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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민아 Feb 08. 2023

오! 나의 여신님!

어우 얘 내가 이렇게 좋아할 줄 몰랐다. 증말.


종종 집안일을 할 때 귀로만 듣는 유튜브 영상이 있다. 비디오 화면을 따로 보지 않고 에어팟으로 흘러나오는 인물들의 대화만으로도 머릿속에 상황이 온화하게 그려진다.



작년 방영된 tvN의 <뜻밖의 여정>

작가가 프로그램명을 정말 잘 지은 것 같다. 시청자 모두가 오스카 시상으로 미국에 체류하게 되는 윤여정 선생님의 여정에 동참하게 된다.


윤여정. 그녀는 나의 연예인이자, 롤모델이자, 여신님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대부분 사람들에게 하나 둘 쯤은 있는 인생의 롤모델을 찾기 힘들었다. 청소년기에는 '내가 누군가를 롤모델로 정할 바에 내가 다른 사람의 롤모델이 되자'는 오기로 롤모델을 정하지 않았다. 좀 머리가 크고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경험하니 그 오기를 실현시키기 꽤 어렵다는 것을 알았지만, 여전히 내 맘을 사로잡을 롤모델을 찾지 못했다. 지 잘난 맛에 사느라 철이 덜 들었었나 보다.


어느덧(이 나이에 이런 부사를 쓰는 게 어색하지만) 30대 중반이 되어 조금은 자기 객관화가 되다 보니 나는 어떤 것을 갖추고 있고, 무엇이 결핍되어 있고, 어떤 것에 끌리는지 정도가 살짝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롤모델은 '내 기질과 유사하면서도, 내가 갖지 못해 안달인 것을 이미 갖춘 분이며, 나와 겹치는 공통분모를 매력 포인트로 가지고 계신 분'으로 좁혀졌다.


결국은 찾았다. 나의 롤모델. 오, 나의 여신님. 윤여정.

일에 대한 깐깐함과 고집, 책임 있게 맡은 바를 준비하고 연습하는 자세, 타인에게 베푸는 따뜻한 마음, 삶의 내공으로 인생을 바라보는 태도, 그녀를 이 자리까지 오게 한 고급스런 예민함, 외모와 톤 앤 매너까지. 내가 반할 요소들을 다분히 가지고 계신 분이다.


일흔 중반의 나이에도 일에 관해선 사소한 것이라도 소홀함이 없다. 애플 TV <파친코> 관련 인터뷰를 준비하기 위해 손으로 써 내려가면서 예상 답변을 연습하시고, 행여나 실수가 없을까 그 연륜에서도 종종 대는 모습이 사랑스럽게 짠하다. 매일 적당한 근력 운동을 하시고, 마주하는 사람과 일에서 모르는 것들은 배우고 들으려는 자세가 하루에 녹아있다. 당신은 본인이 까다로운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다 하지만, 내 사람이라 여기고 진심을 베푸는 지인들에게 늘 너그럽다. 그녀는 원체 말투가 직설적이고 솔직하지만 선을 지키며 정도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니 이게 흔히 말하는 걸크러시고, 내가 궁극적으로 인생에서 추구하는 덕목인 초연함이다. 어찌 내가 반하지 않을 수 있으랴.



이렇게 살고 싶고, 이렇게 되고 싶다.

지인들에게 윤여정 선생님에 빠져있다 말하면 나에게도 그녀와 겹치는 특색이 보인 다고 한다. 누군가를 워너비로 동경할 때 발톱의 때만큼이라도 닮고 싶다 하는데, 나에게 발톱의 때만큼 윤여정 선생님과 닮은 구석이 있다니 희망적이다.


<뜻밖의 여정> 이 TV 프로그램 말고도 윤여정 선생님이 출연한 다른 방송의 인터뷰 영상들까지 골고루 찾아본다. 종합적으로 여러 개를 연달아 봐도 윤여정 선생님은 삶을 대하는 맥이 하나로 흐르며 일구이언하지 않는다. 맞는 말만 하고 틀린 행동은 하지 않는 그녀의 까탈스러움이 부럽다.  


윤여정 선생님, 밀라논나 장영숙 선생님, 배우 전도연, 안무가 모니카 등등.

나이 드는 것은 여전히 불편하지만, 롤모델로 삼은 몇몇 여자들의 먼저 지나온 삶을 보면 그리 낯설지 않다.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지만 일단 받아들일 만하고, 다룰 만하고, 해볼 만하다. 호오오옥-시 모를지, 나의 삶 역시 누군가에겐 이런 깨달음을 줄 수 있을지도.

이런 생각하는 거 보니, 나도 나이 들었나 보다.





※사진 출처 : tvN 뜻밖의 채널 유튜브 클립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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