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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나 May 18. 2023

한국어 교원으로 살아남기 4

한국어 선생님은 영어를 잘 해야 하나요? 


 누군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우리나라에서 꽤 유명한 외국인(한국어를 매우 잘함) 누군가가 어떤 예능에 나와서 예전에 한국에서 어학당에 다녔을 때 한국인 선생님이 영어를 전혀 못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완전 기초단계였는데도 한국어 선생님이 한국어로만 설명을 했었다고. 지금 생각해도 자기들이 어떻게 한국어를 배웠는지 신기하다고...

그 선생님을 비하하려던 게 포인트가 아니었다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말 그대로 티비 속에 들어가 그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한국인이 외국에 어학연수를 가면 현지 선생님들이 한국어로 설명해 줍니까?"

그 선생님이 영어를 못하신건지, 일부러 안하신건지 알기나 하냐고..


국내 어학당 선생님들은 수업 시간에 한국어로 설명해야 한다. 

현지 어학당인만큼 기초부터 현지어로 배우는 게 당연하기도 하고.

어학당에 오는 학생들이 영어권 화자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 아닐까?

다양한 언어 화자들이 섞여 있는 상황에서 선생님이 답답하다고 문법을 영어로 설명해주면

영어 화자들에게만 꿀이고 다른 언어 화자들은 소외될 수 있으니까...


외국에 있는 한국어 학당에는 보통 그 나라 언어권 사람들 대상이기 때문에

(당연히)현지어 가능자를 우대하거나 영어를 잘하면 가산점을 주긴 한다.


한국어 선생님은 '발화 통제'라는 것을 한다.

학습자들의 단계에 맞는 문법과 어휘를 사용해서 한국어로 한국어를 설명하는 것이다.

초급자들에겐 아직 배우지 않은 조사나 시제를 사용하지 않고 아주 기본적인 구조로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초급)학생들도 원어민 선생님하고는 말이 통할 수 있다.   

설명을 끝내고 잘 알아 들었는지 물어볼 때도 기초 단계에서는 '**씨, 이해가 되셨나요?'라고 하지 않는다.

'되다'는 물론이고 '-시다'도 안배웠고 과거형도 안배웠으며 '-나요'의 어감도 이해할 수 없고 물론 '이해'라는 어휘도 아직 모르니까. 그래서 많은 한국어 선생님들이 대안으로 선택한 것이 "괜찮아요?"다.

괜찮아요, 정도는 초반에 인사와 함께 통째로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초반 수업만 많이 맡은 학기에는 하루종일 쉬운 문형으로만 바꿔 말하다가 현타가 올 때가 있다.


물론, 영어를 할 수 있다면 수업이 편해지기는 한다.

아무래도 세계공통어다보니 간단한 단어는 그냥 영단어로 말해주거나 영어로 설명하면 간단하게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이라면 아무래도 언어에 관심이 있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기초 영어정도는 이미 잘하는 학생들이 많기는 하다.

다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한국어 학습자 중에는 모국어 이외에 그들에게 편한 제1 외국어가 영어가 아닌 경우도 있다는 사실. 그것을 간과하고 영어를 주 언어로 수업을 하게된다면 일부 학생을 소외시키게 되는거다.


나는

한글을 가르칠 때는 어쩔 수 없이 영어를 섞어서 설명을 하지만

기초반의 중반에 들어서면 웬만하면 한국어로 설명을 하는 편이다.

오히려 중급반 이후로 어휘가 어려워지면 현지어 사전을 찾아서 보여주긴 한다.

일단 한국어로 설명을 하고, 영어를 조금 써 보고, 학생들이 대충 이해가 되는 것 같다 싶으면

영어-현지어 사전에서 찾은 단어를 보여주며 학생들에게 이게 맞는 것 같은지 물어본다.

(한국어-현지어 사전은 엉뚱한 말을 알려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한국어로 수업을 하다보니 매 학기 마다

수업 내용을 영어로 설명해 달라고 말하는 학생들이 한둘 씩은 꼭 나타난다.

내가 일했던, 지금 일하는 곳들은 모두 영어권 국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선생이 본인들 모국어를 모른다는 것은 너그럽게 넘어갔지만, 한국어로만 설명을 듣기엔 답답했나 보다. ㅎㅎ


하지만 난 절대로 그들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다. 


저는 한국어로 설명할 거예요.

어려우면 다시 한번 설명할 거예요. 한국어로. 

그래도 모른다면 여러번 되풀이해서 설명할 거예요. 물론 한국어로. 

그래도 정 이해가 안될때는 영어를 사용하겠지만

여러분은 대부분의 설명을 한국어로 들을 거예요.

제 말을 모두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중요한 내용만 이해하세요.

여러분이 한국어에 최대한 노출되는 게 제 목표이기 때문이에요. 

여러분에겐 듣기 연습이에요. 

만약 제가 여러분의 언어나 영어로 설명하길 원한다면

제가 아닌

현지인 선생님에게 수업을 들으세요.


라고,

영어로 이야기 했다는 게 함정이다. 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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