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7살 무렵에
맞벌이인 부모님이 늦게 들어오는 일이 많으셨다.
큰 애였던 나는 부모님이 오시기 전에
동생 둘을 데리고
먼저 잠을 자야 할 일이 많았다.
우리는 엄마 아빠 없는 밤의 무서움을 이겨내려고
한 이불 위에 나란히 누워
서로의 체온에 의지하며 꿈뻑꿈뻑 잠을 청했다.
복도식 아파트라서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소리나
주인 모를 발소리가 들리면,
으스스하고 무서워서
올락 말락 했던 잠이 금세 달아나버리곤 했다.
보통은 무서우면 마음 편한 상상을 하기 마련인데
우리 남매는 꽤 특이하게도
그럴 때 서로 무서운 이야기를 해주곤 했다.
두 동생에 한정해서
내 이야기는 꽤나 인기가 좋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기승전결이 맞지 않는
허접한 이야기였지만,
어린 동생들을 쉽게 이야기에 빠져들며
다음 이야기를 보채곤 했다.
주로 사람을 잡아먹는 빨간 피에로나
벽장 속에서 나오는 얼굴 없는 괴물류였다.
본래 이야기는 시작하긴 쉬운 법이지만
마무리가 힘든 법이다.
겨우 7살~8살의 나이였지만
매일 밤 이야기를 만들다 보니
나만의 노하우가 생겼는데
항상 이야기의 끝은 우리 셋이 똘똘 뭉쳐야
괴물에게 잡아먹히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때는 어벤저스도 없을 때인데
지금의 영웅 공식을 어떻게 알았는지,
본능적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했나 보다.
여기에 동생들은 모르는 나만의 비밀이 있다.
20년이 지나서 얘기하는 거지만
사실 가장 무서운 건 나였다.
동생들과의 차이점은
괴물이 무서웠던 게 아니라
엄마, 아빠가 사고로 오지 않으실까 봐 무서웠다.
큰 애지만 그래 봤자 어렸던 나도
엄마 아빠가 없는 밤은 무서웠지만
동생들에게 허무맹랑한 무서운 이야기를 해주다 보면
왠지 모르게 덜 무서웠다.
괴물은 입이 작아서
우리 셋이 손을 잡고 잠에 들면
우리를 먹지 못한다고 얘기한 것도
실은 동생들 손을 잡고 자기 위한 나의 계략이었다.
그 후에도 사춘기가 다 지날 때까지
동생들의 손을 잡거나 안고 있어야
마음이 안정되고 잠을 잘 잤다.
나는 엄마가 오시면 동생들 품 속에서 자는 척을 했고
엄마는 조용히 다가와 이불을 덮어주고
다리를 주물러 주셨다.
그 따뜻한 느낌이 참 좋아서
엄마 아빠를 기다린 티도 안 내고
매번 자는 척을 했던 것 같다.
서른이 된 지금도
기다리며 밤을 지새우던 습관이 남아
누가 늦게 오기라도 하면
계속 기다리다가 모두가 잠든 밤에 비로소 잠이 든다.
가족의 체온으로 잠을 잤던 내가,
이제는 우습게도
누가 옆에 있거나 살이 닿으면
편히 잠을 못 자는 사람이 되었다.
스무 살 때부터 출가해 홀로 잤던 탓이다.
덕분에 결혼한 지 3개월 차지만
가장 큰 침대를 사서
남편이랑 서로 떨어져 잠에 드는
웃픈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엄마 아빠를 기다리지 않아도 되지만,
가끔은 살을 맞대며
우리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던
어린 시절이 그립다.
손을 잡고 잘 어린 동생들이 없는,
집으로 돌아오실 엄마를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무서운 이야기가 이제는 더 이상 떠오르지 않는,
약간은 섭섭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