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춘기 시절을 함께 한 엄마.
날이 점점 더워지다 보니, 질풍노도 시절의 여름이 생각났다. 사춘기는 정체성을 고민하는 시기라고들 한다. 그 고민 속, 나를 찾는 과정을 겪다 보니 주변과의 마찰도 생기고 그러한 과정을 거쳐 점점 나를 찾게 되는데 나의 그 시절은 조금 더 특별했던 것 같다. 중학교 시절 인공와우 수술 후 2주간 병원 생활을 하고 나서 학교에 돌아간 뒤, 전처럼 친구들과 잘 어울렸지만 그 어느 누구도 인공와우 수술 자체를 공감해줄 친구는 없었다. 그 친구들은 절대로 겪지 않을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내가 장애를 받아들이고 살지도 않았기에 나는 누구인가라는 고민을 하곤 했다.
고등학교에 입학 후, 여느 여학생처럼 꾸미기도 좋아하고 예쁘고 싶은 나이었지만 머리를 묶을 수도 없고 남들과는 조금 다른 발음 덕에 남의 시선을 의식하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재활을 위해 병원에 자주 가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싫었다.
왜 남들은 듣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데, 난 이렇게 많은 시간을 낭비해야 되는지
너무 억울하고 속상했다. 여느 날처럼 엄마와 병원에 가는 날, 그날따라 엄마에게 유독 짜증을 냈던 것 같다. 왜 맨날 병원에 가야 되냐고, 나도 남들처럼 평범하게 듣고 이런 일 때문에 병원 가는 게 너무 싫었다고 짜증을 부렸다. 엄마는 '그래도 너는 이 정도라도 해서 잘 듣는 편이니까 감사하게 생각해야지' 라고 나무라셨다. 그 당시에 나는 엄마에게 위로가 듣고 싶었던 건데 '이럴 거면 나를 왜 낳았냐고, 누가 낳아달랬어, 낳을 거면 남들처럼 평범하게 태어나게 하던가!' 라고 못된 짜증을 폭발하고 말았다. 여름철만 되면 인공와우의 습기가 차고 머리도 묶지 못해 더욱 예민해지던 18살의 반항이었다.
더워지는 여름, 인공와우 때문에 지금도 습기에 신경 쓰고 조금은 어지럽기도 하다. 인공와우의 건전지를 교체하다가 갑자기 엄마에게 전화가 와서 문득 생각난 18살의 여고생, 그 시절 말을 잘 안 듣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지금은 엄마와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그 시절로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엄마, 지금은 그래도 잘 컸다고 더 행복하다고 하신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장애 아동을 키우고 있을 부모님들이 계실 것이다. 특히 사춘기 시절, 남들과는 다른 모습 때문에 더욱 혼란스러울 자녀와 마주하기 힘들 것이다. 상투적인 말이지만 시간은 약이라고들 한다. 나의 사춘기 시절은 엄마의 눈물을 양분 삼아 클 수 있었고 내가 자리 잡아가며 꽤나 시간이 흘러 돌아보니, 어느덧 흰머리가 많이 늘어난 엄마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엄마가 돼보지 않은 내가 감히 엄마의 자격을 논할 수는 없지만 늘 인내하며 자식들이 자라나는 양분을 묵묵히 제공하는 자리가 아닌가 싶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에게 감사하며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