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츠와나는 또 뭐야?

Ah, Free ka!

by 슈나

저보고 보츠와나를 가라구요?


케이프타운에 온지 석달이 넘어가면서 케이프타운에 대한 불신이 싹터갈 때쯤 한국 지사장님을 대신해서 보츠와나 환경보호 프로젝트를 둘러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일단 '이 위험한' 케이프타운을 벗어나는 것 만으로도 너무 반가웠지만, 사실 당시 나의 두려움과 증오(이 분노의 씨앗은 전편에)는 아프리카 전역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래서 아프리카 다른 나라 여행도 관심이 전혀 없었고, 어떻게해서든 살기좋은 아시아로 탈출해야 겠다는 마음 뿐이었다. 처음으로 ‘아프리카다운 아프리카’를 가게 된건데, 남아공도 사전지식 하나도 없이 온거라 남부 아프리카에 대한 정보가 있을리 만무했다. 그저 회사 스케줄에 따라가는 바보여행, 심지어 픽업부터 숙식까지 전부 회사에서 준비하기 때문에 환전은 커녕 가서 쓸 용돈조차 준비하지 않았다. 회사에서 한국인은 나밖에 없기 때문에 한국여권 소지자로서 보츠와나를 방문할때에는 별도의 수수료 없이 국경에서 90일 체류 도장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만 다시 확인하였다. 덜컹덜컹 지프를 타고 몇시간 씩 이동하는 것도, 텐트에서 자는 것도 다 괜찮았는데, 우려했던 대로 캠프시설 내에서는 샤워가 불가능했다.


리얼 버켓챌린지, 안 해봤으면 말도 말아요~

예전에 인도에서도 심지어 네팔에서도, 샤워중에 정전이 되면 되었지 물은 줄줄 잘 나왔는데, 여기서 생전 처음으로 양동이 샤워를 경험해야 했다.양동이에 물을 미리 담아서 조금 떨어진 샤워장으로 가는데, 당연히 누군가가 날 위해 물을 계속 운반해주지 않는 한 길어온 물 이외에는 씻는 도중에 물이 모자라도 더 이상 사용하기가 불가능했다. 세수하고 머리 감고 샤워도 하려면 아무리 아껴써도 최소 두 양동이가 필요한데, 문제는 길이 어두워서 한 손으로는 손전등도 비춰야 한다. 그런데 양동이 하나로는 어떻게 해도 불가능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양 손에 물을 하나씩 들고, 손전등은 입에 물고 최대한 빠르게 걸어간다. 가는길에 흔들려서 조금씩 쏟는 물이 피같이 아까워서 조심조심 하는데, 유명인사들이 했던 버켓챌린지, 그들이 시원하게 쏟아버렸던 물이 어찌나 아깝던지..그렇게 샤워를 끝내면 개운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사람의 적응력은 무섭다. 마지막날은 심지어 두 양동이의 물이 충분함을 넘어서 많다고까지 느껴졌다.


보츠와나는 동물사랑


가까이서 사자나 표범, 기린을 만나고 멋진 사진을찍는 모습을 기대했건만, 웬걸, 막상 방문한 프로젝트에서는 담당자가 도착하자마자 우리에게 주의를 주었다.


1. 절대로 야생동물 가까이 다가가지 말 것

2. 동물들을 자극하는 원색의 옷을 입고 다니지 말 것

3. 소리 지르지 말고 만지지 말 것!


우리는 잠시 그들의 영역을 방문하는 것 뿐이니, 최대한 이 영역의 주인들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머물다가 쓰레기 대신 발자국만 남기고 추억과 사진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가져가지 말아야 한다고.


캠프장에서부터 활동을 하러 지프를 타고 이동하는 길이 바로 사파리였다. 단, 동물을 모아놓은 거대한 동물원 방식의 사파리가 아닌 보호구역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길 가다가 코끼리가 길을 막으면 스스로 비켜줄 때 까지 기다리고, 혹시나 표범이 보이지 않을까 한시간이 넘게 숨죽이고 기다려도 운이 좋아야 볼까말까 하는 리얼 야생 현장이었다.


그때까지도 나의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은, 조벅의 라이온파크에서 사자와 찍은 셀카였다. 그리고 태국에서는 ‘당연히’ 코끼리를 타봤고, 케이프타운에서는 치타농장을 방문해서 치타를 쓰다듬으며 사진을 찍기도 했었다. 그리고 더욱 와일드 한 아프리카 경험을 위해서 상어 케이지 다이빙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프로젝트 담당자가 마지막 날에 함께한 질의응답 시간에, 샤크 케이지 다이빙에 대한 반대 의견을 표명하고 그것을 계기로 나는 야생동물 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상어를 가까이 보고싶어하는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공적으로 상어를 유인해서 철장으로 다가오게 하는 잔인한 프로그램을 절대로 참가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돌고래쇼를 반대하는 기사를 읽고는 그동안 무지했던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돌고래랑 수영하는 프로그램을 광고하는 곳들 대부분은 바다라고 하지만 결국 바닷속에 어장을 설치해서 돌고래를 가둬놓고 키우는 거라고 한다. 사실 돌고래는 그렇게 인간친화적인 동물이 아니고, 돌고래가 사람을 향해 웃고 있는 모습이라고 하지만 그건 사실 그냥 턱 구조가 그렇게 만들어진 것 뿐 이라고. 돌고래들은 음파에 상당히 예민하다는 것 까지는 모두가 알고 있지만 사람들이 환호하는 박수소리가 돌고래의 청각을 힘들게 한다는 것은 아무도 배려하지 않는다.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여기에서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채식주의자가 되어 볼까?


구름조차 로맨틱한 아프리카에 살면서, 아름다운 바다와 하늘, 반짝반짝 빛나는 태양을 실컷 즐기다보면 나도 모르게 자연의 변화를 눈여겨보고 파도소리에 귀 기울이게 된다. 게다가 케이프타운에는 유난히 애견족과 베지테리언이 많다.


예전엔 베지테리안들은 그저 편식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지내면서 생명의 소중함을 배우고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다보니 고기를 멀리 하는 사람들이 존경스럽게 느껴지면 나 역시 채식을 할까 말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사실, 먹을거라면 무엇이든 대환영이라서 누군가가나에게 식단을 물으면 말 그대로 아무거나를 주문하는 자신이 조금 재미없게 느껴졌다. 나는 이것도 안먹고 저것도 꺼린다, 라고 조금 까탈을 부려보고 싶달까. 해산물도 좋아하니깐 해산물까지는 허용하는 페스커테리안이 될 생각도 했지만, 어차피 물고기도 생명인데 물고기 먹는김에 그냥 고기도 먹자..라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고 말았지만. 내 신체는 양질의 단백질을 원하고, 그 단백질은 화학적 방법보다 음식으로 섭취하고 싶다!는 게 나의 변명이기는 하다.


보츠와나를 다녀와서 다시 아프리카에 대한 관심이 개미 한입 만큼 씩 샘솟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보호구역을 다녀온 것 뿐이라서 보츠와나 거주자들이라면 동물들만 보았지, 보츠와나 사람들을 만나보지 못해서 다음에는 수도인 가보로네로 여행을 한번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그로부터 1년 2개월 후에 진짜로 가보로네를 다녀왔다. 당연히 그곳의 숙소에서는 샤워시설이 만족스러웠다!)



다시 돌아온 케이프타운은 여전히 두렵기는 하지만, 서서히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해가 길어지니 퇴근후에도 아직 밝아서 조깅을 나갈 수도 있고, 금요일마다 열리는 푸드마켓에서 친구들을 만나는 재미도 쏠쏠했다. 무엇보다도 주말마다 와인팜으로 와인테이스팅을 하러 다니는 재미에 푹 빠져버렸다. 날씨가 좋으니 풍경을 즐기며 30분 정도 차를 타고 가면, 수 많은 와인농장이 펼쳐지고, 그 중에 마음에 드는 곳에 가서 30-50랜드(약 3-4천원 정도)를 내면 서너가지 와인을 마셔볼 수 있다. 게다가 듣던대로 50랜드(약 4-5천원)정도면 정말 괜찮은 와인을 살 수가 있다. 한국에서는 만원짜리 와인은 마셔줄 수 없을 정도지만, 여기에서 만원짜리 와인은 상급이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면서 마셔본 와인보다, 케이프타운에 살면서 일년동안 마신 와인양이 훨씬 더 많은 것 같다. 와인을 반병정도 마시고 나면, 집에 도둑이 들어도 때려 잡..지는 못하겠지만 설득해서 내보낼 수 있겠다는용기가 생겨서 조금 덜 무서워진다. 그렇게 케이프타운에 조금씩 정을 붙여가고 있었다.


...그로부터 한달 후 한국을 다녀오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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