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브런치 신고식
브런치는 요물이다.
며칠 전 이 요물에게 홀려, 매일 아점 식사와 함께 브런치를 곁들고 있다. 이 요사스러움에 홀려든 과정을 기록한다.
브런치 심사
브런치 심사를 한 번에 통과했다. 사실 심사 기간 동안 하루에도 몇 번씩 메일함을 열람했다. 메일 알람을 설정해놨음에도 불구하고, 혹시나 놓쳤을까 걱정돼서 괜스레 들어가 보았다. 정말 사람을 내내 애태우더니 브런치 팀은 명시한 심사 기간을 꽉꽉 채워 합격 메일을 보내주었다. 막상 합격되고 나니 "내-가?"라는 생각이 들며 어안이 벙벙했다. 영문은 잘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든 기분은 좋다. 누군가가 나보고 작가라고 불러주는 기분이 낯설다. 나처럼 심사 시기 동안 브런치에게 애타 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다. 이미 우리는 브런치와의 밀당에서 한 수 접고 들어가야 한다는 것. 오묘하게 요물처럼 매력을 뿜어내는 브런치에 나쁘지 않은 기분으로 끌려가게 된다.
브런치 탐닉
20대, 이전 직장을 다닐 때 우연히 알게 되었던 브런치. 그때의 글쓰기는 페이스북에 게시하고 액세서리 같은 감정으로 치장하는 것이 '유행'하했던 때라 브런치는 딱히 눈여겨보진 않았다. 그런데 6년이 지난 지금, 나는 몇 달 전 새롭게 시작한 일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브런치를 뒤적거리고 있다. 엄마가 어렸을 때 젓가락으로 반찬 뒤적거리지 말라 했는데, 내가 지금 딱 젓가락을 들고 브런치를 들쑤시고 있다. 뒤적거리던 도중 괜찮은 작가님의 글을 발견하면 에디터로서 글을 가다듬고 정중하게 문을 두드린다.
이렇게 나는 브런치를 탐닉하기 시작했다. 업무 기획과 무관하더라도 이 작가 저 작가의 글방(브런치북)에 들어가 흘깃 훔쳐보며, 그들의 필력과 영감에 탄복한다. 브런치는 포털 사이트 블로그 글쓰기와 다르게 정돈되고 깔끔한 인상을 준다.(여기에는 표지를 구성하는 이미지 배치와 글씨체가 한몫을 하는 듯하다.) 브런치는 세련되고 우아한 느낌이 나며, 마치 이곳은 글쓰기의 귀족들만 모인 것 같다. 물론 글쓰기에 계급은 없지만, 지금 나는 상류층 사교계를 흠모하는 평범한 여염집 아낙네 같다. 그래서인지 글을 쓰기 전 글 매무새를 두세 번 살펴본다. 너무 초라하고 볼품없는 것은 아닌지 괜스레 초고를 이리 보고 또 저리 본다.
브런치 중독
갑자기 라이킷 알람이 울리면 흠칫한다. 소위 말하는 인스타 감성의 이미지나 해시태그 그리고 익살스러운 이모티콘도 없이 그저 무미건조한 고딕체에 좋아요를 눌러주는 사람들. 처음에는 남들에게 오로지 글로만 나를 드러낸 것이 낯설고 어색했다.
그런데 은근히 기분이 좋아진다. 일상이 너무 바빠서 잠시 글을 못 올리고 있는 동안은 약간 불안하기도 했다. 왠지 일상 일기라도 끄적여서 남겨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들었다. 그리고 욕심도 생긴다. 심지어 내가 작품을 기획하고 구성하며 완성할 수도 있는 브런치 북이라는 기회도 있댄다. 언감생심이지만, 진짜 작가가 될 수도 있다는 발칙한 상상도 잠깐 해본다. 브런치는 이렇게 작가들을 안달나게 하고 은근히 중독되게 만든다. 브런치에 이미 중독되어 다작을 남기신 다른 작가들을 보면 존경스럽다. 일상에서 글쓰기를 양치하듯이 하는 것 같다. 본인 마음 건강의 위생을 위해 무의식적으로 글 쓰시는 분들 같다.
브런치 연대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사람들과 사랑에 빠진다. 나와 합이 맞는 작가들의 글을 읽을 때마다 맥주 첫 모금 마실 때 나오는 감탄사 ‘캬-‘를 내뱉는다. 공복에 알코올이 들어갈 때 명치에서 뽀그르르 기포 오르는 느낌도 든다. 어쩜 이렇게 글을 청량하게 쓸까.
나는 카카오 뷰 크리에이터로 매일 다양한 브런치 작가님들의 글을 큐레이션 한다. 또한 카카오 음 진행자로 '호락호락한 육아' 대화방을 운영하면서 메인 스피커로 브런치 작가님들을 모신다. 요즘 나는 업무상의 명목으로 내가 덕질했던 브런치 작가님들과 소통을 하는 영광 속에 살고 있다. 몇 주가 지나니 이분들은 대학시절 과방에서 술을 같이 먹었던 선후배처럼 정감이 가고 친근해졌다.
그래, 글로 맺어진 우리. 이것은 연대(連帶)다. 연대 구성원들은 글을 통해 서로 삶에 대한 태도와 진솔한 자세를 느낀다. 이들은 글쓰기라는 분출구로 인생의 희로애락을 용암처럼 뜨겁게 표출한다. 또한 글쓰기 루틴으로 정신에 도움 되는 영양제를 복용한다. 글 연대가 주는 일상의 자극들은 다소 따갑지만 따뜻하다. 핫팩의 단추처럼 똑딱-하고 일상의 한 순간을 건드려 마음을 순식간에 댑힐 것이다.
그렇다. 브런치는 이런 글쓰기 연대들이 공존하는 곳이다. 어쩌다 나는 브런치라는 우주에 떠다니는 행성이 되었다. 내가 속한 글쓰기 연대 행성들이 은하수가 되어 우리들의 삶을 반짝반짝 빛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