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관통한 적이 있나요?

"나를 관통하는 글쓰기" 서평

by 달빛달

이 책의 저자인 스테르담님은, 브런치와 글쓰기의 맛을 아는 사람에겐 유명인사이다. 저자는 국내 대기업에서 20년 가까이 일해온 평범한 직장인이면서 브런치에 꾸준히 자신만의 목소리를 모아 책으로 낸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책을 내기 위해 한번도 투고하지 않았지만 출판사에서 브런치에 쌓인 글들을 보고 책을 내자고 제안하여 벌써 5권째 책을 내고, 글쓰기 강의를 하고, 기고를 하는 삶을 살고 있다. 동시에 직장인이라는 본업에 충실하면서 작가라는 부캐도 일구어가고 있는 단단한 분이다.


브런치라는 플랫폼은, 요상하기 짝이 없다. 요즘처럼 영상이 대세인 시대에, 돈이 따라오지 않으면 움직임이 없는 시대에 브런치는 오직 텍스트와 진정성으로 승부한다. 인스타나 블로그처럼 선팔하면 맞팔 같은 ’의리‘가 오가지도 않고, 구독자나 조회수가 는다고 수익이 붙는 구조도 아니다. ’있어빌리티‘가 주가 될수도 없다. 꾸며내는 글은 오래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글‘로 진검승부하는, 어찌 보면 시대에 뒤떨어진 플랫폼이다.


스테르담 작가님은 이런 브런치를 잘 활용하셨기에 이 분야에서 유명해지셨지만, 정작 작가님이 브런치를 대하는 자세는 정공법이었다. 일단 쓰고, 계속 쓰고, 많이 쓰기.

책에도 있는 내용이지만, 홈런왕은 동시에 삼진아웃 왕이다. 많이 휘둘렀기에 많이 때릴 수 있는 것처럼, 작가님도 수많은 글들 중에 홈런이나 안타가 나오고(책이 출간되거나 찬사를 받는 반응), 때론 파울과 아웃도 있다고 하며, 그저 계속해서 쓰라고 한다.

이 책은 관통/보통/온통/고통/소통. 이렇게 5부로 구성된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역시 1부 관통이었다. 저자는 ’어떻게‘가 아니라 ’왜‘ 써야 하는지를 강조하며 목표가 ’책쓰기‘에만 혈안이 된 일부 사람들을 계속해서 설득한다. 책이 먼저가 아니라 글이 먼저라고. ’어떻게‘ 브런치에 합격하고, 구독자를 늘리고, 브런치로 책을 출간할 수 있을지가 아니라, 내가 왜 쓰고 싶은건지,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 사람인지를 끊임없이 들여다보라고 강조한다. 그것이 결국 ’나를 관통하는 글쓰기‘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내가 쓰는 글의 맨 처음 독자다.
나를 관통하지 못하는 글은 다른 이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없다는게 나의 결론이다.


허공에 둥둥 날아다니는 의미와 깨달음들에 생각의 무게추를 달아 머리로 끌어내리고 마음의 그릇에 소담하게 담아 내보내야 하는 그 과정이 익숙지 않은데, 나는 그 과정을 끝끝내 거쳐야 비로소 첫 독자인 나를 설득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아직 글쓰기에 있어선 이제 겨우 걸음마를 하는 수준의 초보이고 아직은 나를 ‘관통’하는 글쓰기를 할만큼의 내공은 없지만, 마음을 내어놓는 글의 힘은 알고 있다. 그것이 얼마나 나를 위로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일상을 반짝이게 하는지 말이다.


자유롭게 여기저기 다니기를 좋아했던 내가, 엄마가 되면서 활동영역이 급격히 좁아졌다. 이 나라에서 저 나라는커녕 이 방에서 저 방 까지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황들이 이어졌다. 외적으로도 ‘엄마’라는 역할이 기대하는 바가 있기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형에 맞춘 삶을 살아야 했다. 염색도, 짧은 치마도, 힐도 시도하지 않는 편이 좋았다.


코로나로 인해 좁았던 반경이 더 좁아지면서, 나는 더 이상 한잔의 와인이나 유튜브, 쇼핑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우울의 나락으로 빠졌고, 지푸라기라도 잡듯이 글을 썼다. 글은 돈도 안들고 짬짬이 쓸수 있으니까. 그런데 엄마 앞에 ‘글쓰는’이라는 수식어를 스스로 붙여주자 많은 것이 허용 되었다. 예민한 것도, 우울한 것도,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하는 것도.


글쓰는 세계에서는 ‘그럴수도 있지‘라고 고개를 끄덕여줬고, 브런치에 실제로 넘실대는 자기고백들은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고, 내가 문제가 아니라고. 나는 그렇게 글쓰기 안에서 자유로워졌다. 그리고 나를, 일상을 다르게 보기 시작하면서 내 삶은 풍요로워졌다.

그렇게, 나에게로 ‘통’하는 글쓰기가 찾아왔다.


스테르담 작가님은 말한다.

결국, 글쓰기는 얼룩을 지워내는 위로다. 하얀옷의 얼룩은 사실 지워지지 않는다. 그 농도를 옅게 할 뿐. 결국 우리는 그 옅어진 얼룩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글쓰기는 이 사실을 잘 안다. 그래서 글쓰기는 그 얼룩을 안고 살아야 한다는 진실을 말해주고, 늘어가는 얼룩들을 멋지게 받아들여 의미 있는 무늬를 만들어준다. 그것이 글쓰기가 주는 가장 큰 매력이고, 순기능이라고 나는 믿는다. 물론 글쓰기가 이러한 큰 선물을 주지만, 글을 쓰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나라는 사실이 당연하면서도 새롭다.

그렇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늘어가는 얼룩들을 글로 녹여내어 나만의 무늬를 만들어본다. 그것이 나중에 어떤 무늬가 될지는 모르지만, 그 과정에서 이미 나는 글쓰기와 ‘통’하였으니 그걸로 된 것이라 도닥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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