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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달 Aug 26. 2021

책이 만들어내는 틈

요즘 읽고 있는 책 "아티스트 웨이"에

"어릴 적 가장 좋아했던 장난감은 무엇인가.

어릴 적 가장 좋아했던 놀이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 나온다. 그 질문에 선뜻, "책"이라고 답했다.


엉덩이가 무겁고, 움직이는 걸 좋아하지 않는 성향 덕에

어릴 적 나는 집에서 빈둥빈둥하며 책읽는 것을 즐기는 아이였다.

집에서 죽치고 있으면서 책만 보는 나를 엄마는 답답해 하셨고,

"제발 좀 나가놀아라" 라고 말하셨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이 책을 펼친 기억이 있다.

그때, 나는 책 자체도 좋았지만, 사실 아이들 틈바구니에서 생기는 여러가지 신경전에 끼기가 싫었던 이유도 컸다.

주로 고무줄놀이, 땅따먹기, 술래잡기 이런 놀이를 하면서 놀던 때인데,

그 놀이 안에서는 내 마음대로 안되는 것이 많고, 네 말이 맞네, 내말이 맞네 하며 누군가와 신경전을 벌여야 했고, 떄로는 갈등이 생기기도 했으며, 그 갈등이 봉합되지 않는 일들도 다반사였다.

그런 과정에서 사회성이 길러지는 것이었는데 어린 마음에 나는 그 순간들이 참 피곤했던 것 같다.

신체를 사용하는 놀이를 딱히 잘 하지도 못했거니와, 사회적인 스킬도 그다지 없다보니 재미를 찾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책 안에서 나는 자유로울 수 있었다.

책 속 인물들은 나에게 전혀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언제나 새로운 이야기를 펼쳐보였다.

책 속을 유영하며, 나는 안전했고 평화로웠다.

그 속에서는 온전히 내 생각에 파묻힐 수 있었고, 누구도 내 그런 생각이 그르다고 하지 않았다.  

책은 하나의 도피처이자 안식처였다.

그러면서도 책에 빠져있는 나의 모습은 사회적으로 용인되고, 오히려 칭찬을 받는 행위이기도 했다.

엄마가 나가서 놀라며 내 등을 떠밀긴 했지만, 책 읽는 나의 모습은 동네아줌마들 사이에서

모범적이고, 훌륭한 아이로 회자되며 놀이터를 휘젓고 다니는 아이들을 깨우쳐주는 도구로 쓰이기 일쑤였다.

그 묘한 우월감이 나를 또 책장 앞에 앉게 했다.


인상 깊게 읽은 "엄마심리수업" (김우상, 심플라이프)에 독서에 대한 내 생각과 일치하는 구절이 있어 가지고 와본다.

�  독서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그 책속에서 아이만이 느끼는 독특한 세상이 있다는 것이다. 책 속에서 아이만이 느끼는 색과 향이 있다. 그 색과 향을 굳이 입 밖으로 내게 할 필요가 없다. ‘언어’는 어른들의 논리고 규범이고 평범함이다. 언어가 오히려 아이의 상상력과 창조성을 죽일 수 있다. 아이가 책을 읽고 느끼는 뉘앙스, 분위기, 이미지가 더 중요하다. 이건 언어로 표현하기 어렵다.


그렇다, 책 속에서 아이만이 느끼는 색과 향.

어릴 때, 명절을 맞아 외할머니 집에 가면

나는 항상 거실 구석 책장 앞에서 만화 삼국지 세트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명절은 항상 그렇듯. 만나면, "민아 공부 잘하나, 키는 얼마나 컸나, 요즘 학교는 잘 다니나" 등등

평소에 묵혀두었다가 명절에만 몰리는 나에 대한 과한 관심이 부대끼기도 하고,

어른들끼리도 보여주고 싶은 만큼의 사생활의 크기와 보여져야 하는 사생활의 크기가 달라 당황하는 모습들이 어린 마음에도 느껴져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구석에서 책을 읽었다.

그저 그 속에서 평화로울 수 있었고,

책을 읽는 어린 소녀의 모습은 다른 이들에게도 꽤나 괜찮은 명절의 미장센으로 보여졌기에

친척들도 내가 책을 읽는 행위에 대해 허용적이었다.

사실 그 때 읽은 책의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무를 직접 베어와 만든 듯한 거실 바닥의 촉감, 가족들의 시끌 시끌 달뜬 분위기, 할머니가 명절마다 해주셨던 작지만 알찬 동그랑땡을 굽는 냄새, 책장을 넘기며 할머니의 특제 음료인 감주(식혜)를 홀짝이던 그 달달한 맛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이 난다.  할머니가 치매로 돌아가신지 10년이 넘고, 사촌들도 장성해 사회인이 되었고, 이모삼촌들의 머리가 희끗해진 지금도, 그 분위기는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리고 항상 내곁에는 책이 있었다. 책은 나에게 쉴 틈이었다.


그러다 공부를 하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책이라고는 교과서와 문제집이 다였던 10대와

너무나 재밌는게 많아서 음주가무를 즐기느라

책을 1도 보지 않았던 20대를 지나

내 주변에 아이들의 미완성된 "말" 밖에 없는 30대를 보내며

다시 책을 만나게 된다.

그제야 수업시간에 주제, 핵심단어, 주인공의 감정을 줄치며 배웠던 문학 작품 속에서 실제 삶이 보였고,

인문서에서 우리 사회 이면의 문제와 앞으로의 방향이 보였다.

그야말로 어른들의 말로 가득찬 세계였다.

책에 파묻혀 있는 동안은,

아이들이 싸우는 소리, 잡다한 집안일에 벗어나

나만의 세계 속에 안전하고, 평화로울 수 있었다.


어찌보면, 책을 좋아했던 어린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는 한 끗도 달라지지 않았다.

현실을 도피하고, 위안을 얻으려고 책 안으로 침잠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 책을 많이 읽었던 시간들이 알게 모르게 자양분이 되어

학생으로 사는 동안, 일을 하는 동안 다음 스텝으로 가는 디딤돌이 되어주었듯이,

지금 읽는 책들도 현실을 더 잘 살게 하는 마중물이 될지 모른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책은 자신을 만나는 틈을 만들어 준다는 것. 

마음에 닿는 한문장 한문장을 만날때마다 그것을 붙잡고 더 행복한 방향으로 가게 해줄것 말이다.

책이 만들어주는 일상의 틈에 기대어, 오늘도 꿋꿋이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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