가 이곳에 들어섰을 때는 남반구인 남아공은 겨울의 초입에 들어서고 있었다. 케이프타운의 겨울은 해가 빨리 지고 춥고 비까지 온다. 여행 다니면서 나는 시차 따위는 겪지 않는다고 자신 했었는데, 남아공은 나에게 절대라는 말을 절대로 하지 말라는 교훈을 여러 차례 몸소 가르쳐주었다.


일곱시간의 시차가 엄청나서, 처음 몇 주는 퇴근하고 저녁 7-8 쯤에는 잠이 들어버렸다.

퇴근하고 집에오면 5시 반에서 6시쯤이 되는데 그러면 한국은 자정을 넘긴 시간이 된다. 해까지 일찍 져서 어두워져 있으니 씻고나면 잠이 스르르 오고, 그렇게 잠이 들면 새벽 네다섯시에는 깬다. 그때부터 그냥 있다가 출근하고, 일찍 일어났으니 퇴근하면 피곤해져서 다시 초저녁에 잠드는 몹쓸 패턴의 반복.

초반에는 친구도 없었으니 평일엔 일하는 게 바깥생활의 전부였고, 주말에는 회사동료들 혹은 동료들의 소개로 알게 된 사람들과 주로 하우스파티를 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고마운 누군가가 집앞까지 차로 데리러 오고 집앞까지 데려다 주곤 했다. 그러니 뭐 무슨 일이 생길 것도 없었다. 게다가 처음 석달을 살았던 곳은 화장실 딸린 개인방이 여러 개 있고, 메인주방과 거실을 공유하는 쉐어하우스 형태의 롯지lodge였는데, 단기 여행자들 뿐 만 아니라 장기 거주자들도 지내고 있어서 주인뿐만 아니라 늘 사람이 있으니 보안걱정이 전혀 없었다.


그렇게 평온한 석달이 흘렀다.

원래 바깥에서 볼때는 내부사정도 잘 모르면서 다들 작은 일에도 호들갑을 떨고 언론에 보도하기 때문에, 남아공보안에 관한 소식도 오바들 한 거 였구나 하며 긴장이 서서히 풀렸다.



도둑이야!!!!!!내 핸드폰이 사라졌어요!!!!!!


타운쉽 타운쉽, 노래를 부르더니 결국 타운쉽에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타운쉽에 위치한 M'zoli's라는 정육점 겸바베큐장이랄까? 정육점에서 고기를 주문하면 직접 구워주고, 내 고기를 찾아다 먹는건데, 사람들이 많아서 고기를 주문해서 두 세 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그 옆에는 음악도 흐르고 술도 팔고 해서, 가져온 간식을 먹으며 춤추고 놀다가 고기를 먹는 그런 곳인데..드디어 거기에 놀러갔다가 우연히 동료들을 만나서 중간에 편법으로 주문도 일찍하고, 주인인 므졸리Mzoli아저씨도 직접 보고 사진도 같이 찍고 신났었는데..

사람이 굉장이 많고 시끄러워서 화장실을 갔다가 나올때는 반대쪽에서 오던 사람들과 부딪힐수 밖에 없다. 누군가가 스치는 순간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는데, 물통을 들고있어서 1초 후에 주머니를 확인했더니 있어야 할 것이 없는 허전하고 황당한 느낌,


아, 내 핸드폰을 가져갔다 하고 느낀게 불과2초도 안됐을거다.


순간 멍 해져서 앞에 가던 친구를 붙잡고, 나 핸드폰이 없어졌어,누가 소매치기했어! 라고 말하자마자 그 친구가 바로 지나가던 사람을 붙잡고 추궁했지만 당연히 범인을 잡을 리 없고..


허무하고 어이없어서 이게 꿈인가 현실인가 하다가, 저기에 있는 내 친구들이 어쨌든 찾아주겠지 하다가, 문앞에 서있는 보안요원을 붙잡고 사정을 해 봐도 결국 우린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망연자실한 나에게 어떤 여인이 다가와서 안아주면서 말했다.


"여기는 내가 나고 자란 타운쉽이야..이런일은 수도없이 벌어져. 넌 핸드폰을 잃어버린거지 네 생명이나 인생 전체를 잃어버린것도 아니잖아.어떤 사람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산 소중한 티비를 집안에서 도둑맞기도 해. 네 머리에 총을 겨누고 목숨을 위협할 수도 있어. 당연히 네 사진이랑 정보가 아까운건 나도 이해하고 유감스럽지만..그냥 fuck them! 해버리고 힘내..어쩔수가 없어..여긴 타운쉽이야.."


와, 순간 이걸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그 여인이 술에 좀 취해서 감상적이었을 수도 있고, 내가 감정이 불안해서 더 크게 와 닿았을 수도 있지만,

그래-맞다.

내가 그렇게 방문하고 싶어하던 그 타운쉽 사람들도 세상이 불공평하다 느낄거다.

다른 사람들은 돈 많은 백인으로 태어나서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는데, 불행한 흑인으로 태어나서 왜 이렇게 사는게 힘든지..도둑질을하게 만드는 현실이 나쁜거지..그냥 내 기계를 기증하고 왔다고 생각하자.

..아니 근데 왜 하필 나야? 고기먹고 술먹고 웃고 떠드는 저 사람들은 아이패드를 들고 다니며 사진 찍어도 멀쩡한데, 왜 하필 내거야?

..근데 또 생각해보면 굳이 내가 아니라는 법도 없으니까..


늘 외치는 게 세상에 죽는 거 빼곤 큰 일이 없다는 건데, 고작 손바닥만한 기계하나에 집착하는 내 자신에게 화가 났다. 그렇게 마음을 다스리다가도 소중한 내 물건을 누가 가져갔다는 사실에 다시 화가 치밀어 올랐다.


마침 그런 날 위해 2PAC이 노래했다.

Life goes on.



다음 날,

회사에 가서 이야기를 하자, 프리토리아에서온 동료는 핸드폰만 귀엽게 가져간게 다행이라고 했다. 자기는 운전하다가 차가 잠깐 선 순간 창문으로 손이 들어와 핸드폰을 잡아 채가는 바람에 핸드폰도 빼앗기고 손도 다쳤다고 했다. 나보다 먼저 와 있던 일본인 동료가 집에서 자는 사이에 도둑이 들어 컴퓨터와 핸드폰을 빼앗아갔는데, 더 무서운 건 도둑이 핸드폰을 가져가려고 침대로 접근하는 순간 잠이 깬 동료가 도둑의 얼굴과 맞닥뜨렸다는 거였다.


바로 전 날,

같은 집 아주머니께서 공동부엌에서 나를 보고

"핸드폰 잠깐이라도 안보면 큰일날것같지~"

하고 농담하고 지나가셨을 때, 이건 아니다 싶긴 했었다.


스마트폰에 고개를 파묻고 사는 사람들을 보고, 난 절대 카톡에 매달려 살지 말아야지 하면서 끝까지 고집하다가 결국 호주 가기전에 어쩔 수 없이 산 뒤늦은 스마트폰이었다.

처음엔 절대로 핸드폰의 노예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는데, 나도 모르게 중독되고 말았다. 혼자 있을때는 책보다 항상 핸드폰,자기전에도 그리고자다 잠깐 깨어도, 혼자 밥먹을때도, 집에 있을때도 다른 사람들과 어색하면,무리의 사람들과 있을때는 나도 모르게 메신저 확인..핸드폰에 메모하면서부터 손글씨가 게을러졌고, 그렇게 좋아하던 책 대신 시시껄렁한 기사나 보고, 페이스북에 매달리고..

이건 이제 그만 핸드폰 내려놓고 책보고 생각하라는 신의 계시인 것 같았다.



..그리고 며칠 후,

회사 주차장에 세워놓았던 동료의차 창문을 누가 부수고 라디오를 훔쳐갔다. 모두가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던 대낮에 벌어진 일이었다.



난 이제 아무도 안믿어, 흑인은 꼴도 보기싫어!


롯지에서 석달을 지내고 집다운 집을 찾아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가기로 했었는데,공교롭게도 핸드폰 소매치기 사건과 시기가 겹쳤다. 게다가 방이 네 개인데,주인언니는 다른 집이 또 있어서 이 집에는 한달에 두세번 올까말까 한단다. 그럼 나와 남아공 남자애밖에 안 사는데, 이 남자는 직업이 교사라 학교 방학이 시작되니 내가 이사를 들어오자마자 몇 주간 집을 비운단다.

이제 나는 안전하다고 느꼈던 롯지를 벗어나서, 키 한꾸러미를 들고 다니며 현관문과 덧문을 꼭꼭 잠그고 집을 나설때마다 보안알람을 설정하고 들어올때는 다시 해제해야 하는 습관을 들여야했으며, 혼자 기차를 타고 출퇴근을 해야 하니 기차역까지 걸어다녀야 하는데, 길에서는 물론 기차 안에서도 경계를 늦출 수 없다. 길거리를 걸으면서는 수상한 사람이 접근하지않는지 주위를 살펴야하니 음악을 들으며 걷는 건 상상도 못하고, 기차안에서는 누가 내 핸드폰을 보고 빼앗아갈까봐 가방밖으로 꺼낼수도 없었다. 뒤에서 누군가 기척이 있으면 나도 모르게 가방을 움켜쥐고 걸음은 점점 빨라졌다.


길거리의 모든 사람들이 다 도둑처럼 보였다.

이렇게 불안에 떨고 경계하는 내 모습은 당연히 사람들에게도 전해져서, 누군가 내 옆을 지나가기만 해도 깜짝 놀라니, 지나가던 사람들도 결백을 주장하듯 양손을 번쩍 들고 미안하다고 말하며 바닷물이 갈라지는 것 처럼 옆으로 비켜서는 경우도 있었다.


하아..

이 나라 괜히 왔어..

가뜩이나 차도 없어서 대중교통 수단은 불안해 죽겠는데, 집에서마저 작은 소리에도 불안해서 잠이 깨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비밀번호를입력하기 전에 울리는 삐익- 지긋지긋한 알람 소리. 한국에선 열쇠를 가지고 다녔던 때가 언젠지 기억도 안나는데 이놈의 열쇠 꾸러미는 무거워죽겠고, 기차는 또 왜 시간 맞춰 오지도 않고 심심하면 중간에 멈춰서서 출근시간 늦게 만드는지..


이러다 나는 신경쇠약에 말라 죽는.....건 아닌.........하긴, 그건 아니다.

처음 오자마자 슈퍼마켓을 돌아보는데 귀여운 군것질거리 두 개가 눈에 들어왔는데, 맨날 그걸 사먹고 있으니 살이 쪄서 몸이 말라 죽을일은 없고, 신경쇠약에 피가 말라 죽을 것 같다고 할까나?

감자칩 이름이 심바Simba인데 귀여운 사자까지 그려져 있어서 한 눈에 반했고, 그 다음 사랑에 빠진 건 정글에너지..시리얼 이름이 정글이라니, 아마존같긴 하지만 아프리카 느낌이 물씬 풍기니 안 먹어 줄 수가 없었다.





심바와 정글에너지가 맛있긴 해도 그냥 고집대로 남아공 온 것 자체가 후회투성이였다.

적어도 일년은 살아봐야 하니 여기서 그만둘 순 없겠고, 쓸 수 있는 휴일을 전부 모아서 한국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친구들이 나는 늘 한국을 벗어나야 행복해 보인다고 말했었는데, 아프리카도 처음, 이렇게 외국에서 목숨이 위태롭게 느껴진 것도 처음, 대한민국이 이렇게 그리웠던 적 또한 처음이었다.


그런데 이런 향수병 아닌 향수병이 발발했을 때, 옆 나라 보츠와나 환경보호 프로젝트를 둘러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일단 이 나라를 벗어나고 싶긴 했지만..

이번엔 뭐야....보츠와나라니...

샤워와 머리감기에 집착하느라 이제까지 캠핑도 단 하루만 해봤던 나인데..

야생동물 보호구역에서 텐트치고 자는 보츠와나라니..

....수돗물은? 화장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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