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흐마니노프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모음곡 2번 4악장

타란텔라

by 윤슬


곡과의 첫 만남


주말에 우연히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2번 3악장 Adagio를 듣게 되었다. 이 곡은 대중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 곡이고, 나도 참 좋아하는 곡이다. 언젠가 이 곡을 일상글로 다룬 적이 있었다.


https://brunch.co.kr/@minachoi/85


피아노만의 풍성함으로 가득 찬 이 곡은 너무 새롭고 신비로웠다. 누구에게든 바로 들려주고 싶을 정도로. 바로 샤잠을 켰다.

다닐 트리포노프(Daniil Trifonov)가 이 곡을 두 대의 피아노 버전으로 직접 편곡한 것이었다. 작년 라흐마니노프 탄생 150주년을 기념해 세르게이 바바얀(Sergei Babayan)과 협업하여 두 대를 위한 피아노 곡들을 앨범으로 발표한 것이다.


https://youtu.be/yumXgK72CEQ?si=KcQHji9XGm4cXB2z


Rachmaninoff: Symphony No. 2 in E Minor, Op. 27 - III. Adagio

(Transcr. Trifonov for 2 Pianos)



그렇게 이 앨범을 흥미롭게 듣게 되었다. 그러던 중 순간적으로 압도되어 어디론가 나를 생생하게 끌어가 버린 곡을 만났다. 오늘은 그 곡, Tarantella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https://youtu.be/EC_BB8oMpK4?si=DfBal0X9fAtzxwoX


라흐마니노프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모음곡 2번, Op.17 4악장 타란텔라

Rachmaninoff: Suite No. 2 for 2 Pianos, Op. 17: IV. Tarantella



감정의 파도 속으로


두 대의 피아노가 서로를 몰아치듯 쏟아내는 음의 파도.

그 격정, 분노와 슬픔, 고통은 거칠게 몸을 던지며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곡 끝에서는 드디어 해방을 향해 터져 버린 순간을 맞이했다. 해방이었든, 어느 지점이었든, 그곳이 어딘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순간만큼은 이 곡을 통해 복잡한 감정이 해소되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너무 오래 웅크리고 참아온 것들이 비명을 지르듯 몰아치다가 결국 끝까지 가서야 울부짖었던 것들을 겨우 놓아주는 것 같다.

이 음악으로 꺼내지는 순간, 삶의 무게가 조금은 견딜 수 있는 것이 되니까.

모든 걸 통과해 버린 소리가 그렇게 끝이 났다.


그리고 흐르는 적막과 침묵.

그 침묵은 내겐 무위의 상태에 가까웠다. 아무 감각도 남지 않았다.

백지 위를 흘러가는 평면 같은 시간처럼 감정이 다 빠져나가 허공에 잠시 멈춰 선 듯한 느낌이었다.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건 텅 빈 들판처럼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 땅이다.

난 때때로 말라서 갈라진 땅에서 살고 있다고 느낀다. 거기선 뿌리를 내리기도 어렵고, 무언가를 피워내기도 버겁다. 우리 모두 한 번쯤은 그런 시간을 지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 무위 속에서도 아주 미세하게, 정말 아주 미세하게 숨결 하나쯤은 남아 있을 것이다. 마치 다시 피어날 수 있다는 신호처럼.

그 황량함 속에서도 음악은 나에게 조용한 위안을 건넨다.


보이지만 않을 뿐.

마른 겉흙 아래, 보이지 않는 깊은 곳에서는 눈물과 사랑이 생명수가 되어 나를 적시고 있다는 걸.

갈라진 땅의 틈 사이를 비집고 올라오는 작은 풀 한 포기를 보며 살아있음을 확인한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살아 있는 게 얼마나 소중한가를.



그렇게 여러 번의 감상을 마치고 나니, 이 곡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졌다.







라흐마니노프의 회복


이 곡이 그토록 깊은 감정으로 다가왔던 건, 라흐마니노프 자신의 절박한 회복의 몸짓이 그대로 녹아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곡은 라흐마니노프가 1897년 교향곡 1번을 실패한 후 3년간의 침묵을 깨고 작곡한 첫 작품들 중 하나이다. 그동안 그는 깊은 좌절과 심한 우울증을 앓았고 니콜라이 달 박사에게서 치료를 받으면서 점차 회복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1900년 12월 피아노협주곡 2번의 두 악장을 썼고 그 성공을 통해 자신감을 얻기 시작한 그는 그 곡을 치료사에게 헌정했다고 한다.

바로 이 시기 1901년 4월, 라흐마니노프는 두 대의 피아노 모음곡 2번을 작곡, 완성했다.


타란텔라는 원래 독거미에 물린 후 미친 듯이 춤을 춰야 낫는다고 여겨졌던 의식에서 비롯된 광란의 춤이라고 한다. 나폴리 지방에서 유래한 빠르고 경쾌한 3박자계열의 민속 춤곡인 것이다. 여기서 라흐마니노프는 두 연주자 모두에게 엄청난 기교를 요구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강렬한 에너지와 긴박감, 극적인 전개, 운명에 맞서 싸우는 듯한 비장함, 라흐마니노프 특유의 웅장함까지 더해진다.

그 모든 것이 두 대의 피아노, 네 개의 손이 만들어낼 수 있는 유한을 넘어서버린 음악의 서사로 온전히 담겨있다.


이 곡은 그 무렵 분노와 절망 속에서 다시 살아내려는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단순한 춤곡이 아니라, 그의 내면에서 살아 움직인 감정의 분출처럼 들린다.




음악, 고통을 품다


기억력이 기억을 유지할 것을 제안하듯이,

음악은 고통을 울려 퍼지게 하죠.

그렇게 예술은 간극을 벌려 고통을 그것의 원인과 떼어 놓습니다. 그렇게 고통을 위로하지요.


심지어 저는 예술이 이전까지는 비탄과 공포였던 것에 마법을 걸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예술은 충격을 다른 곳으로 옮겨서, 그 충격의 방향을 다른 쪽으로 틀어서 견디기 덜 힘든 풍경 속으로 조금씩 밀어 넣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ㅡ 파스칼 키냐르『 사랑 바다 』중에서



타란텔라라는 곡이 라흐마니노프에게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이 음악으로 고통을 울려 퍼지게 하면서, 견디기에 덜 힘든 풍경 속으로 조금 더 밀어 넣었다고 말이다.

그것은 자기 스스로를 채우고 보듬는 것이었다고.


고통과 외로움을 지우는 게 아니라

그것을 안고도 무너지지 않을 무게중심을 내 안에 두는 것이라고.

그렇게 따뜻하게 품어주며 진정으로 채우고 나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을 때여야 자연스럽게 사랑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지고 흘러들어올 수 있는 거라고.

그 회복은 그 시기에 써냈던 곡들을 통해서 시작된 것이라고.



이 곡을 들으면서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겼다.

내가 나를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말자고.

내가 먼저 내게 다가가 주자고.

그건 누군가가 아니라 스스로 덤덤하게 채우는 것이라고.

조금씩 나를 살피고 알아가며 다듬는 이 느린 걸음이 언젠가는 그 길로 하여금 온기와 사랑을 담아 누군가를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을 테니까.


이렇게 음악은 때로 들추기엔 너무 아파서 외면한 마음을 우리에게 꺼내어 보여준다.

이 곡을 통해 나는 내가 버티고 견뎌온 시간을 조용히 껴안을 수 있었다.





참고

https://www.laphil.com/musicdb/pieces/3830/suite-no-2-for-two-pianos-op-17?utm_source=

https://chamberfestcleveland.com/wp-content/uploads/2020/08/cfc_2020_radioSeries_pgm_9_NEW.pdf





『 슬프고 아름다운 Bittersweet 』21편 - '라흐마니노프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모음곡 2번 4악장 타란텔라'였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음악에 대해 나눕니다. 그저 알고 싶고, 깊게 느껴지는 것을 ‘왜?’라고 스스로에게 물으며 저만의 시선으로 편하게 담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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