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out Music, I'm Nothing.
음악적 소명을 깨닫는 순간이 있으신가요?
왜 음악을 하게 되었죠?
무엇이 음악을 좋아하게 만들었나요?
어떤 계기가 될만한 특별한 경험이 있었나요?
세상 모든 음악가들에게 이런 특별한 순간이 있었을까?
운명처럼 내 인생의 큰 의미였음을 발견하는 순간 말이다.
활을 들고 첫 숨을 들이쉬는 순간 알았다.
천국에서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함께할 결혼이었다.
내 평생은 이 순간을 위해 준비된 것이었다.
“ 300년 전에 스트라디바리우스가 나를 위해 직접 나무를 다듬어 이 바이올린을 만든 것만 같았다. 나의 스트라드가 평생토록 나를 기다려온 것만 같았다. 내가 그 바이올린을 기다려왔던 것처럼. 그것은 첫눈에 반한 사랑이었다. 영광, 복종, 신뢰 등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온갖 감정이었다.
그간의 내 삶이 인도해 준 순간이었다.
그때까지의 내 모든 삶은 리허설이었다. 스승들, 좌절들, 외로움들, 기쁨의 고통들 모두가 내 바이올린을 만나 우리가 함께 시작하도록 지금의 순간으로 나를 이끌어준 것이었다.
이것은 바로 여기 지구의 천국에서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함께할 결혼이었다.
내 평생은 이 순간을 위해 준비된 것이었다. “
그녀는 그것을 마련하기 위해 살던 집을 저당 잡았다.
- 수전 케인, 『 비터스위트 』
가나데는 자신의 악기를 찾는 중이었다.
그러다 친구들의 도움으로 체코의 한 악기를 만난다.
악기를 처음 연주한 순간 전율과 절망이 가나데를 감싼다.
‘ 넌 그런 소리를 낼 수 있었구나,
진짜 너는, 너의 비올라는, 그런 소리였구나. ‘
가나데가 자신의 비올라를 통해 느낀 것은
자신이 앞으로 만들어가야 할 음악이었다.
아직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이지만,
자신이 한계 지어놓은, 그저 적당히 듣기 좋은 소리가 아니라,
더 넓고, 더 크게, 더 깊은 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예감.
- 김지수, 『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 』
" 두려웠어요, 나는. 공포의 우산 속에서 살았지. 사회의 기대에, 부모님의 기대에 어긋날까, 그게 너무 무서웠고, 그래서 늘 겁에 질려 있었어. 열입곱살 때 스승인 미스터 갈라미언 손에 이끌려 뉴욕에서 세계 최고 오케스트라와 무대에 섰어요. 무대에서 내려와서 알았지. 내가 어마어마한 일을 했다는 걸. 아직도 기억나는 게 호텔의 벽지야. 호텔에 와서 벽지를 보고 얼마나 슬피 울었던지.
‘ 이게 내가 살아갈 인생이구나. ‘
음악은 청중에게 주는 거고, 내가 받는 박수갈채는 금방 지나가요. 그렇다면 나한테 남는 건 뭐냐?
결국은 내 악기,
내가 사랑하는 소리.....
알겠어요?
이게 얼마나 Crazy Love 냐고! "
우리가 가장 근본적으로 자신에게 입히는 해는
자신을 솔직하고 부드러운 눈길로 바라보는 용기와 존중이 없는, 무지함(ignorance)이다.
- 페마 초드론
나다움을 받아들이는 것.
음악가들이 그러지 않았다면 저분들의 찬란한 음악을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자신을 향한 용기와 존중으로 음악을 담아낸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감사함이 벅차오른다.
지나고 나면 보인다고 하는 말이 맞다.
작년 12월 두 번째 싱글앨범이 나올 때까지만 해도 나를 급하게 세상에 내보이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하지만 그건 타인들을 향해야 할 이야기가 아니라
나에게 더 깊이 건네었어야 할 이야기였다.
정신없이 연말을 보낸 이후의 나는
손이 말하는 멜로디를 잃어버린 기분이다.
건반 위로 손이 잘 가지 못한다.
대신
손이 말하는 글을 쉴 새 없이 쓰고 있다.
그냥 치고 그냥 쓰면서 몸을 움직여 뭐라도 눌러야 할 텐데.
조금 더 나만의 시간을 흘려보내다 보면
손가락이 말하는 나의 멜로디가 나올 수 있겠지?
“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웠지만 오직 음악만이 날 붙잡았다.
내가 만들어야 할 음악을 전부 다 만들기 전까지는 절대로 이 세상을 떠날 수 없으니까... “
- 매트 헤이그, 『 위로의 책 』
음악가에게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만큼 가혹한 고통이 있을까?
눈이 안 보인다면,
소리가 눈이 되어 머릿속에 악보를 그려줄 텐데
베토벤이 마음으로 들었던 소리는 어땠을까?
음악으로의 열정이 그를 들리지 않는 세상에서도 음악을 만들 수 있게 했을 것이다.
지난 2월 말 손열음 님의 연주를 보러 갔다.
그때 피아노 연주자로서의 삶의 비결이 뭘까요?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변했다.
" 음악을 좋아해야 음악을 할 수 있어요. 그게 제일 중요해요.
모두 다 잘하는 사람은 없고, 각자의 장단점이 있는데, 내가 잘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요.
재능은 정말 너무 출중한데, 음악을 좋아하지 않아서 더 못 나가거나 그만두신 분들도 참 많이 봤습니다.
하지만 음악을 좋아하는 마음.
음악 듣는 것도 연주하는 것도 좋아한다면 바로 그것이 비결인 것 같아요."
예술작품을 보고 들으며 내 마음이 보이는 것, 내가 보고 싶은 것을 투사하게 된다.
오늘 이 말을 들으려 여기에 왔구나.
듣고 싶은 말을 선물 받은 기분이었다.
마음이 있다면, 방법과 행동은 저절로 따라간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고로 내가 행하지 않고 있다면
아직 마음이 다 하지 않은 것이고,
마음에 깊이 차오를 힘이 아직 부족하다는 것일 거다.
산만하게 흩어지는 마음과 에너지를 잘 모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고
소중한 사람들의 응원과 사랑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녹화현장에서 처음 알게 된 김두민 첼리스트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바흐 무반주 첼로곡을 연주할 땐
현을 단 한 번도 쳐다보지 않고,
정면 어느 한 곳을 응시한 채 철저히 내면 어딘가로 완벽하게 들어간 상태였다.
집에 돌아와서 인터뷰를 찾아보니 마음을 깊게 건드리는 어구가 있었다.
- 강원도민일보 김진형 기자, 『 질끈 눈감은 첼리스트의 가혹했던 삶, 음악은 비상구였다 』
“ 음악은 내게 피난처였다. 음악을 미워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우울하거나 속상할 때 찾는 첫째가 음악이었다. 음악을 안 하는 삶은 상상이 안된다.
음악은 비상구다.
어려운 순간마다 쉼과 활력을 준 신실한 동반자다.
오히려 음악이 도피처였다. 현실에서 도피해 음악에서 힘을 얻고 다시 현실로 돌아갔다. 무대는 나에게 에너지를 주는 곳이다. “
그래.. 이 마음이지. 이 마음이야.
나다움을 받아들이고 지지한다.
가짜 나를 관두고 사람들이 비웃어도 개의치 않을 마음.
부끄럽지만 이런 무모한 용기마저도 수용하며 사랑하련다.
글과 음악 안에서 발견하는 기쁨을 숨기지 않고, 내 속도로, 꾸준히 꺼내고 싶다.
나의 운명적인 첫 순간은 5살의 크리스마스였다.
그때부터 늘 거기에 있었다.
22년 6월 29일 나의 첫 음원이 나온 날. 그날이 내 두 번째 생일이었다.
헤매고 돌아왔어도 그간의 내 삶이 인도해 준 순간.
이제야 조금씩 나를 나답게 마주하기 시작한다.
말만 번지르르하더라도, 비장하더라도, 자기 연민이라 하더라도 글이 힘이되어 음악으로 붙잡아 두고 싶다.
한 발 더 나아가,
말에서 그치지 않고 의지를 실어 행동함으로써 아웃풋으로 말하는 사람이 되기를.
설령 그렇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런 나를 내가 온전히 자기혐오없이 수용할 수 있기를.
5살의 크리스마스날로 다시 돌아가본다.
산타할아버지가 주셨던
손바닥만 한 핑크색 토이피아노를
한음 한음 누르며
기뻐했던 그 순간들로
오랫동안 나답게 숨 쉬며
반짝이고 싶다.
사랑과 용기를 잃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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