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객은 알지 못하는
케이프타운 사람들에 관하여

Ah, Free ka!

by 슈나

당신의 여행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나는 시골에서 자라서 그런지 경치 좋은 것에도 무덤덤하고, 맛있는 음식도 별로 관심이 없어. 그런데도 여행을 하겠다고 나선 게 웃기지? 그냥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다니는 것 같아.

세계일주를 하는 일본인 카우치서퍼에게 여행을 왜 시작했냐고 묻자 하소연하듯 말문이 터졌다.

아시아와 러시아, 중동, 유럽을거쳐 이곳까지 오는 동안 수없이 카우치서핑을 해왔는데, 케이프타운만큼 어려웠던 적도 드물었다고.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가 겹쳐서 시기가 안 좋았던 것은 알지만 되는지 안 되는지 답변도 받기 힘들었는데 승락을해놓고도 막상 연락을 끊어버리기도 했다고..


주변 사람들에 의하면 케이프타운은 조벅보다 오히려 친구 사귀기가 쉽지 않은 곳이라고 한다.

나도 회사동료를 통해서, 그 친구들의 친구로 알음알음 사람들을 사귀기 시작할 수 있었다. 아시아와 달리 밤문화가 없다보니 브라이 등 하우스파티가 흔한데, 당연히 그런 자리는 아는 사람끼리만 하게 된다. 펍이나 식당에서도 단체로 온 사람들이 많고, 그런 사람들은 당연히 자기들끼리 즐기지 펍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다. 치안에 대한 우려 때문에 사람들이 경계를 해서 그런지, 나 같아도 낯선 사람들을 들이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순수한 현지인들을 만나러 아프리카에 온 관광객들은 케이프타운에 도착하면 생각보다 실망할 지 모른다. 일단 여기는 그들이 생각하는 '진정한' 아프리카가 아니다. 생활방식이 서양에 더 가깝고, 음식도 상당히 서구적이다. 아프리카 음식을 먹고 싶다고? 주위에서 흔히 보이는 식당은 우리나라처럼 피자 파스타의 이태리 음식이나 서양식 브런치집, 스테이크 하우스이다.

동양인을 보면 무조건 "차이나, 헬로 차이나!"를 외친다. 처음 한두번은 나는 차이니즈 아니라고 설명하지만 듣기좋은 꽃노래도 한두번이라는데, 하루에도 서너번 듣다보면 대답은 커녕 쳐다도 안보게 된다.


이곳 사람들 흉보기


땅이 넓어 마음도 느긋한지, 이곳 사람들은 참 여유롭다.

쇼핑센터나 식당은 물론이고 심지어 관공서도 그러니 우리 같은 사람들은 답답해 죽는다. 마트에서도 계산대에는 항상 줄이 길게 늘어서 있는데, 계산하는 사람은 전혀 급할 게 없고, 손님도 지불하는 돈을 동전으로 하나씩 세면서 여유를 부리고, 그렇게 드디어 계산이 다 되었나 싶으면 또 그걸 느릿느릿 봉지에 담아주고 있다. 아놔, 그냥 손님이 동전 찾는 틈에 잽싸게 봉투에 담아도 될걸, 아니 그리고, 줄이 얼마나 긴데 동전을 세고 있어 그냥 지폐로 좀 내지! 계산 끝났으면 자기가 직접 좀 담아 챙기면 빠를 걸 왜 저러는거야 대체….!


....왜 저러는 거냐고? 나중에나 한국에 돌아가서 홈플러스 갔을 때 대한민국의 빠른 서비스에 감동해서 애국심 솟아 나라고!


우리에게 코리안 타임이 있듯이 이곳에도 아프리칸 타임이 존재한다. 그리고 아프리칸 타임은 우리의 시간보다 훨씬 더 고무줄 같아서 미치고 팔짝 뛸 때가 종종 있다. 오죽했으면 남아공 사람과 결혼하는 독일인 친구는 결혼식날 신랑이 늦지 않을까 지금부터 걱정을 하고 있다.

6시에 시작한다는 브라이(바베큐)에 초대받아도 어느 누구도 6시부터 식사를 할 거라도 예상하지 않는다. 일단 사람들은 7시가 다 되어야 모이고, 그때부터 음료수를 마시며 분위기를 돋우다가, 그제야 불을 지피기시작하고 결국에 고기는 10시가 다 되어 먹게 된다.


사람들의 의식은 서양과 비슷해서, 본인의 감정표현이 확실하지만 생각보다 동양적인 배려도 함께 가지고 있다는 점에 약간 놀랐다.


이곳 사람들 이야기


노인을 공경하는 것이 우리와 같다.

기차에서도 노약자를 위해 선뜻 자리를 내주는 게 자연스러워서 한국과 비슷한 풍경이 펼쳐진다. 그리고 미니버스 안에서도 어르신들이나 여자들, 어린아이들에게는 당연하게 자리를 만들어 앉혀준다. 느려 터진게 단점이라면 그만큼 여유가 있어서 남을 도와주는 데에도 너그럽다. 외국인이 헤매는 모습이 보이거나 현지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친절히 도와준다.


빈부 차이가 심한 만큼 나보다 상황이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어야한다는 마음도 당연시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작년 3월에, 케이프타운에 커다란 산불이 났을 때, 소방서는 음식과 물품을 기증하러 온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산불의 피해로 보금자리를 잃은 이웃과 열심히 일 해주고 있는 소방관들에게 가장 필요한 물건들이 무엇인지 SNS로 공유해서 개인이나 단체가 자발적으로 돕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케이프타운 카니발에서는 시민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서 현직 소방관들이 Thank you 현수막을 들고 행진에 나서서 큰 호응을 받았었다.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핑 도는 감동적인 장면이었고, 그런 아름다운 케이프타운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크리스마스에는 크고 작은 단체들이 앞을 다투어 혜택받지 못한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전해주자는 산타 이벤트가 펼쳐진다. 내가 이번에 참여했던 곳은 두 군데였다. 한 군데는 우리 회사에서 근처 타운쉽 아이들을 위해 진행했던 프로젝트로, 방학기간에 아이들이 할일이 없어서 회사 자체에서 작은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선물을 나누어주는 행사여서 가볍게 참여했다. 또 한군데는 Santa shoe box 라고, 남아공에서 시작되어 나미비아로 까지 활동하고 있는 꽤 유명한 곳이다. 2006년에 케이프타운에서 180개 상자로 시작되어, 제작년엔 109,930개, 작년엔 조금 덜 모였는데 95,975의 신발박스가 전달되었다고 한다. 이름처럼 신발박스를 꾸미고 필수물품을 채워서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배달 해 주는 건데, 선물을 맞게 준비해야 하니까 성별과 연령, 그리고 이름까지는 고를 순 있는데 그 밖에 아이들의 신상명세는 공개가 되지 않는다. 크리스마스라고 해도 한국이라면 가족이나 친구끼리 케잌먹는다는 생각밖에 없었는데,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남을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이토록 진지하게 고민하며 준비했던 적이 있나 싶었다.




순수한 현지인들을 만나러 아프리카에 온다면, 실망하기 전에 꼭 미리 생각해 보아야 할 몇가지가 있다.


(다음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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