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바다에서 허우적 대는 나에게.

"끝까지 쓰는 용기"를 읽고

by 달빛달

언제 글쓰기라는 바다에 발을 디뎠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분들의 SNS를 팔로우하고, 소통하다 모임도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무언가를 쓰고 싶은 마음이 왈칵 올라왔고 그 마음을 따라 왔더니 글쓰기라는 망망대해에 몸을 조금 담그고 있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뭐가 나오는 것도 아닌데 글이 안 써진다고 머리를 쥐어뜯기도 하고 혼자 발행한 글을 취소하기도 하며 난리 부르스를 떨었다. 그러던 참에 이 책을 만났다.


정여울 작가님은 이 책을 통해 그렇게 허우적 대는 나에게, 괜찮다고, 나도 그랬다고, 본인은 이제 조금은 물살에 몸을 맡기고 떠있을수 있으니 도와주겠다고 따스히 손을 내밀어 주었다. 이 책은 바다를 유유히 헤엄칠 수 있도록 영법을 가르쳐 주진 않는다. 작법이라든가, 문장, 어휘에 대한 스킬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하지만, 나도 그랬다고. 나도 물이 아직 무섭고, 물을 많이 마셔봤고, 여전히 그러고 있지만 그럼에도 글쓰기라는 바다가 좋아서 유영하고 있을 뿐이라고 위로해준다. 그리고 글쓰기에 임하는 마음의 근육이 생기게끔 도와준다.

글을 쓸수록 나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 조심스러웠다. 그러면서도 브런치가, 인스타가, 블로그가 좋아하는 글을 쓰려고 의식하고 글을 썼고, 그 속에서 작은 반응에도 움찔하고 울컥했다. 사람들은 말랑말랑하고 위트가 있는, 감성 넘치는 글을 좋아했다. 그러다, 내가 쓴 원고를 돌아보니 무겁디 무겁다. 나 자체가 재밌고 밝은 사람은 아니기에, 글 역시 그럴 수밖에. 이런 글도 읽어줄까? 덜컥 겁이 난다. 정여울 작가는 이런 마음도 토닥여준다.


글을 쓰면서 나 자신이 치유 되어야 읽는 사람도 위로를 받아요. 위로를 줄수 있다고 믿으면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슬픔에 솔직해지는 글을 쓰다보면 결국에는 내가 괜찮아진만큼 독자들도 내가 쓴 글을 보며 행복해지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글을 쓰면서 치유와 위로의 기쁨을 스스로 느낄 수 있다면, 그 글을 보는 사람도 행복해지거든요. 위로하려고 애쓰지 말아요. 내가 내 아픔에 솔직해지는 글을 쓰면 그걸로 충분해요. p40
이 세상에서는 아직 내 마음과 비슷한 글을 찾을 수가 없어서, 내가 나를 위로하는 글, 내가 나를 어루만지는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깨달음이 많은 걸 변화시켰지요. 이해받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아니라 이해받을 수 없을지도 모르는 공포를 완전히 끌어안을 때, 그 절망의 밑바닥에서 신기하게도 용기가 생기더라고요. 너무 외로워서 글이라도 써야겠다고 마음 먹은 순간, 글을 써서라도 반드시 나의 외로움을 극복하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글을 써서라도 반드시 나의 마음과 비슷한 친구를 찾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생겼고, 그것이 결국에는 나처럼 아파하는 독자들을 찾아 제 글을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 그 글로 끝내 우리는 소통하고 교감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이어졌어요 p191

그래, 맞다.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도 이런 것이었다. 내가 나에게 솔직하고, 나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시작한 글쓰기였는데, 지금은 누군가가 읽어주길, 누군가가 좋아해주길 바라고 글을 쓰고 있었던게다.


출처 : 픽사베이

대학원생일 때, 3개월정도 파리에서 머문 적이 있었다. 낭만과 시크함의 상징인 파리였지만, 나에겐 외로운 곳이었다. 그 때, 자주 가던 수영장이 있었다. 한국에는 없는 수심 3m 풀이 있던 공립 수영장. 마음 붙힐 데가 없어 힘겨울 때, 그곳에 가서 가장 깊은 바닥을 유영하다 돌아오면 어느새 개운해지곤 했다.


나에게 글쓰기는 그런 것이다. 우울하고 나 자신을 잃을 것 같을 때, 내 내면 깊은 곳에 있는 무언가와 마주하고 나서 그것이 활자로 탁 터지는 순간의 희열. 그것은 마치 수영장 바닥을 치고 수면 위로 올라와 숨을 내쉴 때의 개운함에 비견할 만하다. 숨을 참고 참다가 수면을 박차고 나올때 비로소 숨통이 트이는 것 같은 그 느낌. 그 느낌을 잊지 못하고 이렇게 또 글을 쓴다. 조금씩 힘을 빼고, 수면 위에 편안히 누워있는 날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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