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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호준 Jan 08. 2020

오늘의 생각, 첫 번째

 생각에 대한 생각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저녁이다. 그런데 무슨 조화일까,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왜 이런 생각이 든 걸까? 글쓰기에까지 생각이 도달한 경로를 되짚어 가보았다. 카카오톡을 몇 초마다 확인하고, 오지 않는 메일함을 열어보는 나 자신에 대한 반성이 그 원인이었다. 그러고 보면 길게 무엇에 대해 생각해 본 지 정말 오래되었다. 카카오톡 메시지는 보자마자 바로 답장이 떠오르고, 특별한 생각 없이 그대로 보낸다.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며, 새로 들어온 정보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나 자신의 생각이 아닌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이해한다는 점에서 처음에 말한 '길게 생각하기'와는 좀 다른 면이 있다. 지금 여섯 줄을 쓰고 생각이 막혀 잠시 고민했는데, 이 또한 근래에 '장고'를 하지 않았던 나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어릴 적의 난, 한 가지에 대해 매우 깊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나쁘게 말하면 공상을 많이 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다 보니 멍하니 허공을 쳐다보는 경우가 많았다. 요새는 멍 때리기 대회도 있다고 하는데, 멍 때리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많이 개선된 것 같아 반갑다. 그러나 과거의 사회적 인식에서 멍 때리기는 바람직한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고, 나도 그에 발맞추어 멍 때리기를 줄여 나갔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멍 때 리던 나를 지켰어야 했다. 20분 걸리는 등, 하굣길 동안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집과 학교를 순간이동할 수 있던 그런 능력을 나는 왜 버렸을까. 


 다행히도, 회사를 때려치우고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지금 나에겐 멍 때릴 수 있는 시간이 좀 더 주어졌다. 그래서 지금 다시 멍을 때리는 연습을 하려 한다. 아직 나의 멍 때리기 능력이 완전히 퇴화되지 않았기를 바라면서, 멍을 때려본다. 이런 글을 쓰는 것도 멍 때리기 능력을 향상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보는데, 대단한 글의 구조를 짜서 글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쓰면서 가끔가끔 생각은 하지만, 전반적으로 지금 쓰고 있는 글은 나의 의식의 흐름대로 나오고 있고, 이는 멍 때리기의 사고의 흐름과 매우 비슷하다. 방금 이 문장을 쓰고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뭔가 새로운 사실을 깨닫은 느낌이랄까. 


 사실 이렇게 멍 때린다는 것은 사치일지도 모른다. 나만 하더라도, 당장 다음 주 월요일까지 해야 할 과제가 여러 개 있고, 좀 더 장기적으로는 취직과 논문 작성의 큰 산이 남아있다. 이런 식으로 시간을 써도 되는 걸까, 의문을 갖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 글을 쓰면서 잠깐 이 걱정들을 잊을 수 있었다. 생각을 일종의 집이라고 본다면, 현실에서 잠깐 벗어나 좀 더 나 자신에 대해 집중할 수 있는 집을 지은 기분이다. 뒤돌아보면, 어릴 때도 멍 때리기는 도피처이자 안식처였다. 힘들고 무서운 세상, 잠깐 내 마음속의 도피처를 찾아 한숨 돌리는 것이 뭐가 나쁜가. 

 

 결국 멍을 때리자가 이 글의 결론이다. 앞으로 이 공간에 종종 멍을 때림과 동시에 글을 써보려고 한다. 멍을 때린 지가 오래되었기에, 이 방법이 크게 도움이 된다. 그리고 멍은 휘발성이 강한데, 글로 남기게 된다면 내가 과거에 어떤 멍을 때렸는지 알 수 있다. 졸업할 때가 되면, 이 공간이 공상으로 가득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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