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0주기를 추모하며
https://youtu.be/WAoLJ8GbA4Y?si=uBUm__yr4PoFk0MO
Vienna Philharmonic, conducted by Gustavo Dudamel (Summer Night Concert 2019)
빛을 잃은 검은 산은 이슥도록 그곳을 지키며 무슨 말을 하고 있었던가
수많은 작자미상의 끊임없는 외침이 설움이 아우성대는 밤
밤이 닳고 닳도록 전해지지 못한 이야기들이 진을 치며 떠도는 밤
지나쳐버린 이야기가, 짓이겨진 말이, 굵어진 마음들이 음표가 되어 흐르는 밤
내던져진 메아리들은
이윽고 자신의 심장을 거두었는가, 떨구었는가
- 세월호 10주기 날에 <현을 위한 아다지오>를 들으며
며칠 전 세월호 10주기 날에 이 곡을 오랜만에 꺼내서 들었다. 이 곡은 어두워도, 깊이 가라앉아 있어도, 비록 느리게 꾸역꾸역 걸어간다 하더라도, 비로소 진경으로 가닿게 하는 굳건한 힘이 있다.
꽃이 피어나고 신록이 움트는 이 계절에 다소 무거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기억해야 할 날 앞에서 이 곡이 생각났던 것은 어쩌면 나의, 어른들의 무책임한 행동이 아이들의 존엄하고 찬란한 삶 앞에서 하염없이 부끄러웠음이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는 무력감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비탄에 잠겨 있을지라도 끊어지지 않고 견고하게 이어지는 현악 오케스트라의 진중한 선율만큼은 현실에 굴복하지 않는다. 장엄하고 강인하게 그곳으로 끝끝내 이끌고 가 근원의 대상을 마주하게 해 준다. 그 선율에 의탁하는 마음이었다. 아이들의 영혼들이 이 선율을 타고서라도 엄마아빠 품에 꼭 안겨 듬뿍 사랑받고 사랑할 수 있었으면..
세월호 사고가 벌어진 다음날은 큰아이의 생일이다. 10년 전 그날 이후 늘 아이의 생일을 준비하며 마음 한편엔 내 힘으론 어떻게 할 수 없는 돌덩이를 지고 있다. 투표권을 넘어서 내가 조금이라도 더 행동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시민정치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입법기관에 조금이라도 내 의견을 행사하고 싶은 생각에 한 때 특정 정당의 전국대의원을 몇 차례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결국엔 내 의지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음을 뼈저리게 느껴버리고 말았다. 진심 다해 행동했었기에 반대로 활동에 관심을 거둘 수도 있었지만 초심으로부터 출발했던 그 마음인 아이들과 부모, 희생자들을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계속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작곡가 : 사무엘 바버 Samuel Barber (1910~1981)
제목 : 현을 위한 아다지오 Adagio for strings, Op.11
원곡 : 현악 4중주 b단조 제1번 Op.11의 2악장 (1936)
편곡으로 탄생된 <현을 위한 아다지오> : 사무엘 바버가 27세 때(1938) 아르투로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1867-1957)의 제안으로 7성부의 현악 오케스트라로 편곡하면서 <현을 위한 아다지오>로 탄생됨
초연 : 1938. 11월 토스카니니 지휘로 NBC 교향악단의 연주로 라디오로 생중계
신성한 힘
위에서 말한 것처럼, 장엄하고 강인하게 끝끝내 그곳으로 이끌고 가 근원의 대상을 마주하게 하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첫째,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선율성
둘째, 현악기의 규모감이 주는 따뜻하면서도 강건한 힘에 있다고 생각한다.
가만히 듣고 있으면 마치 기도문을 외우는 성가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 이유를 악보에서 발견했다. 교회선법(그레고리안 성가)에서 볼 수 있는 선율의 흐름이 악보에서 읽혔기 때문이다.
악보를 찾아보지 않았다면 이 곡이 4/2박자인지도 몰랐을 것이다. 2분음표가 4개로 이어져야 하니 느린 박자의 한 마디 안에서도 여러 음가로 이어진다. 원곡은 4성부였지만, 현악 오케스트라 편곡으로 바이올린 2와 첼로를 각각 두 파트로 나뉘어 기본 7성부로 되어있다. 곡의 클라이막스 부분에선 더블베이스를 제외한 모든 파트가 두 개의 성부로 나뉘며 최대 9성부로 표현된다.
현악 오케스트라의 규모감이 아니었더라면
첼로구성만으로 편곡된 연주, 바이올린 솔로와 오케스트라 편곡, 첼로솔로와 현악 앙상블 편곡, 합창 편곡 등 다양한 곡들을 들어보았다. 하지만 어딘가 이 곡이 아닌 것 같았다. 이것은 현악기 ‘군’이 주는 규모감에서 오는 ‘거부할 수 없는 힘’ 때문이 아닐까?
현악기 솔로는 비브라토의 색채가 살아나므로 더 날카로우며 구슬퍼진다. 하지만 현악기가 대규모로 뭉쳐지면 현악기 솔로의 떨리는 비브라토는 합쳐지고 합쳐진다. 그 구슬픈 색채의 자리는 사라지고, 따뜻하고 강건하며 크고 굵어진 단순한 선의 힘이 생겨난다.
근원을 빛으로 마주한 순간
한 음 한 음 느릿하게 이어지며 끝내는 비탄을 걸어가 근원을 마주하는 구슬픈 환희의 순간은 빛의 구원이 된다. 죽음도 생명의 탄생도 담겨 있다. 그 구원의 순간은 포르티시모 ff로 강하게 울린다. 그리고 이어지는 페르마타의 침묵, 다시 반복되는 주선율은 나직하고 아련하게 소멸한다.
모든 것이 끝나고, 구원받는 느낌을 음악에서 발견해서일까, 이 그림이 떠올랐다.
” 손끝에 머문 애정이 따뜻하고 섬세하다. 그리고 너무나 애틋한 표정이다. 여자의 부드러운 무릎에 무거운 머리를 기대면 안심할 수 있고, 얼굴을 묻으면 남자는 모든 시름을 잊을 수 있다. “
- 김수정, <우리는 사랑의 얼굴을 가졌고>(232p)
죽음을 추모하며
이 글을 쓰며 알게 된 것이지만, 사무엘 바버 자신의 장례식은 물론, 유명인사의 추모식에서 이 음악이 사용되었다. 이 곡에서 죽음과 생명을 떠올렸던 심상과 연결된다.
1945년 루스벨트 대통령 국장에서, 1955년 아인슈타인의 장례식에서, 1963년 J.F 케네디 장례식에서, 1981년 이 곡의 작곡가인 사무엘 바버의 장례식에서, 1982년 미국 여배우 그레이스 켈리와 모나코 그레이스 공주의 장례식장에서 울려 퍼졌다.
2001년 911 테러 직후 열렸던 BBC Proms 마지막 연주회에서는 레너드 슬레드건의 지휘로 연주하며 테러희생자들을 추모했다.
영화와 TV프로그램에서도
1987년 베트남 전쟁을 다룬 영화 플래툰에서 쓰이면서 대중적으로 제일 크게 알려진 계기가 되었다. 극 중 엘리어스가 온몸에 총을 맞으며 장렬하게 전사하는 슬로모션 장면에서 쓰였다고 한다. 그 외에도 엘리펀트맨(1980), 로렌조 오일 (1992), 아멜리에(2001) 등 여러 작품에서도 사용되었으며, TV에서는 심슨 가족, 사우스 파크, 사인펠드의 에피소드에서도 쓰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외 음원으로 만나는 현을 위한 아다지오
음원으로 감상하기 좋은 곡은 음향적으로 만족하는 근래의 앨범 중에서 데이비드 페리지휘의 런던필의 연주와 사이먼 래틀의 지휘한 베를린 필의 연주 두 곡을 꼽았다.
https://youtu.be/ezAaIOGkfAY?si=g8exq29mP55BJHUT
https://youtu.be/U8Yu2xv2odI?si=uyuooOfz2Tazw5Pc
토스카니니와 1935년에 로마에서 만남을 가진 이후, 3년뒤 그의 제안으로 사무엘 바버 자신의 곡의 특정 악장을 편곡했다. 그 제안이 없었다면, 또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오늘 날 이렇게 널리 사랑받는 곡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교회선법, 대위법, 푸가적인 형식미를 업은 선율, 깊은 서정성 있는 화성, 거기에 현악기 오케스트라의 규모감까지 하나로 이어져서 이 곡의 단단한 정체성이 생겼다. 이 중에 하나라도 빠지거나 다른 악기가 더해지면 감히 이 곡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이 자체가 현을 위한 오케스트라이며, 그 적확한 대명사가 된 <현을 위한 아다지오>인 것이다.
파울 첼란의 <Once, 언젠가 >라는 시가 이 곡과 잘 어우러진다. 허수경 시인의 번역으로 낭독하며 사무엘 바버의 < 현을 위한 아다지오> 글을 마친다.
Once,
언젠가
I heard him,
그때 나는 그를 들었다,
he was washing the world,
그때 그는 세계를 씻었다,
unseen, nightlong,
보이지 않게, 밤새도록,
real.
실제로.
One and infinite,
하나 그리고 무한,
annihilated,
파괴했다,
they I’ed.
나를 이루었다.
Light was. Salvation.
빛이 있었다. 구원이었다.
- Paul Celan , < Once >
참고문헌 : Rhode Island Philharmonic orchestra&music School, Britannica, NY Phil Digital Archives, 파울첼란 전집 2, 김수정- <우리는 사랑의 얼굴을 가졌고>
『 슬프고 아름다운 Bittersweet 』17편 - '사무엘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 - 세월호 10주기를 추모하며' 였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음악에 대해 나눕니다. 그저 알고 싶고, 깊게 느껴지는 것을 ‘왜?’라고 스스로에게 물으며 저만의 시선으로 편하게 담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