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을 그립니다 미내 Apr 17. 2023

그 해 우리는

<꽃아윤> 15.2x20.3cm_ sharppencil & watercolor on paper_ 2023_ 윤미내


본다는 것은 마음을 주는 것이다.

책을 보고, 영화를 보고, 그림을 보고, 거울을 보고. 눈이 오랫동안 한 곳에 머문다는 것은 그것이 흥미롭고 알고 싶기 때문이다. 기꺼이 대상에게 시간과 정성을 내주는 ‘보다’라는 행위는 따뜻하고 정감이 느껴진다.

어쩌면 나는 무언가를 보는 행위가 좋아서 보고 또 보다가 관찰하게 되고, 그렇게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된 것 같기도 하다.


매년 4월이면 딸의 생일에 맞춰 아이의 모습을 그려 선물한다. 내 손으로 그리는 딸아이의 한 해 한 해 커가는 모습은 어떤 성장앨범보다 큰 뿌듯함으로 다가온다. 꽃같이 고운 아이가 운명처럼 내게로 와서 나를 웃게 하고 때로는 인생을 가르쳐주기도 하는데, 마치 아이가 태어나기 전의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었고 그 이후의 삶이 진짜 내 인생이라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딸의 눈, 코, 입, 이마, 잔머리 하나하나까지 그리는 동안, 앞으로는 아이와 더 많이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웃어주는 엄마가 되리라고 다짐한다.


여느 4월처럼 아이 그림을 그리던 어느 날.

내게 보는 행위는 더 이상 따뜻한 관심의 시선만이 아닌 충격과 아픔일 수 있다는 것을 각인하는 일이 일어났다. 바닷물 속으로 서서히 잠겨가는 배를. 그 안의 아이들을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보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고통과 공포인가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그 장면은 온종일 텔레비전을 통해 보였고, 그해 4월의 바다는 내게서 보는 행위의 설렘을 삼켜 가져갔다.


그렇게 4월은 내게 기쁨과 아픔의 감정이 공존하는 달이 되었다. 딸의 생일이 돌아올 때마다 무탈하게 자라고 있음에 감사함을 느끼며 더 이상의 욕심은 부리지 말자고 다짐하지만, 이런 평범한 기도도 누군가의 희생과 고통으로 얻은 깨달음이라는 것이 아프고 죄송스럽다. 감히 위로할 수도, 공감한다고 할 수도 없을 만큼 조심스럽게 그 아픔을 기억한다고 말해본다.


이제는 아름답고 흥미로운 것들을 보며 사유했던 시선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음을 느낀다. 본 것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고, 보는 것이 어떤 힘이 될 수 있다면 더 정확하게 보고 부족함 없이 판단하고 싶다.


딸의 열두 번째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그리고 4.16 세월호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추모합니다.

 


※모든 이미지에는 저작권이 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사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