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끝자락 - 김동률 (feat. 김정원)

믿음과 기다림

by 윤슬


https://youtu.be/YVB8vL7rBjY?si=k3hwahrQc_82Eqxl



여전히 뜨거운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그래도 입추로 들어선 이후 습도는 조금 가셨고, 내 몸을 스치는 바람 끝에 입추라는 절기를 매달고 우리를 미세하게 가을로 인도하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들르던 단골카페가 문을 닫아, 마치 유목민처럼 여기저기 헤매며 맞는 집을 찾아다니고 있다. 하루의 시작을 음악과 함께 견고하게 시작하게 해 주던, 그 확실한 작은 행복 한 조각의 안온함이 사라져 버려 아쉽기만 하다.


지난 일주일은 참 길고 길어 한 달처럼 느껴졌다. 존경하는 마음으로 25년 넘게 계속 뵈온 분도 5개월 만에 다시 찾아가 안부인사를 드리며 여지없이 책을 주고받았고, 15년 만에 첫 직장 동기와 점심을 함께 했다. 서로 한눈에 알아보며 변한 건 없다면서도 친구의 초점 안경 너머로 세월의 흐름을 실감했다. 가쓰오부시가 진하게 우러나온 살얼음이 동동 뜬 육수를 시원하게 들이키며 냉모밀을 맛있게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고, 정기상담도 받았다.

바뀐 법 개정으로 정신없이 몰려든 일들도 태풍처럼 여름 내내 휘몰며 지나갔고, 다행히 큰 실수 없이 잘 마무리되고 있다. 7월 중순 이후 반주봉사는 잠시 쉬고 있고, 3월부터 겨우 시간을 내 이어가던 파이프오르간 레슨도 잠시 멈춘 상태다. 어제는 아이가 학원에 가 있는 시간 동안 본가에 들러 부모님도 뵙고 왔다.


인생의 많은 부분들을 또 해체하고 다시 세우는 중이다. 생각하며 행동해야 하기에 정신적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기분이다. 몸이 보내는 신호가 자명함에도, 하루에도 수십 번 이게 맞는 걸까? 하는 생각이 스쳐간다. 시간은 제법 걸릴 테고. 숙고하는 시간 속에서 많은 용기를 끌어안고 다시 부딪혀 보려 한다.


하루 10분이라도 음악 작업을 해보려는 결심은 아직 결심에 머물고 있다. 요즘은 내가 작곡가인가 싶을 정도로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지금은 잠시 한편에 미뤄둘 수밖에 없다.


그래도 놓지 않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믿음일까 기다림일까.

이 여름의 끝자락에 서서, 이 밤을 길게 붙잡고 있다.

김동률의 음성과, 김정원의 피아노로 지난 일주일을 돌아보며,

내일 다시 시작될 또 한주를 덤덤하게 기다리며,

젖어 있는 두 눈을 비비는 여름의 일요일 저녁이다.








더운 여름의 끝자락
매미들은 울어대고
느릿느릿 읽던 책 한 권 베고서
스르르 잠든다


내가 찾아간 그 곳은
꿈에서만 볼 수 있는
아침이면 까마득히 다 잊혀질
아득히 먼 그 곳


가물가물 일렁이는
누구일까 애타게 떠올려 봐도
무엇을 찾고 있는지
코끝이 시리다


홀로 걷고 있는 이 길
어제처럼 선명한데
이 길 끝에 나를 기다릴 누군가
마음이 급하다


라라라라 읊조리면
어느샌가 겹쳐진 낯익은 노래
그 순간 눈은 떠지고
바람만 흐른다


또 꿈이었나 멍하니 기지개를 켜다가
젖어 있는 내 두 눈을 비빈다




김동률

" 실은 이미 2년 전에 모든 녹음 과정은 끝났는데요. 작년 여름에도 공개할 수 있었던 곡을 일 년 뒤로 미뤘던 것은 그만큼 제가 이 곡을 아끼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사실 ‘여름의 끝자락’은 일반적인 가요 형태의 곡은 아닙니다. 좀 더 클래식 가곡 형태에 가까운 곡이지요. 만약 정규앨범 안에 삽입되었더라면 누군가에겐 수록곡 중 한 곡으로 그냥 스킵하게 되는 곡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기왕 싱글로 몇 곡을 발표하게 된 이번 기회에 이 곡을 가장 마지막으로 들려드리고 싶었습니다. 저는 항상 대중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대중 음악가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다수가 아닌 소수 리스너를 위한 음악도 진지하게 열심히 만들고 있다는 걸 티내고 싶었나 봅니다. 단시간 내에 많은 사람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는 건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여름이 찾아 올 때 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의 귀와 마음에 스며들어 조용한 위로가 되어 줄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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