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새로운 싱글 그리고 봄 (And Spring)을 발매했습니다.
발매일에는 어김없이 긴장과 설렘이 찾아옵니다.
평소처럼 일상을 보내다가도, 발매 시간이 되면 그 모든 감정들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와 저를 관통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이 곡을 쓰고 작업했던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영감의 시작 - 꽃길 위의 마음을 붙잡는 순간
벚꽃이 만개한 꽃길을 걸으면서 느꼈던 순간과 감정을 담아 이 곡을 썼습니다.
풍성하게 만개한 벚꽃, 파란 하늘, 이 순간만이 존재하는 봄의 찬란함을요.
당시 3분여 정도의 모티브를 녹음했고, 그 마음이 자연스럽게 선율로 잘 담겨서 칠 때마다 그때의 마음을 그대로 고스란히 꺼내올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반 정도만 완성되어 있던 모티브를 지난겨울부터 조금씩 작업하기 시작했습니다. 빌드업해서 돌아오는 봄엔 꼭 이 곡을 발매하고 싶었어요.
겨울의 고단함 속에서 피어난 선율 -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업실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호젓하게 혼자만의 시간을 누릴 수 있는 여유는 더더욱 없기 때문에 시간의 틈을 의도적으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겨울 동안은 광장에서의 시간과 관심도 소홀히 할 수 없었고, 11월부터는 새로운 직무까지 시작하면서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갔습니다. 내 자신의 한계와 현실을 많이 느꼈습니다. 글도 쓰지 못했고요.
무엇보다 음악이 아득하게 멀게 느껴져서 두렵기도 했지만, 적응하는 과정이려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자는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고단함이 있었기 때문에, 건반 속으로 더 뛰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아니, 건반 위에 있는 시간 속에서 위안받았다.라고 말해야 할 것 같네요.
틈나는 모든 시간들과 가용할 수 있는 에너지를 한 곳으로 조용히 모았습니다.
건반 앞에서 마주한 감정들 - 모티브에서 완성곡으로
모티브 상태의 곡은, 완성된 형태라고 보기 힘들었습니다. 어디까지나 큰 주제와 테마를 잡는 중요한 주제가 담긴 모티브였지만, 그 테마를 이어받는 다른 흐름도 자연스럽게 연결되어야 곡이 완성되니까요.
지난겨울부터 이 모티브를 틈날 때마다 욕심 없이, 사심 없이 쳤습니다.
어느 날은 모티브 상태에 그대로 머물렀고, 어느 날은 새로운 테마가 나오기도 했지만 자연스럽게 담기는 멜로디는 계속 나오지 않았습니다.
시간은 계속 흘러가는데 진전은 없었죠. 하지만 그런 헤매는 시간들, 진전이 없어 보이는 시간들도 결국 유의미하게 쌓이고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려고 애썼어요.
좋아하는 피아노 곡들을 찾아 듣고, 쳐보고, 또 시집이나 그림을 건반 앞에 가져다 놓고 보면서 쳐보기도 하고요.
시간이 날 때마다 계속 그 모티브를 반복해서 쳤습니다.
좌측부터
앙리 마르탱, 봄의 연인 Henri Martin, Lovers At Spring Version In Flovering Frame
클로드 모네, 포플러나무 아래에서 Claude Monet, Under the Poplars
조르주 피카드, 벚꽃나무 아래의 로맨스 Georges Picard, Romance under the blossom
완성으로 이어지는 흐름 - 오만과 편견
그러던 중, 문득 오만과 편견 영화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특히 새벽녘, 다아시가 리지를 찾아와 서로의 마음을 붙잡았던 장면을 보고, 또 보았습니다. 여운이 깊었죠. 그때 흘렀던 음악(Your Hands Are Cold)을 중심으로 다른 트랙들도 반복해서 들으면서요. 다리오 마리아넬리 작곡, 장 이브 티보데의 아름다운 연주들..
그 장면을 떠올리며 건반 앞에 앉았고 드디어 16마디를 이어 붙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 이제야 제자리에 맞는 선율이 들어왔구나! 그렇게 기다리던 소중한 순간입니다.
그렇게 16마디가 새롭게 써지고 나니 나머지는 억지스럽게 끌고 가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곡이 써졌습니다. 처음 모티브를 담았던 심상을 이어가면서도, 비워진 그리움의 정서를 한 움큼 더 얹어서 지금의 그리고 봄 곡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사운드에 담은 공간과 울림 - 봄의 메아리
곡의 원제는 봄의 메아리였습니다. 꽃이 활짝 핀 지금 이 순간을 음향적으로도 형상화하고 싶었고, 소리가 듣는 이에게 가깝게 현재진행형으로 느껴질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어요. 그러려면 이 선율이 멀리멀리 울려 퍼질 수 있도록 소리가 공간감 있게 메아리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푸른 고요는 연주곡 같은 느낌이었다면, 그리고 봄은 함께 공명하며 울리는 소리로요.
그래서 사운드 레퍼런스 곡도 그런 곡을 찾아서 엔지니어님께 공유드리면서 사운드 방향성을 최대한 설명해 드렸습니다. 엔지니어님께서는 뜨거우면서도 얼음이 들어간 아메리카노가 상상된다면서, 도전해 보고 싶었다고 하셨어요.
피아노 소스를 드라이한 것과 resonance를 얹어서 공간감을 살린 소스 두 개를 가지고 동시에 녹음한 소스 밸런스 조절하는 것처럼 혼합을 했습니다. 그리고 센터는 드라이하게, 사이드는 울리게 해서 그 둘의 밸런스를 조절하면서 잡았다고 하셨습니다.
피아노 왼손이 저음에 완전 5도가 많이 들어가서 울림이 세다는 고민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리버브도 피아노 원음을 로우컷하지 않고(음색자체가 변하기 때문에) 리버브의 적정량을 send로 보내고, 리버브 트랙 자체에서 EQ로 로우컷을 하는 방식으로 리버브의 자연스러운 일치감을 주겠다고 하셨어요.
영상과 커버 아트에 담긴 봄
음원을 완성할 시간도 모자랐으니, 뮤직비디오는 생각할 겨를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유튜브에 올릴 영상에 커버이미지만 올리기에도 아쉬움이 남아서 발매일 전날, 급히 꽃잎 날리는 필터들을 사용해서 영상을 만들었습니다.
커버이미지는 클로드 모네의 봄풍경이 많이 떠올려졌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시안 작업 중 이 커버로 결정되었습니다. 마치 봄 벚꽃 잎이 하나하나 겹쳐 보이는 듯한 핑크빛 느낌이 좋았습니다.
내면과의 조용한 설득 - 아쉬워도 봄을 놓칠 수 없으니까
아쉬운 부분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벚꽃이 피는 시기에 꼭 내자고 마음먹지 않았다면 올해 봄은 그냥 지나갔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내년 봄이라고 꼭 이 곡이 세상에 나올 수 있을 거란 보장도 없었겠죠. 중요한 것은 올봄에 내자는 확고한 마음이었습니다.
터치의 결을 다시 녹음하고, 숨 쉬는 템포도 더 조절하고, 피아노 음색도 더 많은 경우를 비교해 보고 실험하면서 맘에 드는 것을 찾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내게 주어진 시간과 에너지는 유한하기에 처음부터 스스로와 약속한 데드라인 일정을 넘기지 않았어요.
최종 마감일인 3월 마지막 날에 모든 발매자료들을 음원 유통사에 넘겼습니다.
그 후 발매일까지 완성된 곡을 들으면서도 여전히 아쉬움이 남았지만 제 자신을 다독이며 조용히 설득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쉬운 마음은 아니었어요. 다음 곡 작업은 시간을 여유롭게 길게 잡고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https://youtu.be/mp1prKscs1M?si=PJEHOu1fm8Gyn5TK
그리고 봄 (And Spring) - 최민아 (Mina Choi)
올해 봄은 벚꽃길을 시간 나는대로 많이 걸었습니다. 출퇴근길의 집근처를, 하루는 한강변을, 하루는 샛강생태공원 주변을, 하루는 윤중로를요. 한가지 인상적이었던 것은 꽃길을 걷는 사람들의 표정이 모두 환한 꽃처럼 밝게 웃고 있었다는 겁니다. 꽃이 모두를 행복하게 채워주는 순간들이었어요.
지금 이 곡이 세상에 나와 있다는 사실에 너무 감사한 마음입니다. 조심스럽고 따뜻하게, ‘지금의 나’를 담아냈다고 생각해요.
이 곡을 만든 시간들, 꽃잎 사이로 스치던 감정들이 누군가의 마음속 어딘가에 닿아 오래 머물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봄은 언젠가 다시 오겠지만, 이 봄은 단 한 번뿐이니까요.
또 다른 계절이 오면 저는 다시 건반 앞에 앉아 있겠죠. 그러니까 이 기록은, 다음 계절의 나에게 건네는 작은 다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봄.
And Spr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