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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달 Apr 14. 2023

아빠의 칠순 여행

1954년생 아빠의 칠순.

70년이라는 세월의 대부분을 가족을 위해 일하신 아빠.

다른 가족들이 평안하게 살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해주신 아빠.

그러고도 은퇴 후 가족들의 놀림?!을 다 받아주시는 아빠의 칠순을 기념하기 위해 제주도로 가족 여행을 떠났다.

여행 구성원은 아빠, 엄마, 나, 남편, 초4, 7세 아들 둘, 남동생까지 7명.

오랜만에 가족 모두가 떠난 여행이어서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티 없이 아름다운 배경에서 가족들의 웃음 소리가 주위를 둘러싸는 여행은 광고에서나 찾아볼 법한 그것일까.


개성이 강한 7명이 함께 먹고 자고 관광하다보면 뾰족뾰족한 모서리들이 부딪히고 어그러지는 순간이 생기곤 했다. 아이들은 어른들 위주의 코스에서 흥미를 못느끼고 불평을 토로했고, 야행성인 남동생은 9시면 잠을 청하는 엄마의 생체리듬과 맞지 않아 새벽까지 로비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번 여행이 헛헛함을 남긴 것은,

부모님의 예전과는 다른 몸 상태였다. 특히 허리 협착증으로 고생하고 계시는 엄마와 오랜만에 장시간 밀착해 있다보니, 몇해전보다 부쩍 쇠약해지셨음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계단이 있는 곳은 피하는 엄마, 서울과 제주를 왔다갔다 이동하는 일이 힘겨워진 엄마, 반나절 정도 움직인 이후엔 몇시간씩 휴식을 취해야 하는 엄마, 잠자리가 바뀌니 쉽사리 잠을 못이뤄서 계속 피곤한 엄마. 아빠 역시 초행길을 운전하기 힘겨워하는 모습 등을 보이셔서 두분께 드리운 "노년" 이라는 그림자가 점점 짙어지고 있음을 체감했다. 노인의 몸이 되어가는 부모님을 지켜보는 것은, 쉽지 않다.  


쇠약해진데다 피로가 쌓인 상태여서 더욱 그랬겠지만,

이번 여행에서도 부모님은 우리를 계속 기다리셨다.

새벽에 일어나서 늦잠 자는 우리 가족을 기다리고,

아이들이 수영하는 모습을 보며 기다리고,

해변가에서 노니는 모습을 보며 기다리셨다.


칠순이 되어서도 우리를 기다리시는 모습에, 마음이아린다.

그리고, 욕심인줄은 알지만 이렇게라도 다음 여행을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라게 된다.

싸우고 삐지고 갈등이 있더라도, 또 다른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되기를.


내년 엄마 칠순에는 어딜 가고 싶으시냐고 넌지시 여쭤봤더니,

이제 여행 안갈란다. 동네가, 집이 제일 편하다. 하시는 엄마.

철없는 딸내미는 그래도 다음 여행을 준비하려고 한다.


몇년전 여행 사진 속 아이들은 정말 작고 귀여웠다. 현실은 쉴새없이 손이 가고 몸이 힘겨워서 이것이 여행인지 노동인지 분간이 안가는 상황이었지만 말이다. 아이들이 그렇게 물리적으로 사고를 치고 부모를 피곤하게 하는 것도 "한 때"였듯이, 부모님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도 찰나일 것이다. 그 찰나를 붙잡고 그 순간들이 행복으로 더욱 물들 수 있도록 애써봐야겠다.


엄마, 아빠, 다음에도 또 여행가요. 알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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