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심장

콜드워 - 두 개의 심장 네 개의 눈동자

by 윤슬



사랑은 언제나 심장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감정의 시작점일 뿐만 아니라, 존재가 울리는 곳이다.

심장은 조용히 두드리고, 어느 순간 노래가 되고, 기억이 된다.


심장에서 출발한 이 근원은 음악속에서 사랑을 느끼고, 영화로 기억을 떠올리며, 시로 견디는 법을 익혀왔다.

그렇게 시와 음악, 문학 속에서 심장은 수많은 얼굴로 다시 태어났다. 때로는 불타오르고, 때로는 조용히 무너지며, 때로는 타인의 고통을 안고 다시 뛴다. 심장, 사랑은 그런 의미에서, 가장 오래된 예술의 기원이 아닐까?


이 글은 그런 심장의 언어를 따라가며, 영화 『Cold War』와 그 안에서 흐르는 곡 – Dwa Serduszka(두 개의 작은 심장) 에 담긴 비터스위트한 사랑의 형태를 함께 사유해보고자 한다.



두 개의 심장, 네 개의 눈

영화 속에서 줄라와 빅토르가 함께 만든 노래, Dwa Serduszka(두 개의 작은 심장)는 심장을 통해 사랑하고, 견디고, 기억하며 음악으로 흐르고 있다.


어떤 감정은 너무 가까워서 부서지고, 어떤 사랑은 너무 커서 말이 되지 않는다.

가장 멀리 있으면서도, 가장 가까운, 차갑고도 뜨거운 감응의 순간.



https://youtu.be/IxFsK7xKRPM?si=a_E2NQZKev6dYGKt


Joanna Kulig - Dwa Zerduszka(Two Hearts, Four Eyes)



두 개의 심장 네 개의 눈이

낮에도 밤에도 눈물을 흘리네

검은 눈동자들이 눈물을 흘리네

두 사람이 함께할 수 없으니까


어머니가 나에게 말하셨네

이 남자를 사랑하지 말라고

심장이 돌처럼 차가워야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지



그렇게 돌처럼 차가운 심장이었더라면 어땠을까.

핀다로스가 말한 것처럼, 차가운 불길 속에서 금강석이나 쇠를 벼려 만든 검은 심장처럼

둔감하면서 초자연적이었더라면

아니, 완전히 신이거나 완전히 돌덩어리었다면


하지만 그들은 열기가 덥석 문 밀랍처럼 서로에게 녹아들었고, 결국 사랑 앞에서 인간으로서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죽음의 순간조차 함께 바라보며, "이제 난 당신 거라고, 영원히 언제까지나."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줄라의 그 고백은 단지 대사가 아니라 사랑의 무게였다.




줄라와 빅토르

서로가 서로가 될 때 평안함이 내어주는 포갬과 시선이 아름답도록 온전해 보인다.

침묵도 이해가 되는 순간들이다.

이 세상에 유일무이한 사랑이 없다고 했던가.

적어도 이 영화에선 바로 여기에 있다고 말한다.


줄라와 빅토르의 이야기는 단지 개인의 서사가 아니라, 시대와 체제가 만들어낸 단절의 초상이기도 하다. 그 단절은 에로스의 본질, 즉 ‘부재와 결핍’과 맞닿아 있다. 플라톤이 말하듯, 에로스는 결핍이며, 필요이고, 없어진 것에 대한 욕망이다.


그 부재를 인식한 순간부터, 사랑은 운명처럼 시작된다. 마치 아리스토파네스가 말했던 것처럼 태초의 인간이 제우스에 의해 갈라져 나간 반쪽을 되찾으려는 열망. 본래 하나였던 것의 분열, 그리고 그로부터 시작되는 강렬한 응집과 결속인 것이다.

그 분열에서 시작된 열망은 종종 사랑을 투사와 집착(소유욕)으로 바꾸기도 하지만

사랑의 크기만큼 불어나버린 양가적인 감정, 증오와 고통마저도 우리는 기꺼이 감내한다.




음악, 또 하나의 심장

이 곡은 영화 속에서 폴란드 전통민요로 시작하여 빅토르의 손끝에서 재즈로 다시 태어난다. 단순한 편곡이 아닌, 새로운 생명이 부여된 사랑의 언어로.

영화는 말한다. 사랑은 그리움이자 결핍이며, 잃어버린 나의 반쪽을 찾는 여정이라고.

엔카슨의 『에로스, 달콤씁쓸한』을 읽던 중 줄라와 빅토르가 떠올랐다. 그래서 이 곡을 꺼내 들었고 이 글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폴란드의 작곡가 타데우스 시기틴스키가 곡을 쓰고,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마르친 마세츠키가 편곡했다.

영화 속 줄라 역을 맡은 요안나 쿨링이 직접 이 노래를 불렀다.




사랑의 모양을 한 심장은 과연 무엇을 품고 기억하고 있을까.

생명의 원천, 그 시작점엔 심장이 있다. 사랑의 결실은 심장의 소리로 태어나 생명의 시작을 알린다. 쿵쿵 쿵쿵. 사람의 형태를 갖추기도 전에 심장은 제일 먼저 들리고, 하나의 우주로 이 세상에 태어난다.

진실의 자리이자, 사랑의 중심이며, 고통과 열망, 그리고 인간 존재의 은유이기도 하다.


심장은 진실을 숨기지 않는다. 머리로는 감추려 해도 두근거림, 떨림, 멎음으로 흘러나온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죽은 자의 심장을 저울에 올려 영혼의 무게를 쟀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심장을 '영혼의 좌소'라고 했다. 우리는 여전히 사랑을 가슴으로 한다. 그건 논리로 해석할 수 없는, 오직 몸으로 느끼는 진실이다.



공감의 심장, 타인을 품는 자리

영화 속 빅토르는 줄라의 목소리와 내면을 온전히 받아들이며 그녀를 위한 노래를 완성한다.

그것은 소유가 아니라, 함께 아파하려는 조용한 헌신의 증거처럼 느껴진다.


“If I can stop one Heart from breaking,

I shall not live in vain.”


— 에밀리 디킨슨 Emily Dickinson, Poem 919


사랑은 내가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부서짐을 막고 무너짐을 지탱하려는 조용한 윤리이자 다정한 용기다. 욕망과 소유가 아닌 존재 그대로를 지켜보며 품고 싶은 마음. 어쩌면 그게, 가장 단단한 사랑의 형태일지도 모른다.














이 시를 만났을 때,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가슴에 오래 머물렀다.

어느 가을날에도, 지난 주말 떠났던 여행의 순간에서도 이 페이지는 나와 함께 머물렀다.


사랑은 언제나 심장을 바꿔놓는다.

두 개의 심장이라는 건 나의 심장과 상대의 심장을 일컬을 뿐만 아니라,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또 다른 나의 심장이 더해진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예전의 우리가 아니다.

사랑은 그렇게 우리를, 우리의 심장을 다시 태어나게 만든다.




하나의 가슴에 둘의 심장이 뛴다

그다음은 세계


그 하나 둘 세계를

네게


- 이현호, 『아름다웠던 사람의 이름은 혼자』 시인의 말 중에서




우리 모두에겐 그런 심장이 있다.

하나와 둘, 그 세계를 품고

잃음과 채움이 동시에 차오르며

박동으로 순간들을 기억해 내는 저릿한 심장을 말이다.

그리고 그 세계를 누군가에게 내밀 수 있는 용기가 사랑의 시작이 되는 것이다.









인용 - 핀다로스의 단편 123중에서

' 마치 차가운 불길 속에서 금강석이나 쇠를 벼려 만든 검은 심장처럼 '

' 그들은 열기가 덥석 문 밀랍처럼 서로에게 녹았고' 


『 슬프고 아름다운 Bittersweet 』20편 - '두개의 심장' 이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음악에 대해 나눕니다. 그저 알고 싶고, 깊게 느껴지는 것을 ‘왜?’라고 스스로에게 물으며 저만의 시선으로 편하게 담아봅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브람스는 말했다. 가장 슬픈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