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젠가부터 호수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잔잔하고 고요한 호수를 보면 마음이 편안해졌고 그래서 그런 호수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었다. 호수는 격랑에 어지러워질 일도 없고 그 끝이 영원히 이어질 일도 없어 편안했다. 은은하게 빛나는 수면과 멀어질수록 희미해지는 호수의 경계는 평화롭지만 동시에 신비로운 느낌을 자아내 상상력을 자극했다. 그래서 나는 호수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 깊이에 대해서는 자세히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저 밑바닥이 쉬이 내려다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은 호수일 거라 막연히 생각했었다. 그러나 또 빛이 차단되는 어두컴컴한 해저와 같이 깊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호수가 되었다고 상상해도, 나의 마음이 호수가 되었어도, 그것이 두렵지 않았다. 호수는 아름답지만 무섭지 않았다.
어쩌다 바다를 접한 도시에 살게 되었다. 바다와 이렇게 가까이 사는 것도 처음이거니와 바다 속에 몸을 담근 것도 이곳에서가 처음이었다. 나에게 낯선 바다는 눈부시게 아름다웠고 요란스레 무서웠다. 끝이 안 보이게 펼쳐진 수평선과 파도에 요동치는 수면은 언제나 성이 나있는 바다를 대변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쉽사리 다가가거나 좋아하기가 어려웠지만, 광활한 바다는 잔잔한 호수만큼 아름답고 맑디 맑은 바다는 은은한 호수보다 아름다웠다. 그 위에 누워 파도가 이끄는 대로 몸을 맡기면 내 몸이 몹시 가벼워 마치 날고 있는 것 같았고, 수면을 경계로 이승과 저승 사이에 있는 기분이 들었고, 또 온전히 바다의 은덕으로 그 순간에 존재할 수 있는 것 같아 한없이 겸허해졌다. 바다는 나를 어떤 면에서든 하잘 것 없는 존재로 만들어 함부로 우쭐거리지 못하게 했다. 바다에 들어가는 것은 언제나 두렵다.
그리고 어느 날엔가 모든 것들이 너무 버거워졌을 때, 한없이 물속으로 가라앉는 돌멩이가 된 기분이었을 때, 나는 내가 호수가 아니라 바닷속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갈망하던 호수라면, 잔잔하고 유한한 그 호수라면 가라앉더라도 금방 떠오를 테니 두렵지 않을 텐데, 나는 무한히 펼쳐져 끝없이 격동하는 바다에서 가라앉고 있었다. 그래서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나는 언제나 호수가 되고 싶다고 했는데 어쩌다 바다에 빠지게 된걸까? 그리고 연이어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바다 옆에 살더니 호수가 아니라 바다를 닮고 싶어졌었나. 바다가 되었다고 상상하니, 나의 마음이 바다가 되었더니, 두려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