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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Mar 14. 2023

글과 음악을 담는 작(곡)가, 브런치를 시작하다.



" 언젠가부터 말이야.
비공개로 글 남기는 게 조금 아깝다? 아니, 나누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

" 작가님 환영합니다. 브런치 시작해볼까요? 작(곡)가님. "



그렇게 내 노트북에 새로운 어플 2개를 깔았다.

하나는 데이원이라는 일기 어플,

또 하나는  율리시스라는 글쓰기 어플.


사실 글쓰기에 대한 갈망은 늘 있었다.

어떻게 할지 잘 모르고 있었고, 사실 알아도 모른 체했다. 여태 나는 나 자신의 게으름과 싸우고, 나 자신에게 집중해서 나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걸 외면한 채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친구의 말처럼 내 영혼의 목소리는 계속 내게 말을 하며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 자신을 깊이 뒤돌아보며 생각을 쌓아가고 성장하면서 내 안의 꾸준함을 차곡차곡 쌓아 내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

상념에 깊이 잠겨 있다가 어느 순간 시너지가 생기는 순간을 맞이하면, 의미 없이 연관성 없이 여기저기 흩어져 부유하는 수많은 조각의 언어들이 일순간에 블랙홀로 따라 들어와서 뉴런에 연결되는 그런 그림이 떠올려진다.

블랙홀일까? 늪일까?


내 영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면, 언젠가의 문제였다.

그런데 글 쓰는 나, 작가에 대한 막연했던 언젠가의 시작이 오늘이 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하루하루를 그냥 언젠가로 미뤄버리면서 흘려보냈다.



“ 뭐든 글쓰기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고 일단 글을 쓰는 게 중요해. 해 봐. 멘탈, 정서, 감정, 이런 부분을 써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곡 쓰다 막히는 부분, 잘 풀리는 느낌 이런 것도 좋지.


난 일기 쓰면서 나 자신을 찾아가는 것 같아. 계속 생각을 쌓아가면서 주기적으로 다시 읽어보기도 해.

그러면 뭔가 생각의 방향성이 보이고, 내 성장이나 약점도 보이거든.

정체성이라는 게 별게 아니라 꾸준히 해오는 습관이 정체성이야.

계속 음악을 만들면 그게 내 정체성인 거구.

계속 글 쓰면 나는 글 쓰는 사람인 거지.

오늘의 내 인셉션은 성공한 듯하네 ㅋㅋ “



What is the most resilient parasite?
Bacteria? A virus? An intestinal worm?
An idea.
Resilient... highly contagious.
Once an idea has taken hold of the brain it's almost impossible to eradicate.
An idea that is fully formed - fully understood - that sticks; right in there somewhere.

- Dominic Cobb / Inception(2010)






의도하진 않았지만 팔로워들을 보면 자연스럽게 작가들이 딸려 들어왔다. 그들의 섬세한 말이나 글귀들을 보며 즐거웠다. 한정된 글자수 안에 내 생각들을 정리해서 요리조리 넣는 것도 재미있었다.


작년 12월부터 올해 초까지 내 음악 스터디 글을 좋아해 주신 분들이 계시다.  내 글을 읽으며 감동해 주시고, 마음을 열어주신 분들. 작사를 추천해 주신 분도 계셨다.  매우 신기하고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 시간들을 채운 글들로 인해 맞닿은 인연들로 음악 비전공인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다.


아!! 세상에!

지금 이건 음악 글쓰기를 사람들과 나누면서 시작된 귀한 인연이구나!!

글쓰기로 나를 내어 보이며 시작된 인연!

글을 쓰지 않았다면 없었을 인연!


어쩌면 작곡을 하는 것보다 말로 표현해 내는 것이 더 즐겁고 쾌감이 있음을 부인하지 못하지만,

반대로 작곡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꾸준히 해본 적이 없으니 섣불리 그렇다고 말할 수도 없다.

벗의 인셉션 성공으로 작가로서의 삶의 시작되는 것일까? 왼손은 거둘 뿐, 내 영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것뿐일까? 머릿속에서 종이 울린다. 둥 둥 둥 둥








위의 글은 당시 브런치 서랍에 넣어 둔 글이었다.

그 이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포부를 안고 브런치를 신청했다가 보기 좋게 떨어졌다.

'이러이러한 마음과 계획이 있어요.'라는 막연하고 욕심 섞인 서툰 마음이 앞섰었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한 발 다른 위치에 서 있다.


나는 그 이후 꾸준히 일기를 쓰며 글 속에서 내 위안을 찾았다.

작년 한 해 작곡, 편곡, 녹음, 디렉팅도 하게 되면서 싱글앨범 2개, 총 3개의 음원을 발표하며 작곡가로 데뷔했다.



讀書萬卷始通神(독서만권시통신)
가슴속에 1만 권의 책이 들어 있어야, 그것이 흘러넘쳐서 그림과 글씨가 된다.
- 추사 김정희


추사 김정희의 말처럼 1만 권의 책을 읽지도 못했고, 현자들의 책을 조금 읽어도 읽을 때뿐이다. 저자의 말을 경청하며 설득당하고 머릿속에서 가슴으로 끌어내려와서 내 생각을 내보이며 오랜 고통과 숙성의 시간을 거치면 그때서야 운이 좋다면, 나만의 언어로 조금의 깨달음이 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건 또 천지차이다. 늘 모자람과 서투름 투성이다.


하지만 나를 마주하며 나의 하루 이야기를 써낸걸 1권의 소책자라고 후하게 인심을 쳐준다면

1만 권의  1/10 정도는 내가 써냈고, 또 내가 독자로 읽었다고 위안해 본다.  


글과 음악을 내 삶 안으로 마주하기 시작했다.

내 안의 표현하고자 했던 열망을 계속 누르고, 마주하지 않은 채, 지금과는 많이 다른 삶을 살아왔다.

어쩌면 마주할 힘과 용기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마스터키보드 88건반 처음 들인 날


내게 음악은 삶의 그 어떤 순간에서도

슬픔 안에 행복을,

고통 안에 위안을,

삶을 통과하는 평안을 가져다준다.  


오래전부터 Without Music, I’m nothing.이라는 다소 비장한 말이 블로그에 걸려있다.

일상의 사사로움이, 일상의 평범한 것들이 내면의 한 끝을 채워주진 못했다.

소소한 만남도 그런대로 다정하고 좋지만, 결코 그것이 내게 근원적인 만족을 안겨주진 않는다.

그것이 인생을 힘겹게 하면서도 풍요롭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지금에 와서야 조금은 바라보게 되었다.

글과 음악은 내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축이란걸.


일기를 쓰며 내 안에 넘쳤던 글이 브런치로,

음악을 들으며 내 안에 넘친 음악들이 내 곡으로,

그렇게 이제는 글과 음악으로 표현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한다는 것을.

결국 늘 날 구원했던 건 음악을 향한 사랑이었고, 글 안에서 나를 마주할 때였다는 것을.

가장 즐겁게 기꺼이 나답게 채울 수 있는 것임을.


글도 음악도 상황 따라 마음 따라 파고를 겪고는 있지만 인생의 어느 중요한 변곡점에 서 있는 기분이다.

여전히 내면을 마주하느라 분주한 나는 최근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마땅한 주제도 없이 작가서랍 안에서 혼잣말로 주절 주절대던 글들에, 항로 없이 떠도는 글들에 드디어 주인이 들어오는구나 라는 등불 같은 확신.


아, 이제 내가 좋아하는 음악들,

슬픈 멜랑콜리한 음악들,

Bittersweet 한 음악들에 대해 브런치에 글을 써야겠구나. 하는 확신.


그렇게 브런치 신청서를 다시 썼고, 심사는 바로 통과되었다. 

" 친구여, 나는 이렇게 브런치 작가가 되었음을 선포합니다. 하지만 각잡지 않고, 그냥 나대로 그렇게, 모자란 대로, 편하게, 쓰고 싶은 대로 쓰겠음을. 탕 탕 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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