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속에 스며드는 피아노

Hiromi - Green Tea Farm

by 윤슬



비가 내리고 있다.

비 오는 날이면 늘 습관처럼 이 곡을 꺼내 듣는다.

타닥타닥 빗소리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음악, Hiromi의 ‘Green tea Farm’이다.


https://youtu.be/5sXxTJGGaj0?si=nd2jRDFKRmxwUEqu


Green Tea Farm - Hiromi



오늘 아침, 우산을 쓰고 출근길에 비와 함께 이 곡을 들었다.

전주가 흐르면 마중물처럼 단번에 마음속 깊이 들어간다. 무언가 그녀만의 이야기가 흐른다. 재즈 피아노의 유려한 화성과 멜로디는 듣는 이의 마음에 복잡하고도 다채로운 빛깔로 얘기해 준다. 그렇기에 개개인에게 다가가는 보편성도 더 커지는 것 같다.


언젠가 이 곡을 들으면서 가랑비를 맞으며 젖은 눈으로 한강을 달렸던 적이 있다. 그래서 이 곡을 들을 때면 그때, 그날이 소환된다. 하지만 이젠 그날의 기억마저 점점 희미해져 간다. 대신 빗속에 드리운 이 선율만이 여전히 뭉근하게 그 자리에 남아있다.


이 곡을 쓰고 연주한, 천재(라고 말하고 싶다) 히로미 우에하라(Hiromi Uehara)는 자신의 고향인 하마마쓰가 녹차 공장으로 유명한 곳이라고 했다. 아마도 이 곡은 고향의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곡일 것이다.


그녀에게 “당신의 음악이 담고 있는 핵심 메시지는 무엇인가요?”라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열정과 사랑이에요! 저는 사랑하는 음악을 온 마음을 다해 연주합니다. 형태가 무엇이든—예술이든 음악이든—중요한 것은 진심이 직접 마음에 닿는 것이에요. 눈을 거치지 않고 귀를 거치지 않고, 바로 영혼으로 전달되는 것이죠. 그게 제가 바라는 바예요.”


난 이 곡을 들으며 어떤 이야기가 진심으로 지나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들을 때마다, 내 기분, 내 상황에 따라 다르게도 들리는데, 그것은 가사 없는 연주곡만이 가진 특권이 아닐까 싶다.


오늘은 <나의 이브 생 로랑에게>의 한 구절이 히로미의 선율 속에서 부드럽게 겹쳐졌다. 피에르 비르제가 이브 생 로랑에게 쓴 편지처럼, 어떤 장소는 그곳의 빛과 향기, 공기까지도 오래된 기억을 품고 있는 것 같다. 발걸음마다 혼잣말로 마음을 새겨놓고 온 그 거리처럼, 내가 빗속에서 한강을 달렸던 그날처럼 말이다.


“마라케시에 머물면서 어떻게 너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있을까? 네 일과 삶에 있어 그토록 소중했던 이 도시 곳곳에 너에 대한 기억이 달라붙어 떠나질 않는걸. “


- 피에르 베르제, 나의 이브 생 로랑에게



이 곡을 듣고 있으면, 누구나 마음속 어딘가에 자신만의 장면 하나쯤은 떠오르지 않을까.

오늘처럼 비가 많이 오는 날, 곳곳에 피해가 있다는 소식에 마음이 무겁지만, 난 퇴근길에도 히로미의 선율에 기대어 조용히 마음을 달래며 발걸음을 옮겼다. 







참고

https://www.crispconsultancy.co.uk/post/hiromi-uehara-shaking-hearts-with-soulful-artis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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