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슈나 Apr 26. 2023

라마단을 대하는 태도

삐뚤어진 마음으로 라마단을 대하는 나의 태도 

 여기에서 이슬람 사원의 기도소리에 노이로제가 걸려서 나는 이슬람교에 대해 악감정이 생겨버렸다. 그래서 한달 동안 금식을 하는 라마단도 매우 어리석은 식습관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해가 뜬 이후부터 해가 질 때까지 음식은 커녕 물조차 마시지 않는다는데, 그냥 밤낮을 바꿔서 사는 것 같다. 밤에는 보통 잠을 자니까 안 먹는 게 당연하지만, 라마단 기간에도 낮에는 일을 해야 하는데 이 더운 나라에서 영양소 섭취를 제한하는 것은 물론이고 물조차 마시지 않는 것이 대체 무엇을 위한 기도와 고행인지 모르겠다. 물론 학생들에게는 이런 마음을 감추고 금식 파이팅!을 외친다. 족자 여행중에 박피아를 사서 숙소에 들어갔는데 직원들이 앉아있길래 권했더니 금식중이라고 해서 아차 싶었다.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근데 박피아는 금방 만든거라 따뜻할 때 먹어야 맛있는뎅 아쉽네…


 금식 기간에 한 시간 정도 단축 근무를 하던데, 그 정도로 에너지를 아끼는데 도움이 되려나 싶다. 금식 기간엔 사람들이 여행을 덜 다녀서 기차나 쇼핑몰이 한산해지고, 와룽warung이나 데폿depot (작은 현지식 식당당)은 문을 닫기도 한다. 사람이 적은 건 좋은데 유명한 와룽이 문을 닫는 경우가 있으니 여행자에겐 좋은건지 나쁜건지 모르겠다. 

딱 하나 좋은 게 있었다. 노을을 보며 음료를 마시려고 호텔 루프탑바에 올라갔는데 구름이 많아서 해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날의 노을은 굳이 높은 데서 안 봐도 될 것 같아서 내려갈까 말까 고민하는데, 이미 일몰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이 와 앉아있어서 호텔측에서도 주문을 아직 안해도 재촉하는 게 전혀 없었다. 나 또한 한참을 (별로인)노을을 보며 그냥 앉아있다가 내려왔다. 히히


 라마단 기간에는 슈퍼마켓에서 술을 팔지 않는다. 

마트의 맥주코너가 휴지로 채워진 걸 본 순간 아차 싶었다. 잠깐 스쳤던 수라바야 선배님이 맥주는 미리 사다 놓으라고 하셨는데, 한동안 몸이 아파서 할 일을 못했다…ㅠㅠ 외국인이 좀 많이 가는 슈퍼마켓에 가봐도 술코너에 술이 없었다. 외국인이 더 많이 가는 마트를 갔는데도 역시나 없길래 직원에게 물어봤더니 규정상 한달간 술을 팔지 않는다고 했다. 상심했다. 발리에선 혼자서 밥먹고 술마시는 게 아무렇지 않은데 왠지 자와에서는 혼술이 눈치가 보인다. 그래서 집에서 편히 마시고 싶은데 맥주 한 캔의 여유조차 갖을 수 없다니 이슬람교가 원망스러웠다. 무슬림들은 어차피 술을 마시지 않으니 상관이 없겠지... 쳇! 

거의 포기하고 지내다가 어느날 슈퍼마켓에 간 김에 혹시나 싶어 직원에게 물어보니 맥주가 있다고 했다! 전시를 해 두고 소비를 장려하진 않으나 물어보는 사람에겐 파는 것 같았다. 구세주 같던 직원분께서는 창고에서 맥주 두 캔을 꺼내 와 주스 박스에 넣어 나에게 주셨는데, 아무래도 빈탕 두 캔은 부족할 것 같아서 발리하이를 두 캔 더 달라고 했다. 옆에서 서성이던 아저씨들이 그걸 보더니 직원분께 뭐라고 뭐라고 말씀하셨다. 잠시 후 다시 돌아온 직원은 발리하이 두 캔을 나에게, 맥주 한 박스를 아저씨들에게 넘겼다. 각자의 술을 받은 아저씨들과 나의 눈이 마주치고, 우리는 서로 반가운 눈빛을 교환하며 서로를 향해 엄지척을 날렸다. 만족스러운 쇼핑이었다.


 적도의 나라다보니 해도 되게 일찍 뜬다. 4시 반에 해가 뜨기 때문에 그 전에 아침을 먹고 다시 잔다고 한다. 먹고 바로 자면 소 되ㄴ…역류성 식도염 걸리는데…

오후 5시 반 정도에 해가지고 난 후에 음식을 먹을 수 있다. 부카 뿌아사라고 하는데, 부카buka는 열다, 뿌아사 puasa는 금식이라, 처음 이 어휘를 들었을 때는 금식을 연다고 생각해서 금식을 시작하는 것인 줄 알았지만 반대였다. 금식을 깬다고 해야 하나, 금식을 멈추고 음식을 먹기 시작하는 것이다. 빈 속에 바로 먹으면 안되니까 Takjil 이라고 간단한 견과류나 튀김 정도를 먹으며 슬슬 시동을 걸고 본격적인 식사를 하는데, 어떤 식당에서는 이 가벼운 스낵을 무료로 제공하기도 한다. 


 나의 일터는 오후 수업이 있으니 오전 11시쯤 출근을 해서 오후 8시 반쯤에 퇴근을 한다. 그래서 무슬림 선생님이나 직원은 해가 진 5시 반 쯤부터 식사를 한다. 학생들도 그러하니 자연스레 6시 수업은 약 5-10분 정도 미뤄지게 된다. 인니 타임은 코리안 타임 정도는 갖다 붙일 것도 못된다. 라마단 기간엔 수업을 6시 10분에 시작한다고 공식적으로 알린다면 이들은 분명 6시 15분이 넘어서 들어올 것이다. 그래서 부카 뿌아사가 필요없는 나는 6시부터 교실에 들어가고, 이미 와 있는 학생들과 조금 기다리고, 그리고 바로 진도를 나가면 늦게 온 학생들은 어려워하기 때문에 또 복습을 하며 조금 더 기다린다..으 짜ㅈ…아니, 종교의 자유….

그래서 이 종교를 가진 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오후 6시 수업엔 내가 Takjil을 준비하기도 했다. 뭐 이참에 나도 간식으로 달콤한 케이크 좀 먹고...


 무슬림 중에도 금식을 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월경을 하거나 모유 수유를 하고 있는 여성이나 아이들은 금식을 하지 않아도 된다. 직원의 초등학생 딸도 금식을 하겠다고 하여 성공하면 핸드폰을 새로 사 준다고 말했단다. 의아했다. 성장기의 아이인데 이게 괜찮은건가? 말려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기특하게 생각하여 격려하는 직원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건 내 생각이고…



 

 한달간의 금식이 끝나고 이슬람 최대 명절인 르바란lebaran이 왔다. 민족 대 이동의 시간. 

Mohon Maaf Lahir dan Batin 모혼 마아프 라히르 단 바틴

그동안 내가 저지른 죄(라히르 lahir, 출현하다)와 직접 행하진 않았지만 나쁜 마음을 먹고 있었던 것(바틴 batin, 내면적인)까지 사과한다는 의미인데, 아직 우리나라말로 다듬어진 번역을 본 적이 없어서 번역가 친구에게 숙제로 넘겼다. 인니어를 전혀 모르는데도 개떡같이 설명하니 찰떡 같은 번역문이 돌아왔다. 


내면의 악과 외면의 죄를 너그러이 용서해 주세요. 

*아직 저지르지 않은 죄(batin)를 내면의 악으로 표현함. 


솔직히 말하면 서로 이렇게 인사하며 용서의 시간을 갖는 것 조차 탐탁치 않았다. 그냥 말 한마디로 책임감 없이 넘어간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의 마음이 아직 부족하다.   

작가의 이전글 인도네시아가 싫어진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