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예약 실수-감정변화론

놀람-분노-괴로움-포기의 4단계를 경험한다.

by 슈나

1. 놀람: 맙소사!! 내가 지금 무슨짓을 한거지!!!!!!!!!!!!!!!!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정말 내 눈이 잘못되었기를 빌었다!

...눈을 수십번 다시 떠도 예약 날짜는 12 JAN 2016.

JAN..! JAN!!!! January!!! 1월!!!!!!!!다 음 주!!!!!

게다가 이건 탄자니아 국내선인데 아직 남아공에서 탄자니아 가는 국제선은 알아보지도 않았는데!!!


인쇄된 티켓의 JAN이 나를 비웃고 있었다.

눈앞에서 십만원이 사라졌다. 남아공 랜드가 바닥을 향해 떨어지고 있으니, 십만원까지는 안될 것 같다.

실수를 알아채고 당혹감이 밀려오는 가운데도 '백만원이 아닌게 어디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



2. 분노: "I'm sorry, we can't help it."


바로 탄자니아 콜센터로 전화를 했다. 상담원 연결까지 기다리는 버튼을 누르는데 손가락이 덜덜.

1분전에 예약을 완료한거라고 아무리 애원해도 규정상 어쩔 수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본인은 어찌할 수가 없으니깐 나보고 사무실로 직접 오란다. 나는 케이프타운에 살고 있어서 지금 탄자니아에 갈 수가 없다니까, 그럼 남아공 사무실로 가보라는데 남아공 사무실은 조벅에 있잖아...! 이 사람이 나랑 장난하나! 티켓 한번 잘못 예약했다고 사람을 바보로 아나..엉엉

내가 호텔 예약 회사에서 일했을때는 규정이 그랬어도 사정이 안타까우면 한번씩 상부로 물어봐주고 그랬는데 너무하네..


그러나 나도 알지, 규정 첫줄에 명백하게 써 있다.

날짜 변경 수수료 티켓당 USD35, 어느 상황에서도 환불은 절대 불가. 싸게 나온 티켓이어서 티켓값보다 수수료가 더 든다.


....그냥 당일날 공항에서 이 티켓을 내밀며 모른척 해볼까? 아프리카인데 가능하지 않을까?

....24시간도 채 안된 예약을 어떻게 이렇게 무자비하게 관리하냐고 싸울까?

(친구가 같이 싸우자고 했는데, 마침 그날은 내 생일이 될테니 내가 생일 기념 맞짱을 뜨겠다고 하긴 했다.)

....그냥 다음주에 탄자니아 갈까?


무작정 공항에서 모른척 연기하는 건 할 수 있겠는데, 그게 안될 경우에 대책 마련할 시간이 없다.

싸우는건..이미 규정에 명시되어 있기 때문에 말도 안된다. 우길 걸 우겨야지..

다음주에 탄자니아를 가자니, 케이프타운에서 탄자니아 까지 국제선을 예약해야 하고 비자비용도 있고, 그런데 결국 나는 3월에 탄자니아를 갈 계획이니까 십만원 아까워서 백만원을 넘게 쓰면서 같던 곳을 또 가야한다. 이렇게 어이없게 날아가는 돈은 단 돈 만원도 아까운데, 자다가도 이불을 찰 지경이다.



3. 괴로움: 내가 대체 왜 그랬을까?


어쩜 이런 어리석은 실수를 저지를 수 있었을까..

나는 3월이 January라고 생각했던 걸까..

나는 1하고 3도 구분 못하는 사람인걸까..

날짜와 시간만 체크하느라 몇월인지를 못봤던거겠지..?

아니 어떻게 날짜와 시간만 체크를 하고 달을 안볼 수가 있는거지..?


이 돈이면 스테이크가 몇 끼 인데...!

이 돈을 아껴쓰면 여기서 일주일을 살아남을 수 있는데...!

고작 십만원이지만 땅을 파봐라 십만원이 어디 나오나!!!!!!!!!


그러게, 왜, 서둘러서 비행기를 알아봤으며,

도대체 왜, 친구에게 확인도 안하고 내 멋대로 결제를 클릭했으며,

하필, 공교롭게도, 평소와 달리 결제창이 에러도 안나고 슬슬 예약이 된것이냐..


세상의 모든 의문사가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4. 포기: 괜찮아, 그럴 수 있어!


사실..언젠가는 이런날이 올 줄은 알았지만, 그게 올해가 될 줄은 몰랐다.


십여년간 비행기와 호텔을 예약하면서 이런 적이 처음이었다.

그동안 비행기를 놓쳐본 적도, 예약을 잘못 해본 적도 없다는 점이 자랑스러웠는데 내 기록을 깨다니.

..기록은 깨지라고 있는거니까요.


마음을 진정하고 나니,

그래, 뭐, 그럴 수도 있다.

세상에 모든일이 나에게 일어날 수도 있는 거지.

이미 어쩔 수 없는 것, 그깟(피같은) 십만원에 자괴감에 빠져서 계속 생각하면 건강만 안좋아지니깐 와인이나 한병 하자. 그래! 이 맛있는 와인은 5천원짜리지만 나는 오늘 십만 오천원짜리 고급 와인을 한병 마신거야!


지인 중 한명은, 이미 인in 아웃out 을 헷갈려서 공항에 갔는데 들어가는 표는 예약이 안되어있고 거기서 나오는 것만 준비되어 있었다며 웃었던 적이 있었다.

...그래, 나도 몇달 지나면 웃으며 얘기하겠지.


항공사나 호텔예약 업체에 전화할 때에, 정작 전화를 받는 상담원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고 권한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니까 내 상황이 아무리 위급하다고 해도 절대로 상담원에게 화를 내거나 막말을 하면 안된다. 애원은 해도 된다. 규정도 어차피 사람이 만들었으니까, 최대한 불쌍해보이면 윗 사람들에게 한번 물어봐 줄 순 있겠지만................이런 간단한(나에겐 치명적이지만 그들의 입장에선 정말 사소하고 어이없는)실수 따위는 대부분................규정에 따라 보상받을 수가 없다.


강도를 당했거나 잃어버린 게 아니고,

내 손가락이 잘못해서 내가 치른 돈 이다.

돈내고 배웠으니 앞으로는 눈 똑바로 뜨고 제대로 해야지.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글을 적어내려가면서 오~나 좀 쿨한데? 라고 생각했지만, 자꾸 날아간 돈이 생각난다..아이고 아이고......아이고 아까워.............

그리고 참고로 '아프리카인데 뭐 괜찮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던 건, 후에 탄자니아 공항에서 까다로운 수하물규정에 호되게 당하며 따끔한 맛을 보았다.

...아프리카도 엄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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