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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May 03. 2023

비탈리의 샤콘느는 위험하고 바흐의 샤콘느는 괜찮다?

『 수요일의 슬픈 Bittersweet 』4편 세상에서 가장 슬픈  춤곡



함부로 그런 음악 듣는 거 좋지 않아.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춤곡이야.

바흐곡이 좋지.
무반주 피아노는 장엄하고,
첼로로 들으면 우울하고,
바이올린은 애처롭고.
독일사람들은 왜 그런 감정으로
춤을 추는지 모르겠어.



15년 가을 어느 날, 깊은 새벽.

비탈리의 샤콘느를 들으며 언젠가 아빠가 해 주신 말을 떠올려 봤습니다.


음악을 함부로 듣지 말라니요.. 지금도 오디오 관련 뭘 여쭤보면 왜 묻냐고 하시고, 가끔은 알려고 하지 말라고도 하십니다. 아니 왜요.. 궁금하다는데...

이젠 굴하지 않고 한 번 더 물어보긴 합니다.

구글에 물어보지 않고 아빠에게서 듣고 싶은 딸의 마음을 아빠는 아실까요?


https://youtu.be/K0iB84__atU


곡제목 : 샤콘느 G단조 Chaconne in G Minor

작곡가 : 토마소 안토니오 비탈리(Tomaso Antonio Vitali, 1663-1745, 이탈리아, 바이올리니스트


바이올린 :  야샤 하이페츠 (Jascha Heifetz 1901-1987)

오르간 : 리처드 엘사서 (Richard Ellsasser, 1926-1972)

발매년도 : 1959년


이제 우리의 바이올린을 부수어 버려야겠군.


하이페츠의 동료이자 우상이었던 크라이슬러가 연주회에서 하이페츠의 연주를 감상한 후 옆의 동료에게 했던 말이라고 합니다.

이 곡은 1867년 독일 바이올리니스트 페르디난디 다비드(Ferdinand David)가 바이올린으로 재편곡해서 발표한 이후 더 유명해지기 시작했고, 1917년 하이페츠가 카네기 홀에서 데뷔 연주회를 한 후에는 현대에도 대중의 사랑을 널리 받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하이페츠 바이올린의 샤콘느를 듣고 있으면 다른 곡을 찾아볼 생각이 전혀 나질 않습니다.

이 연주만이 데려다주는 시공간의 마법이 존재하는 느낌요.

오르간 소리와 하나가 되어 그 시대만이 주는 악기와 형식에서 나오는 힘이 느린 춤의 선율로 연결됩니다. 이 글을 쓰면서 듣고 있는데, 도통 글에 집중하기 힘든 마음입니다. 울면서 연주하는 느낌이 이런 걸까요?


" 함부로 그런 음악 듣는 거 좋지 않아. "

아.. 역시 그런 걸까요.


이 곡에서도 긴장감을 주는 부분에서는 음의 옥타브 도약과 기본음 ‘도’가 주는 힘이 있습니다.

1음의 강직함이요. 시작이자 끝이며 근원인 바로 그 음.  1음. ‘도’이자 ‘솔’


비탈리의 샤콘느가 저에겐 『 수요일의 슬픈 비터스위트 』 연재의 원형, 그 출발선입니다.

언제 이 곡을 처음 접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그냥 내게 절대적인 슬픔의 곡이라고 하면 주저하지 않고 이 곡이 떠오르니까요.


그런데 춤곡이라뇨?

샤콘느가 곡제목인 줄 알았습니다.

제겐 절대적 슬픔의 대명사인데, 곡형식을 일컫는 단어라는 걸 그제서야 알게 되었던 것이죠.


샤콘느를 흔히 슬픔과 관련지어 이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무 상관도 없다.
샤콘느는 그냥 느린 4분의 3박짜리 무곡이기에 어두운 단조풍의 샤콘느들이 현대에서 자주 연주되는 것일 뿐.  - 위키 -

네. 위키가 시크하게 말해주네요. 슬픔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고 합니다.


17-18c 프랑스 남부와 스페인에서 유행한 춤곡인데, 이탈리아와 독일로 넘어오면서 기악형식을 갖추게 된다고 합니다. 춤을 추기 위한 것에서 작곡가의 창의성에 의해서 감상용으로 발전하고 변화한 지점인데 (최윤희 음악연구소) 그 점이 색다르게 다가옵니다.

아빠가 말씀하신 “ 독일 사람들은(바흐의 샤콘느) 왜 그런 감정으로 춤을 추는지 모르겠어 “ 란 말씀이 이제야 머리로 이해됩니다.



샤콘느는 내 생각으로는 음악에서 가장 놀랍고 무한한 의미를 갖는 것 중의 하나입니다. 작은 악기로 편곡된 것을 사용해도, 우리는 가장 깊은 사상과 가장 강력한 감정의 모든 세계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작품을 내가 쓰고 있다는 생각만 해도, 그 극도의 흥분과 정서적 긴장은 나를 미치게 만듭니다. 

1877년 클라라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이성일, 브람스 평전 403p



오래전부터 바로크의 변주곡 형식인 샤콘느에 진지한 관심을 보였던 브람스는 1877년 초 푀르차흐에서 한 샤콘느 음악의 필사본과 위의 말을 편지로 담아 클라라에게 보냈다고 합니다. 1885년도에 완성한 교향곡 4번의 4악장에서 샤콘느 형식을 맘껏 펼쳤던 브람스도 오랫동안 이 형식에 깊이 매료되었던 것이 틀림없어 보입니다. 



공통점을 발견하다.


이 글을 쓰면서 발견한 지점입니다.  제 두 번째 싱글곡 작업을 하면서, 곡 구성의 관점에서 스토리를 늘리기 위해 선율 8마디를 추가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때 머릿속으로 상상한 이미지는 남녀가 등을 맞대고 애수 어린 표정으로 고개는 살짝 옆으로 돌린 채, 손은 스치듯 잡고 슬픈 춤을 추는 모습이었습니다. 슬픈 느린 춤곡이라는 샤콘느의 형식미가 맞닿아있고, 조성도 G minor로 같다는 걸 이 글을 쓰면서 발견했어요. 의도하진 않았지만, 알게 모르게 이 곡이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끼치지 않았나 생각하게 된 지점입니다.


혹시 궁금하신 분들이 계시다면 감상해 보세요. 저 부분을 타임링크로 공유드립니다.  2’ 07”~2’ 29’’구간입니다.

https://youtu.be/HUuRkCD-Z_I?t=127

늪 Into the Darkness 2'07'' 구간













두 번째로 들려드릴 샤콘느는 바흐의 샤콘느입니다.



나는 바흐가 바이올린으로 직접 연주하는 샤콘느를 들어보고 싶어요.
- 정경화



작곡가 : J. S. 바흐

곡제목 : 파르티타 2번 중 샤콘느 Chaconne from Partita No 2 in d minor, BWV1004

바이올린 : 정경화


아빠가 말씀하신, 피아노도 첼로도 바이올린 버전도 다 좋다는 바흐의 샤콘느.

저는 정경화의 바이올린 연주로 선곡했습니다. 필히 영상으로 감상하셔야 정경화만이 줄 수 있는 섬세하고 날카로운 깊이를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정경화는 말합니다.

" 파르티타 2번, 샤콘느를 들어보면, 쬐끄만 나무통 악기로 지구상에 그런 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은 바흐 뿐이에요. 작년에 카네기홀에서 바흐의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를 연주하면서, 나는 또 감탄했어요. 이 작은 악기에 이런 수만 가지 음률을 담다니. 나는 바흐가 바이올린으로 직접 연주하는 샤콘느를 들어보고 싶어요.”


- 김지수, 『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 』


언제 슬프냐는 질문에 정경화는 '가뭄 끝에 논바닥처럼 갈라진 목소리로 '이런 답변을 했다고 합니다. 


“나는 굿바이가 슬퍼요. 나는 사랑을 잘해요. 인간적인 사랑을 할 때는 심장에서 피가 철철 흐르도록 하지요.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 보낼 때가 제일 슬퍼. 나를 닮아선지 요하네스, 클라라도 ‘굿바이’를 제일 싫어해. 저렇게 눈빛부터 슬퍼진다고.” 


- 김지수, 『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 』



https://youtu.be/1F7c8zIhBGg


명동성당에 울려 퍼지는 정경화의 바흐 샤콘느 ⓒ Youtube crediatv



음악을 운명적으로 받아들이며 호텔벽지를 보며 울었던 17살의 그 순간, 연주가로서 마주하는 고독에 대한 상념, 눈물로 쏟아내는 인생의 슬픔과 사랑 또한 그녀만의 섬세한 감성으로 체화되어 울려 퍼집니다.

그렇기에 그녀가 전하는 말들은 진실되게 묻어나고, 사랑 가득한 바이올린 선율로 피어올라 가슴에 꽂혀 버리는 걸까요? 저 미간의 주름, 꼿꼿이 두 다리를 대지로 내리 뻗어버리는 뿌리의 강인함마저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정경화의 바이올린 선율이 우리에게 축복으로 내려와 벅차게 누릴 수 있으니까요.








『 수요일의 슬픈 Bittersweet 』 4편 - 비탈리와 바흐의 '샤콘느'였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음악에 대해 나눕니다. 그저 알고 싶고, 깊게 느껴지는 것을  ‘왜?’라고 스스로에게 물으며 저만의 시선으로 편하게 담아봅니다.
다음 주 수요일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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