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코프스키의 상실에 관하여
플로렌스의 추억 Souvenir de Florence
플로렌스 Florence
이태리의 도시이며 피렌체 Firenze(이태리어)로 불리는 이곳.
이곳에 가고 싶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의 배경이 된 도시, 피렌체 대성당(두오모 성당)이 있는 곳이고,
또 하나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곡,
차이코프스키의 플로렌스의 추억 Souvenir de Florence 제1악장 때문이다.
https://youtu.be/x5OaUU79P68?si=Je7wc054yyNxnGyL
차이코프스키 - 현악 6중주 < 플로렌스의 추억 > Op.70 제1악장 Allegro con spirito
Pyotr Ilyich Tchaikovsky - String sextet <Souvenir de Florence>, Op.70 I. Allegro con spirito
Violin: Sarah Chang
Violin: Bernhard Hartog
Viola: Wolfram Christ
Viola: Tanja Christ
Cello: Georg Faust
Cello: Olaf Maninger
Label : EMI Classic (2002)
20대 어느 시절, 상실의 마음으로 힘들었을 때 이 곡을 듣게 되었다. 마치 차이코프스키가 비탄의 심장을 부여잡으며 슬프게 노래하는 것 같았다. 전주도 없이 메인 선율이 바로 가슴에 내리 꽂혀버린다. 당시 그 감정을 음악으로 함께 느끼며 큰 위로를 받았다. 나도 플로렌스에 머무르면서 차이코프스키가 곡에서 표현한 좌절과 욕망, 회한등의 살아있는 감정을 느껴보고 싶은 마음이 무척 컸었다.
그가 평생 시달렸던 내적인 불안과 고난을 선율의 비탄으로 아름답게 울리며 견뎌낸 듯하다. 그의 음악들을 듣고 있으면 자신의 상실과 슬픔을 이렇게 창조하며 승화시킬 수 있다니, 세상에.. 음악을 만들어내던 그 순간만큼은 차이코프스키에게도 진정한 축복이었기를 바라게 된다. 그의 음악을 듣게 될 인류에게도 축복이다. 그가 힘들었던 시절부터 10년이 넘도록 물심양면 후원했던 나즈네다 폰메크 부인에게 감사함이 밀려올 정도다.
차이코프스키가 어떤 마음으로, 어떤 연유로 이런 스토리의 곡을 썼는지 궁금해졌다. ‘ 플로렌스라는 도시가 그에게 준 예술적 영감을 현의 선율에 담아 ‘라는 일반적인 평론을 벗어난, 더 깊고 진실된 이야기는 없을까?
총 4악장으로 구성된 이 곡을 쭉 듣고 있으면, 1악장의 배치가 정말 특이하게 다가온다. 보통 이렇게 감정의 파고가 센 경우는 1악장보다는 3,4악장에 배치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1악장의 서사를 왜 제일 첫 번째에 배치했는지 차이코프스키의 생각이 궁금하다. 그리고 왜 이렇게 계속 어딘가로 내달리는 선율과 리듬 화성을 쓰면서 안정감 있는 1도를 슬쩍 닿았다 가듯이 야박하게 썼는지도. 물론 나머지 악장에서 그 따스한 온화함을 충분히 채워준다. 하지만 1악장은 황량하고 메마른 슬픔이 서론도 없이 바로 야멸차게 내달린다. 그저 차이코프스키의 생각이 궁금할 뿐이다.
“ 내 서른 살 생일에 피렌체 두오모에 가자 ”
준세이와 아오이가 만났던 것처럼, 플로렌스에서 머무르는 동안 차이코프스키도 잊을 수 없는 누군가를 만났던 걸까? 라며 자의적으로 영화 같은 상상을 해 본 적이 있다.
음악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먼저 다가온다. 들으면 즉각적으로 느끼게 되는 고유의 본능적 감성말이다. 곡의 배경도 근거를 뒷받침할 지성적인 이해도 심지어 가사도 그다음이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모르는 언어의 곡이어도 감동적인 선율만으로도 충분히 눈을 적실 수 있기 때문이다.
“ 좋아하는 10개의 곡을 꼽아보세요. “ 하면 주저 없이 그 안에 들어갈 이 음악 역시 가슴으로 먼저 받아들였다. 감성적인 감상은 이미 20년 가까이 꾸준하게 충분히 해왔으니 이젠 머리로 이해하며 더 깊이 다가갈 차례가 아닐까? 이번 기회에 여러 자료들을 검토해 보며 알게 된 것들을 하나씩 정리해 본다.
작곡가
Peter Ilyich Tchaikovsky(1840 - 1893)
작곡시기
이 곡은 1890년 그의 나이 50세에 작곡되었다. 이미 음악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었고, 해외에서도 유명해지기 시작한 때였다. 플로렌스에 머물던 당시 1890년 1월에는 3개월 만에 오페라 <스페이드의 여왕>을 작곡했고, 이 곡은 피렌체를 떠난 직후부터 작곡을 시작했다.
헌정
상트페테르부르크 실내악 협회의 회장인 바이올리니스트 콘스탄틴 알브레히트 Konstantin Albrecht에게 헌정되었다. 그에게 보낸 서신(1892년 8월 2일) 중에서 "첫 악장은 엄청난 열정과 추진력으로 연주해야 한다. 이어서 2악장은 경쾌하게, 3악장은 우습게, 4악장은 단호하게"라고 기록되어 있다.
차이코프스키가 말하는 작업기
“ 쓰는 데 무시무시할 정도로 어려운 게 많다. 끊임없이 성부 6개를 실제로 갖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서 관현악용으로 쓴 다음에 현악기 6대용으로 ‘재편곡’하고 있다. “라는 기록에서 그 과정이 녹록지 않았음을 볼 수가 있다.
그리고 작곡이 끝난 후 동생 모데스트에게 전한 편지에서는 “ 6중주!! 이 푸가적인 엔딩까지! 내 스스로 얼마나 기쁜지 끔찍할 정도야. 점점 더 난 이 곡에 매료되고 있다고! “라고 말한다.
초연
1892년 11월 24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레오폴트 아우어(Leopold Auer)가 제1바이올린 주자로 연주했다.
그렇다면 어떤 연주가 와닿았을까?
정평이 나 있는 Borodin Quartet의 연주를 들어보면 능숙하고 유려하게 잘 표현되어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겐 그렇게 흘러간 것일까. 내 귀와 가슴에 남기는 자국은 사라 장 Sarah Jang이 제1바이올린주자로 연주한 음원이다. 곡의 특성상 열정과 온화함이 극렬하게 오가는 감정선이 큰 곡이다. 첫 시작음부터 활의 거친 색채가 살아있어 생생한 감정에 더 충실한 이 연주가 마음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20년 가까이 들었던 이 음원이 내 안에 아로새겨진 시간의 무게 또한 무시 못할 것이다.
그리고 여기, 영상으로 보기에 좋은 연주를 함께 추천한다.
https://youtu.be/vulKECq4r60?si=3YW39HKNELCY3jNg
이 연주는 제1바이올린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실황연주다보니 다소 거친 부분을 제외하고서라도, 표정과 제스처로 온몸으로 지휘하듯 다른 연주자들과 합을 맞춰나간다. 연주자들도 온전히 음악에 몰입하여 하나로 이뤄짐에 온 마음을 쏟는 모습이 곡만큼이나 매우 열정적이고 인상적이다. 그 힘이 생동감 있게 흘러넘친다.
타고난 선율 작곡가, 가곡 작곡에서 궁금증에 대한 답 아닌 힌트를 얻다!
앞서 말했듯이 1악장 시작부터 서론 본론 없이 결론의 주제 테마를 바로 강렬하게 제시하는 이유와 1악장의 배치 자체가 궁금했다. 책에서 힌트가 될 만한 이야기를 발견했다.
' 차이코프스키가 가곡을 쓸 때 가끔은 가사 중 음악적 정점이 올 지점을 떼어낸 다음 거기부터 작곡을 하고 나머지는 나중에 썼다는 증거가 있다.' 아, 그렇다면 이 곡도 작곡의도에 맞춰서 그 지점을 먼저 잡고 앞뒤 흐름을 이어서 작곡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이 맞다면, 차이코프스키는 이 1악장의 주제선율을 전면에 내세워 <플로렌스의 추억>이라는 고유의 얼굴을 만들어 낸 것이고, 그 작곡전략이 먹힌 것이다.
그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
예민하고도 섬세한 성향을 타고난 데다가 유년시절 아버지 직업 때문에 계속 터를 옮겨 다니며 지내야 했다. 때론 가족과 떨어져 지냈던 적잖은 경험들까지 심적으로 더 불안할 수밖에 없었던 시기였다. 그에게는 음악이 유일한 위안이 되었다. 일상의 슬픔과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탈출구가 된 것이다.
그가 불과 여덟 살 때 유모였던 파니에게 쓴 편지를 보면 더 느낄 수 있다. “여기 온 지도 이제 거의 한 달이 되었네요. 우리 모두 유모 생각을 해요. 무척 슬프고요. 하지만 보트킨스트에서 살았던 시절을 떠올리면 안 되겠죠. 그때 생각만 하면 자꾸 눈물이 나거든요”라고 썼다. 그는 유모에게 오로지 피아노 앞에서만 정말로 행복해질 수 있다고 털어놓았다.
10살 때는 법률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가족과 떨어지게 되었는데 어머니와 헤어졌던 그때 그 순간의 상실의 기억을 떠올리면 그 슬픔으로 인한 분노와 절규가 평생 느껴진다고 회상한다.
작곡은 상실로부터 시작되고
18살 때 콜레라로 떠나보낸 어머니의 죽음 이후 작곡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상실이자 큰 슬픔이라고 한다.
타고난 성향과 내면의 갈등
그를 말년까지 괴롭힌 내면의 갈등은 내면과 외부에서 자기 회의로 갈등이 생기는 괴리감의 고통이었다고 책에서 설명하고 있다. 당시 시대상을 감안하더라도 동성애적인 성향에 대한 사회적 시선 때문에 얼마나 괴로웠을까. 자기 인식과 인정받고 싶다는 만성적인 갈망 사이에서 비롯된 이율배반성으로 평생 괴로워했다. 게다가 타고난 천성까지 더해졌으니. 그의 전기를 다 읽고 나니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의 구멍이 있는 사람이구나, 한 없이 그 자리를 그리워하는 갈망이 있는 영혼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차이코프스키라는 한 사람에게 인간적으로 더 가까이 다가간 느낌이다.
정신적으로 의지가 되었던 사람은
어머니, 유년시절 7년여 돌봐준 파니 유모, 힘들었을 때 서신을 주고받으며 물심양면 후원해 준 나데즈다 폰메크부인이었다. 그녀의 서신과 후원이 모두 동시에 단절된 이듬해에 이 곡이 작곡되었다. 이미 큰 성공을 거둔 뒤였고, 재정적으로 어려움은 없었지만, 정신적으로 많이 의지했던 이의 상실은 그에게 또 한 번의 깊은 상처가 되었다. 실제로 이 이후 쓰인 음악들은 더 어두워졌다고 한다.
그러던 중 그가 사망하기 1년전인 1892년 12월엔 유모였던 파니를 40년 만에 만나게 된다. 더할 나위 없이 따뜻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그 며칠의 일화를 보면 참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안쓰러운 마음이 들곤 한다.
플로렌스라는 도시와 음악의 연결고리
' 공식적으로 전해지는 기록은 없다.'라고 전해지는 것이 공식적인 기록임을 비로소 받아들이게 되었다. 전해오는 가설은 다소 있지만 음악과 도시를 연결 짓는 기록은 없는 것이다.
그의 생애를 들여다보면서 차이코프스키를 인간적으로 조금이나마 더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차이코프스키가 말하는 곡배경을 듣고 싶다는 생각을 진심으로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음악으로는 더없이 진실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많은 이들이 그의 음악으로 슬픔과 외로움을 덜어내며 지금까지도 계속 그의 음악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플로렌스의 추억은 아마 '회상'하는 의미가 담긴 표제라고 생각한다. 차이코프스키가 1878년경 폰메크 부인에게 보냈던 서신에서 표제음악에 대해 언급했던 부분과, 이 음악과 어울리는 괴테의 시 <회상>을 공유하며 오늘의 글을 마무리한다.
참고문헌
차이콥스키, 그 삶과 음악 - 제레미 시프먼 Jeremy Siepmann
EMI 곡 해설지 - 마이클 제임슨 Michael Jameson
괴테시집
『 슬프고 아름다운 Bittersweet 』16편 - 차이코프스키의 플로렌스의 추억 Souvenir de Florence이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음악에 대해 나눕니다. 그저 알고 싶고, 깊게 느껴지는 것을 ‘왜?’라고 스스로에게 물으며 저만의 시선으로 편하게 담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