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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호준 Feb 14. 2020

구직일기 1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인생

 30대 초중반 신입도 경력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서 구직을 준비하며 느낀 점들을 간간히 시간이 날 때마다 써보고자 한다.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것은 아니고, 나만 이러는 건 아니구나 하는 위로가 되길 바라며. 그리고 미래에 이 글을 다시 봤을 때, 이럴 때가 있었지 추억하기 위해서.  


 

 대학원의 마지막 학기를 마친지 거의 두 달이 되간다. 마지막 학기에는 취직을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마음의 회피기제가 작동한 것인지,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기업들에게 Resume Book을 보내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는데, 정작 들어온 면접 기회들에서 나는 꽤 까다롭게 굴었다. 대학원에 오면서 다음 직장은 연봉이 좀 적더라도 워라벨이 좋으며 무엇보다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하고자 하는 내 목표를 조금이나마 달성할 수 있는 곳이길 바랐고, 그런 곳이 아니다 싶으면 거절했다. 게다가 마지막 학기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졌던 논문 작업은 생각보다 많은 작업이 남아있었고, 교수님과 논문 진행 방향에 있어서도 이견이 있었다. 이런 저런 이유들로, 나는 면접 자리에서도 바로 일할 수 있냐는 질문에, 조금 시간을 달라고 말했었다. 


 지금 후회하는가 물어본다면, 아주 약간은 후회 중이지만 다시 돌아가도 나는 같은 선택을 했으리라 생각한다. 대학원에 온 이유가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어서인데, 다시 내가 조급해져 지나치게 현실과 타협하는 선택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조금씩 불안감이 몰려오는 것 또한 사실이다. 


 대학원 전공인 녹색경영정책과 정반대로, 이전 회사는 석유화학사를 다녔기 때문에 헤드헌터들의 연락은 대부분 화석에너지 산업 그리고 경영관리 업무이다. 경력 전환을 목표로 하고 대학원을 들어왔지만, 내가 갖고 있는 경력이 나를 정의하는 힘은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커보인다. 대학원에서 내가 아무리 그동안의 탄소 배출을 속죄(?) 하고자 신재생에너지와 스마트그리드에 대해 공부하고, 기후 변화 대응과 관련된 파리 기후 협약과 CDM 사업에 대해 알게 되어도, 내가 갖고 있는 석유화학사에서의 경영관리 경력은 마치 씻을 수 없는 기름때가 되어 남아있는 것 같다. 물론 전 직장에서 재무제표 추정 등 좋은 업무 경험을 쌓을 수 있었고, 내가 했던 일에 나름의 자부심도 느끼지만, 요즘에는 이것이 나를 옭아매는 장애물로까지 느껴진다. 그렇다고 숨길 수도 없는. 


 대학원에 들어왔을 때, 나는 구체적인 커리어 목표를 신재생에너지 발전소에 대한 투자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으로 정했었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관련 직종에 지원하고 있다. 소위 말하는 경력전환을 위해 들어온 것인데, 이와 관련해서 대해 들은 말이 있다. 생각보다 쉽지 않고, 결국 예전 필드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는 것. 예전에는 나는 다르다, 나는 바꿀 수 있다, 생각했고 지금도 아직은 도전 중이지만, 이제는 대학원 사람들이 왜 그렇게 이야기 했는지 공감이 되는 상황읻 되었다. 그리고 한가지 더, 경력 전환을 목표로 하면서 경력을 인정받기는 더욱 어렵다. 내가 갖고 있는 경력이 다 날아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이를 감수하고 있는 사람에게도 상당히  씁슬한 경험이다. 무엇보다 이미 대리, 과장 직함을 달고 5~7년 경력을 갖고 있는 내 주위 사람들을 보면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생각이 들게 된다. 정말이지 비교하는 것이 불행의 시작인데, 인간의 본성에 주위와의 비교가 들어있는 것 같이 주위에 비교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 아이러니이다.


 아직은 좌절하지 않고, 계속해서 내가 원하는 기업이 있는지 찾고 지원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지만, 내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대학원 2년간의 시간은 정말 포기하고 싶지 않은 내 인생의 소중한 기간이었다. 그러나 세상에 정말이지 공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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