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속 왕국 레소토를 아시나요?

1박 4일 남 아프리카 레소토 여행

by 슈나
"오늘 나미비아 비자 거부당했어. 내일 당장 레소토라도 가야할 것 같아."


스와질랜드에서 세계여행을 하고 있던 한국분을 만났었다.

자동차로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중인데 남아공으로 내려왔다가 나미비아로 간다는 계획을 듣고, 케이프타운에 오면 우리집에 카우치서핑을 하러 오라고 초대했더니 고맙게도 정말로 찾아와주셨다.

케이프타운에서 나미비아 비자를 신청하고, 여권을 찾을때까지 케이프타운을 둘러보다가 나미비아로 떠나려던 그의 계획은 나미비아 대사관에서 난관에 부딪혔다.


한국인은 사전준비 없이 남아공에 들어올때 30일 관광비자를 받을 수 있는데, 어쩌다보니 비자 기간을 체크하지 못해서 남아공 체류기간이 이틀밖에 안남았다고 한다. 나미비아 비자는 근무일 기준 3일이 걸리는데 운 나쁘게 주말까지 끼어서 나미비아 대사관에서는 이틀 불법체류가 되는거라고 신청을 받아주지 않았단다. 예전에는 애원하면 당일 발급도 해주었다 하는데 규정이 까다로워져서 가차없이 쫒겨났단다.

무비자로 들어갈 수 있는 보츠와나는 이미 다녀왔고, 공항에서 도착비자를 살 수 있는 탄자니아는 급하게 다녀오기에 비행기표가 너무 비싸다. 이미 모잠비크도 다녀오고 스와질랜드에서 들어온터라 자동차로 갈 수 있는 곳은......레소토!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여섯개의 국가와 국경이 맞닿아있다. 위쪽으로 나미비아, 보츠와나, 짐바브웨, 모잠비크와 스와질랜드 정도는 지도로 보면 딱 알 것 같은데, 하나가 더 숨어있다. 한 나라 속에 콩알처럼 박혀있는 또 다른 나라 레소토 왕국인데, 지대가 높아서 하늘속 왕국(The kingdom in the sky)이라는 사랑스러운 별명을 가지고 있다.

남아공사람들에게는 다른 나라라기보다 그저 한 지방정도로 여겨지지만 1966년에 독립한 엄연한 국가이다. 인구의 80% 이상의 사람들이 농업에 종사하는 가난한 나라인데, 문화적으로 상당히 이색적이어서 나에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토요일에 비자가 만료된다는 사실을 목요일에 다른나라 대사관을 가서 알게되었고, 자동차로 레소토까지는 최소 20시간이 걸리는데 중간에 쉬기도 해야하니 당장 내일 출발하겠다고 한다.

순간, 나와 함께 맥주를 들이키던 친구의 눈이 반짝 마주쳤다.




.....우리도 따라갈래, 레소토!!



그래서 다음날 출근을 하자마자 반차를 내고 오후에 바로 예정에 없던 로드트립에 나섰다.


토요일까지 레소토에 도착해서 하루자고 일요일에 다시 남아공으로 들어오면 새로운 30일을 받을 수 있을거라는 그의 확신과는 달리, 회사에서는 동료들이 모두 걱정을 하며 말렸다.

알고보면 레소토는 남아공에서 다른나라로 취급도 안하니 돌아올때 재입국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30일 관광비자가 끝나면 본국을 돌아가거나 적어도 일주일은 다른곳을 여행하고 다시 오면 모를까 하루만에 다시 돌아오면 의심스러워서 입국 거부를 당할 것이다, 따지고보며 Visa run은 좋은 방법이 아닌데 거기에 동참하지 말아라, 같은 일행이라고 하면 우리들마저 출입국 관리소에 잡혀서 조사를 받게 될 수도 있다, 그는 도로 레소토로 보내져서 비행기를 타고 이동해야 할 수도 있는데 다시 남아공에 못들어오면 운전 제대로 못하는 내가 그의 차를 끌고 다시 돌아올수는 있는거냐는 사람들의 걱정을 뒤로 한 채, 유유히 케이프타운을 떠났다.


내가 오전근무를 하게 되어 점심때쯤에야 케이프타운을 출발 할 수 있었는데, 자동차로 8시간정도 달리니 어두워지고 운전자는 지쳐서 쉬어가야 했다. 명색이 로드트립이니까 캠핑장을 찾아서 텐트를 쳤는데, 텐트는 물론 온갖 조리도구까지 가지고 있던 그와는 달리 신나게 따라온 두 여자들은 말그대로 몸만 왔다. 부끄럽고 죄송스럽지만 텐트에서 셋이 나란히 누워서 잘 수 밖에 없었는데, 다음날 아침식사라도 우리가 멋지게 준비하자, 라고 야심차게 다짐하고 잠들고는 그 좁은 텐트에서 늦잠까지 자 버렸다.


토요일 아침이 밝았으니 오늘 안에는 레소토에 들어가야 한다. 샤워는 커녕 세수도 급하게 하고 텐트를 접고 출발해서 열시간 이상을 달리고 달렸다.


남아공은 길도 잘 정비되어있고 넓은 나라에 차도 별로 없으니 로드트립을 할 만한다. 몇시간을 직진만 해도 되는 부분도 있으니, 운전하기 쉬운만큼 많이 피곤하지만 신기하게도 펼쳐지는 풍경이 전혀 지루하지 않다. 케이프반도에서 가든루트라고 불리는 동쪽길을 달릴때면 옆으로 펼쳐지는 바다와 호수, 초원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감탄사가 절로 나오고, 내륙도로를 갈때는 시원하게 뻗은 도로가 마치 푸른하늘에 닿을 것 같아 하늘속을 향해 달리는 기분이다.


드디어 남아공 레소토 국경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9시가 다 되었고, 간단한 출입국 수속을 한 뒤에 레소토 땅을 밟게 되었다.


여기...정전이야?


레소토의 밤은 정말 칠흙같이 어둡고, 5월 말 이었는데도 지대가 높아서인지 너무너무 추웠다.

토요일 밤 10시쯤이라면, 한국에서는 2차도 살 수 있는 시간인데, 밤에도 가로등이 환한 도로에 익숙해져 있던 우리에게, 네비게이션도 안 잡히는 낯선 길에서 숙소를 찾아 가는것은 미로찾기와 마찬가지.

한참을 가다보면 아까 그 길에서 꺾었어야 했나, 싶은게 아무것도 없는 텅빈 도로를 한없이 달리고 있는 꼴이었다.그 어두운 길에 사람들이 걷고 있거나 말을 타고 가고 있었다. 이밤에 대체 어디를 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보이는 사람들이 무섭기도 했다. 게다가 여기 사람들은 추위때문에 담요같은 망또를 걸치고 다니는데, 밤에보면 더 섬뜩할 때가 있다,


결국 밤 12시가 다 되어서야 롯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하늘속 왕국은 우리를 쉽게 환영해주지 않았다..

아무리 불러도 리셉션에서는 나오지 않고, 차를 앞에다 대고 손전등을 들고 들어와서 이곳저곳 기웃거려봐도 어디가 손님방인지 어디가 직원숙소인지 알 길이 없고, 정문은 굳게 닫혀서 차를 안쪽으로 가지고 들어올 수도 없는데 어차피 안에 들어와봤자 우리가 묵을 방을 찾을 수도 없으니까..결국 한시간 가까이 고민하고, 불러보고, 두드려봐도 아무도 나와주지 않아서 차안에서 자기로 했다.


추워서 가지고 온 옷을 모두 껴입고, 히터를 틀어놓고 앉아서 잠을 청했는데, 하루종일 차안에 있었는데 잠까지 앉아서 자려니까 불편해서 짜증이 났다. 아, 그냥 다음에 계획 잘 짜고 숙소도 다 예약 해놓고 올걸..좋다고 생각없이 무작정 따라나선 내탓이오..

그러나 한편으론, 남아공에서는 이렇게 바깥에서 자면 위험해서 절대 안되는데 이 나라는 상당히 안전하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이면서, 이렇게 바깥에 차를 세워놓고 있어도 아무도 해치지 않는 것 만으로도 감사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동안 아무데서나 잘잔다고 생각해왔었는데, 지금까지 자동차에서 밤을 지샌적이 없어서였다..

푹 잘수 없어서 당연히 여러차례 눈을 떴는데, 결국에 잠이 깬건 새벽 6시..어젯밤에 세수도 못하고 잘 수밖에 없었던 샤워중독자인 나는 머리감고 샤워를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기 시작했다.

그동안 아프리카에서 어떻게 살았냐고 하는데, 아프리카도 물 잘 나오거든요. 게다가 수돗물을 마실수 있는 남아공이라, 샤워하는 물도 그만큼 좋답니다.

일단 날이 밝으니 숙소에 있는 공동화장실을 찾을 수 있었다. 다행히 잠겨있지는 않았지만 추워죽겠는데 뜨거운 물이 안나와....아마도 주인이 뜨거운물을 켜는 스위치를 올려주어야 사용할 수 있나본데, 아직 인기척이 없다..어쩔수없이 덜덜 떨면서도 찬물에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았다.너무너무 추웠지만 이틀만에 씻을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만으로도 감사해서 춥다고 불평할 수가 없었다. 다시 자동차안으로 돌아오자 일행들이 눈을 떴는데, 그리고 조금 있으니 누군가가 자동차로 문을 두드렸다.


우리 숙소 앞에서 잤으니까 숙박비 내!


어젯밤에 아무리 불러도 안나와서 문 밖에다 차를 대놓고 있었던 것 뿐이라고 하는데도 이 주변은 전부 자기들의 영토라고 캠핑장 이용료를 달라고 한다. 하..여기는 정이 넘치는 아프리카 아니었어?

아침에 샤워실도 사용했고, 문앞에 댄 것도 맞으니 어느정도를 내라고 하는건 괜찮지만, 캠핑장을 사용하지도 않았는데 사용료를 내라니..그러나 이곳은 이사람들의 나라, 억울해서 죽겠지만 우리같은 이방인은 잘못한게 없어도 얼굴 붉혀봤자 우리만 손해다. 그렇다면, 매니저가 여자니까 오빠가 들어가서 어떻게 좀 해보라고, 남자를 들이밀었다. 한참후 기세등등하게 나오는 그는, 애교를 떨고 빌고 빌어 돈을 납득할 수 있는 만큼 깎았다고 했다.

이제와서 잠을 잘 수도 없는 노릇이니, 아침이나 거하게 먹자고 조식을 시켰다.

따뜻한 난로앞에 앉으니 이곳이 천국...사람은 기초체온만 잘 지켜져도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이제 일요일이니, 이대로 다시 남아공으로 입국하면 새로운 30일을 받을 수 있다!


여기까지 와서 아무것도 안보고 돌아가기 아쉬우니, 폭포라도 좀 보러가자 하고 출발을 했는데,어젯밤에 가던 도로는 어두워서 앞이 하나도 안보였지만 그래도 잘 포장되어 있었는데, 이번엔 울퉁불퉁 비포장도로위로 자동차가 춤추듯 요동치듯 달리는데 이러다 차가 부서지는거 아닌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그래도 달리고 달려서 폭포를 보러 갔는데, 감탄이 절로 나오는 풍경.

그림처럼 주변에는 당나귀들이 거닐고, 양치기? 당나귀치기 청년이 딸랑딸랑 종으로 당나귀를 부른다. 정말 여유롭고 평화로운 풍경인데, 우리는 마치 시간여행자처럼 급해 죽겠다.


우리가 도와줬으니 이것도 돈 내!


그리고 이제 국경을 넘어 다시 남아공으로 향하면 되는거였는데, 돌아가는 길에 산에서 굴러떨어진 돌들을 피하려다가 정확히 밟는 순간 펑! 설마설마 하고 내려보니...차 바퀴에 펑크가 났다. 산너머 산이라더니, 정말 여긴 높아서 더이상 넘을 산도 없는데 우리 어떡해..지나가는 거라곤 양떼들과 당나귀를 탄 사람들 뿐..


오늘안에 국경을 넘어야 다시 10시간을 넘게 달려 월요일에 도착할 수 있는데..전화도 안터지고 주변에 가게는 커녕 집도 없고..그저 푸른 하늘뿐..

......근데.. 또 도로에 차가 한대도 없으니 사진찍을맛이 나는데...? 정신나간 두 여자는 또 여기서 사진을 찍고 놀고 있다. 한시간 안엔 분명히 차가 지나갈 거라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데 드디어 한참을 지나서 미니버스 한대가 올라왔다. 이걸 놓치면 또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 지 모르니, 도로 한가운데로 가서 필사적으로 차를 세웠는데, 봉고차의 문이 열리더니 청년들이 대여섯명이 내렸다.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아...이대로 돈을 빼앗기고 차안에 있던 우리 짐도 빼앗기고 심지어 멀쩡하던 바퀴까지 다 빼가고 우린 여기 남겨지겠지..괜히 세웠다, 문잠그고 저기 숨어있을걸 하면서 후회와 걱정을 하면서도, 일단 마음을 가다듬고 처절한 표정으로 펑크난 바퀴를 가리키자, 자기들끼리 뭐라고 이야기를 하더니 버스안에서 장비를 꺼내기 시작했다. 결국 모두의 힘을 합쳐 스페어 타이어로 교체를 해 준 청년들은 우리에게 함께 사진을 찍자고 했다. 와,역시 이나라 사람들은 순수하구나, 하며 즐겁게 사진을 찍고 감사함의 마음을 듬뿍 담아 인사하고 차를 타려는 순간, 우리에게 손을 내밀며 돈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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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굉장히 실망하기는 했다.

그러나 그냥 모른척 하고 넘어가주지 않아서, 그리고 도움만 주고 무사히 가주는 게 고마워서 가지고 가지고 있던 남아공 현금을 내밀었다. (레소토에서는 남아공 돈을 사용할 수 있다.)

돈을 받고 떠나는 그들을 보며 씁쓸했지만, 이런게 현실이니까..



결국 스페어 타이어로 겨우겨우 수도인 마세루까지 나와서 타이어를 바꿀 수 있었다. 그리고 레소토 출국을 하고, 남아공 입국을 하는데, 친구는 학생비자로 문제없이 통과, 나는 워크퍼밋으로 통과, 그리고 예상했던대로 그를 불러세웠다. 안쪽으로 들어오라고 하는 바람에, 밖에서 우린...결국 올것이 왔다, 저 차는 이제 어떻게 해야하는 것인가, 우리가 일행이라는 것을 말하면 득이될 것인가 독이될 것인가, 그래봤자 여기 동양인 세명밖에 없는데 뻔히 일행인건 알것이다, 등등 걱정하면서 밖에서 기다렸는데, 그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나오며 7일 체류 도장을 자랑스럽게 보여주었다.


이번엔 1박 2일 스와질랜드 콜?


자, 이제 그에게 남은 남아공 체류기간은 7일,

이곳에서부터 케이프타운으로 돌아하는데 1박2일이 걸리고, 돌아가서 나미비아 비자를 신청하면 2박3일이 걸리는 동안 좀 둘러볼 수 있으니, 다시 돌아가는 케이프타운은 이틀의 여유가 있을텐데, 1박 2일 스와질랜드 콜?을 외치며 다시 돌아온 남아공에서 운전하는 그를 축하한답시고 신나게 맥주를 마시다가 화장실에 가고싶다고 아무데나 차를 좀 세워달라는 두 여자의 부탁에도 짜증한번 내지 않던 그 분, 지금은 아프리카를 벗어나 유럽을 지나서 남미 여행중이라고 합니다.




원래는 처음에 받은 체류기간이 지나고 출국을 했다가 다시 입국 했을때 또다른 30일을 받는것은 어렵다고 하는데, 주변에 보면 그렇게 여러번 받은 사람도 있고, 이 분처럼 까다롭게 걸려서 7일 도장을 받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깐 입국심사대에서는 복불복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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