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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민아 Aug 25. 2021

누가 누굴 가르쳐

너도나도 한 뼘씩 자라는훈육


육아 정보 채널의 단골 메뉴는 훈육이다. 훈육 관련 지침서들은 육아 도서 평대에서 단연 베스트셀러이고, 많은 부모들이 유튜브 채널에서 가장 많이 시청하는 것도 훈육이 아닐까 싶다. 그만큼 부모에겐 언제나 어렵고, 늘 신중해야 하며, 매번 공부해야 하는 분야이다.


훈육. '품성이나 도덕 따위를 가르쳐 기름' 

훈육의 국어사전적 정의이다. 훈육은 단어 정의에서부터 부모 중심의 관점이 느껴진다. 물론 부모가 아이의 제 1의 보호자이자 교육자로서 아이를 가르치고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은 맞지만, 나에겐 이 단어 풀이가 낯설고 무겁게 느껴졌다.


사실 이도는 훈육이 필요 없는 아이였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해서 알려주면 그대로 머릿속에 입력해서 이행했다. 여느 아이들처럼 떼를 쓰고 바닥에 주저앉을 때도 있었지만, 절대적으로 그 시간이 매우 짧고 차분히 설명해주면 머쓱하게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고 엄마에게 미안해하기도 했다. 설령 행동 규범이나 안전 수칙을 어겼다 하더라도 반복해서 알려주면 그대로 또 따라 했다. 심지어 어떨 때는 잠깐 작은 실수를 저지르곤 본인 입으로 '아 맞다. 엄마가 이거 하지 말라고 했지!'라며 귀여운 혼잣말과 동시에 행동을 정정했다. 이런 이도를 보면서 난 생각했다. '캬- 어떻게 나한테서 이런 애가 나왔지?'


'쟤 같은 아이라면 열 명이라도 낳겠다'에서 '쟤'를 담당하고 있는 이 도 어린이.



나는 이런 모범생 아이의 엄마로서 주변 부모들이 겪는 훈육의 일반적인 애로사항과는 다른 어려움을 겪었다. 훈육을 하는 사람은 나지만, 정작 훈육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나이기도 했다. 아이에게 도덕적 규율을 가르치고 실생활에 적용해서 모범을 보여야 하는데 나는 그럴 자세가 갖춰져 있지 않았다.


아이가 한참 말을 배우고 세상을 터득하기 시작했을 때 문득 나에게 '약속'이 무엇이냐고 물어봤다. 엄마가 자꾸 노래 부르면서 새끼손가락 걸고 이상한 의식을 하니 그게 신기하기도 했고 궁금했었나 보다. 아이가 질문을 많이 하는 그 시기를 거쳐본 부모라면 모두 알 수 있듯이, 우리는 인간 사전이 되어야 한다. 재빨리 머리를 굴려 아이에게 그럴듯하게 대답해야 한다.(특히 공공장소에서 질문을 하면 더 말본새를 가다듬고 말해야 한다)

"응, 약속은 이도랑 엄마랑 서로 하기로 한 것을 꼭 지키는 걸 말해. 지키려고 노력하고, 지키지 못했을 때도 다시 지키려고 하는 노력을 반복하는 것이 약속이야. 그런데- 가급적 꼭 지키는 게 좋겠지?"

그럴싸하게 이야기해주려고 노력했고, 최대한 풀어서 '지키다'라는 단어를 강조해서 설명해줬다. 사실 얘기해놓고 스스로 '이게 뭐 개떡 같은 소리지?' 할 때도 많지만, 똘똘한 이도는 찰떡같이 알아듣는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얼마 전, 이도가 잠들기 직전에 헬로카봇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수면 전 미디어 시청이 좋지 않다는 정보를 들은 적이 있어서, 나는 아들에게 걸맞은 모범생 엄마 코스프레를 하고 아이에게 말했다. 

"이도야 두 가지 이유에서 못 볼 거 같아. 잘 들어봐. 하나는 오늘 이도가 TV보기로 한 삼십 분이라는 시간을 이미 다 채웠기 때문에 안되고, 두 번째는 잠들기 전 TV를 보면 쑥쑥이 요정(성장호르몬)이 못 나온대. 이도가 자기 바로 전에 헬로카봇봐서 꿈에서도 헬로카봇만 나오고 쑥쑥이 요정은 안 나와."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지만 이내 이도는 여느 때와 같이 수긍하고 잠이 들었다. 나 역시 착하게 잠든 이도를 보면서 우리 사이 또 늘어난 규칙과 약속을 염두하며 지키야겠다 생각했다.


그날 밤 이후 아마 일주일쯤 흘렀을 것이다. 나는 그 전날 오랜만에 친한 친구네 집에서 과음을 하고, 다음날 숙취로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만신창이가 된 위와 뇌로 하루를 버텼고, 그 날 만큼은 조기 육퇴가 간절했다. 아이가 잠들기 전 한 시간이 정말 고비였다. 나는 아이 장난감 정리며 집안일이며 모두 팽개치고, 이도에게 TV를 틀어주고 침대에 누웠다. 한 오분쯤 흘렀을까, 그때 이도가 나에게 했던 한 마디 때문에 나는 덜컥 겁이 났다.

"엄마, 난 지금 TV 안 보고 로봇 놀이하고 싶은데 왜 틀었어? 긴 바늘이 6 지났는데(30분 이상 시청했다는 의미) 왜 TV 안 꺼?"

내가 어디서 말발로 뒤쳐진 적은 없었는데, 이도의 저 한 마디는 나를 꿀 먹은 벙어리로 만들었다. 정말 할 말이 없었다. 생각해보니 그간 나는 이도 앞에서 훈육이라는 가면을 쓰고 일관성 없는 감정들과 일희일비하는 태도를 많이 드러냈었다. 훈육이 아닌 분노를 얼마나 많이 표출했는가. 하루에도 몇 번씩 마그마를 분출하는 활화산 옆에서 이 아이는 얼마나 뜨거웠을까. 혹시나 어딘가 데이진 않았을까 겁이 나기도 했다. 아이 앞에서는 이건 맞고 그건 틀렸다고 훈수 두면서, 정작 나는 삶의 문제를 얼마나 맞혔으며 또 틀렸던 부분을 어마나 겸허히 수용했는지도 의문이었다.  


누가 누굴 가르치는 건지


이렇게 엉망진창인 내가 아이를 가르칠 자격이 있을까. 오히려 훈육은 내가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어떨 때는 이도가 나의 선생님이 되어 기초부터 차근차근 삶의 본질을 다져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는 합리화로 다시금 자세를 정비했다. 한 아이의 엄마이기 이전에 좀 더 성숙한 어른으로서 성장하는데 나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내가 모르는 구멍은 없는지 스스로를 돌이켜보기 시작했다. 자식이라는 거울로부터 비치는 나의 모습만큼 확실한 자극은 없었다.


많은 부모들이 훈육이라는 이름 아래 아이들에게 일러주고 시범을 보이며 옳고 그름을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다. 부모가 아이에게 가장 가까이에 있는 좋은 본보기가 되고자 노력했는지 자문해봐야 한다. 최소한 자문 정도 해본 부모라면 훈육을 하면서 아이와 함께 한 뼘씩 성장하는 희열을 맛볼 것이다. 


내가 요즘 그 희열을 조금씩 느끼고 있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과정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세상 그 어떤 자기 계발서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깨달음을 얻는다. 크고 작은 깨달음들은 가을 햇볕처럼 따사롭게 부모라는 열매를 더 영글게 만들고 숙성시킬 것이다. 참, 가을 햇볕은 때론 강렬하고 따갑다. 아이와 커가는 과정에서 얻는 깨달음이 마냥 따뜻할 수만은 없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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