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요일의 슬픈 Bittersweet 』 5편 바흐 샤콘느
왼손잡이 여인과 왼손을 위한 샤콘느
반대로 놓인 전화 수화기
노트 옆에 놓인 연필
그 옆에 손잡이가 왼쪽으로 돌려진 찻잔
그 옆 반대쪽으로 깎다 만 사과
역시 왼편으로 젖혀진 커튼
또한 왼쪽 재킷 주머니에 들어있는 열쇠 꾸러미
나 어느 낯선 대륙에서
수많은 다른 사람들 가운데서
혼자 있는 그대를 만날 수 있으리
그대도 수천의 타인들 가운데서 나를 보고
우리들 끝내는 서로를 향해 다가가리
- 페터 한트케, 왼손잡이 여인
지난주에 이은 샤콘느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바흐 왼손을 위한 샤콘느와 왼손잡이 여인
지난주 어느 구독자님께서 샤콘느글을 보시고 덧글을 남겨 주셨습니다.
“ 바흐의 곡을 피아노로 편곡한 것 중에 브람스가 오른손을 다친 클라라를 위해 왼손연주만으로 편곡한 것도 있는데, 이곡은 다른 음악가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준 것 같아요. “
슈만이 아닌 브람스의 편곡?
오른손을 다친 클라라를 위해 편곡한 왼손피아노 연주??
바로 호기심이 일었습니다.
슈만과 클라라의 사랑뿐만 아니라, 평생 클라라 주위에 머물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실현한 브람스의 이야기 또한 너무나도 유명하지요. 그래서 댓글이 강한 울림을 주었습니다.
연주회는 계획대로 열릴 텐데 오른손 통증으로 연주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으니 당황했을 겁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브람스는 바로 왼손으로 피아노 솔로 연주를 할 수 있도록 편곡을 해 준 것이죠. 어느 목사님께서 사랑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존한다고 말씀하셨던 게 떠올랐습니다. 편곡된 악보는 브람스 사랑의 실체 중 하나가 되겠네요.
곡을 듣기도 전에 저는 이 슬픈 곡이, 한 손으로 표현하는 관점에서 얼마나 절절하게, 혹은 얼마나 상냥하게 편곡될지 너무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페터 한트케의 왼손잡이 여인중 제가 좋아하는 한 구절이 저절로 떠올랐어요. 그리고 기대에 찬 마음으로 찾아서 감상해 봅니다.
아.. 브람스 너무합니다.
이걸 왼손 혼자 친다고?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론 클라라는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였고, 피아니스트들에게도 기교적으로도 그렇게 어려운 곡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 선율과 화음을 생략하고, 압축하고, 왼손이 편하도록 음을 바꿔냈겠지? ‘라는 다소 음악적으로는 무모한 로망을 기대했나 봅니다.
정신 차리고 다시 생각해 봤습니다. 양손연주를 왼손 하나로 최대한 표현해내야 하니 얼마나 왼손의 범주가 크고 분주할까요. 벌어지는 음정으로 잔향이 끊어지는 부분도 간혹 있고 연주자에 따라선 다소 거칠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음율적으로는 왼손 하나로 연주하기엔 빈틈이 없습니다. 마치 무반주 첼로곡을 듣는 것처럼요.
아.. 여기서 브람스의 마음이 다시 느껴졌습니다.
브람스는 클라라가 왼손만으로도 바흐의 샤콘느 원곡을 충분히 표현하면 좋겠다!라는 마음이었다는 걸요.
최근엔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을 많이 들어서였을까요. 제가 기대했던 편곡은 선율과 화성을 절제하면서도 반음계를 적재적소에 넣고, 음을 변형시키는 것이었나 봅니다. 그저 지금의 제 시선에서 느끼는 주관적인 음악언어방식이 빚어낸 기대이자 한계입니다. 물론 정답도 아니며, 앞으로도 상황 따라 계속 변할 테지요.
브람스가 제 식대로 편곡했다면 ‘바흐의 샤콘느’를 들으러 온 분들께는 피아노 솔로곡인데 원곡을 너무 훼손한 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을 수도 있겠지요. 오른손이 아파서 연주를 못하는 건 연주자의 개인적인 사정일 뿐이니까요.
' 해상도를 높여라.'라는 말을 종종 듣게 됩니다. 최대한 업계가 사용하는 객관적이고 공통된 용어로 소통할 줄 알아야 하며, 계획하고 방법을 잘 구현하여 행동으로 옮겨 아웃풋을 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앞서 제가 기대했던 것처럼 개인감상의 측면도 물론 필요하지만, 너무 주관적인 자기도취로 오는 자의적인 해석이 강하면 보다 많은 사람들과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을 놓칠 수 있겠지요.
다양하게 시도해 보면서 내가 하고 싶은 결은 놓지 않으면서도, 대세가 맹목적인 목표나 목적이 되지 않기. 어쨌든 좋은 결과물로 들려주고 증명하는 음악인이 되어야겠죠.
표현이란 결국
타자가 이해할 수 있는 형태,
타자와 공유할 수 있는
형태가 아니고서는 성립되지 않는다.
그래서 추상화라고 할까,
공동화라고 할까,
그런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면 개인적인 체험이나 아픔,
기쁨은 떨어져나갈 수밖에 없다.
거기에는 절대적인 한계가 있고,
어떻게도 할 수 없는 결손감이 있다.
하지만 그런 한계와 맞바꾸어
전혀 다른 나라,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
함께 공동으로 이해할 수 있는
모종의 통로가 생긴다.
언어도 음악도 문화도 그런 것이 아닐까.
-류이치 사카모토, 『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 』
이제 바흐의 샤콘느를 다양하게 들어볼 시간입니다. 총 4곡을 선곡했습니다.
피아노, 타악기, 오케스트라, 기타, 비올라, 첼로 등 다양한 악기로 연주되었습니다.
고민이 많았습니다. 백건우와 다닐 트리포노프연주도 너무 좋았기 때문이죠. 슬픔을 한번 정제시킨 듯 노련하게 연주한 그들과는 달리 키신의 연주엔 열정적인 숨결이 느껴졌습니다. 마음이 가감 없이 담겨있달까요? 요즘 임윤찬의 연주에서 느껴지는 결처럼 말입니다.
마림바라는 타악기의 개성을 살려 과감한 해석으로 탄생한 곡입니다. 색다른 샤콘느도 즐겨보세요.
클래식 기타의 신이라고 불리는 세고비아의 연주입니다. 기타도 여러 연주가 있는데 세월 따라 변한 음향의 차이를 넘어서고도 남을 안정적인 편한 연주는 단연코 세고비아였습니다.
저는 이 음원이 정말 마음에 듭니다. 개성 있는 연주와 사운드로 귀를 사로잡는 매력이 있습니다. 이럴 때 믹싱 마스터링의 힘을 느낍니다. 단, 이런 곡들은 여러 번 반복하기보단 한 번 정도 집중해서 듣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세르비아의 이 연주자는 개성 있는 외모뿐만 아니라 앨범커버도 재미있게 연출합니다. 음악홍수시대에 손끝을 터치하게 하는 능력도 큰 장점이 되는 세상인 것 같습니다. 그는 크로스오버곡들로 시작해서 도이치 그라모폰과 계약 후 바흐등 클래식 곡들을 중심으로 그만의 개성 있는 곡들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습니다.
오늘 샤콘느 후속글은 독자분의 덧글이 아니었으면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나를 위해 쓰기 시작한 음악글이고, 전문가의 평론글도 아닐진대, 이렇게 깊이 읽어주시고 생각을 나눠주셔서 글 쓴 보람이 느껴졌습니다. 덕분에 바흐 샤콘느에 대한 곡들을 다양하게 소개하며 제게도 의미 있는 시간으로 채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빠에게 바흐 샤콘느에서 악기별로 좋아하는 연주가 있으시냐고 여쭤봤습니다.
" 바흐 샤콘느? 글쎄..
요즘 나는 말러 교향곡 5번 4악장을 자주 듣고 있어. 시기마다 때마다 듣는 음악도 다르잖니.
바흐 샤콘느는 정말 많이 연주되었는데도, 당장 떠오르는 게 없네. "
아빠는 말러의 계절을 보내고 계시나 봅니다.
그리고 저도 여러 음원들을 들으며 생각했습니다.
" 아.. 나는 역시 바흐 샤콘느는
정경화 바이올린이 좋구나.
그리고 바흐 샤콘느보다는
역시 비탈리 샤콘느구나. "
왜냐면 여러 바흐 샤콘느들을 듣다가 중간중간 졸고 있는 저를 발견했으니까요 ㅎㅎㅎ
마지막으로 오늘 ‘ 왼손 ‘ 의미를 살려, 제가 연습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피아노 왼손강화 연습교재에 실린 한 문장을 소개하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왼쪽을 정복한 사람은 세계를 정복한다.
이건 제가 어릴 적에 읽은 복싱 만화에 나온 말입니다. 오른손의 강력한 펀치보다 왼손의 잽으로 상대를 교란시켜 자신의 페이스로 이끌어가는 것이 승패를 좌우한다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피아노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좌우의 손의 훌륭한 콤비네이션,
밸런스가 승리(멋진 음악)를 가져다줍니다.
- 마야마에 사치히로
『 수요일의 슬픈 Bittersweet 』 5편 - 왼손잡이 여인과 왼손을 위한 샤콘느였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음악에 대해 나눕니다. 그저 알고 싶고, 깊게 느껴지는 것을 ‘왜?’라고 스스로에게 물으며 저만의 시선으로 편하게 담아봅니다.
다음 주 수요일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