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3인 큰아이는 개성이 강한 친구이다.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 가장 적절할 것 같다. 특별히 문제가 있진 않지만 자기만의 색깔이 강한 아이.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것보다 혼자 책을 읽거나 코딩을 하면서 자신만의 세계에 있을 때가 가장 편안해보이는 아이. 가끔 친구들과 교감을 할때도 여러 친구들을 만나서 텐션이 업되는 상태보다 소수의 친구들과 소통할 때 더 안도하는 아이. 자극에는 예민한 편이나 감정 표현에는 둔감한 편이라 오해를 받기도 하는 아이. 기본적으로 선하고 모범생적인 기질이 강해서 단체 생활도 잘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집에 오면 꾹꾹 눌렀던 마음을 서툴게 펼치기도 하는 아이가 바로 내 아이이다.
그런 아이가 2학기 시작을 맞이하며 반장선거에 나가고 싶다고 했다. 1학기에도 나가고 싶어했지만 미처 용기를 못내고 출마도 하지 않은 것이 내내 후회가 되었나보다. 좋은 기회라고 생각은 했지만, 부모 된 입장으로 걱정도 되었다. 감정적, 사회적으로 빠릿빠릿한 아이가 아니었기에 혹여 결과가 좋지 않으면 상처를 받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 네가 하고 싶으면 도전해봐. 그런데 혹시라도 떨어질수도 있어. 결과가 그렇게 나왔을 때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하고 도전하렴."
이라고 겉으론 담담하게 이야기 했지만 속으론 울거나 지나치게 속상해하면 어쩌나 하는 우려를 안고 아이를 지켜보았다. 아이는 며칠간 열심히 대본을 쓰고 연설을 연습하며 반장선거를 준비했다.
당일 아침. 아침을 먹으면서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나 그냥 반장선거 나가지 말까?"
그런 아이에게 말해주었다.
"아들, 아들이 선거에 나가서 임원이 되면 뿌듯하겠지.
하지만, 네가 선거에 나가서 임원이 되지 않더라도 너는 그 경험에서 배운 게 있을 거니까 뿌듯해야 돼.
만약 네가 떨어질 게 무서워서 도전도 안한다면, 아무것도 남는게 없을거야.
그러니까, 너는 선거에 나가기만 하면 돼. 그러면 엄마도, 너도 너 자신에게 무조건 뿌듯할거야."
아이는 이해한 듯, 아닌듯 모호한 표정으로 집을 나섰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냐 하면..
수업이 끝나자마자 전화를 걸어온 아이는,
"엄마, 나 부반장됐어!"
하며, 신나게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10명이나 출마해서 예비투표까지 거쳤고, 친구와 표가 같아서 재투표까지 했던 이야기. 그리고 집에 돌아와 우영우처럼 뿌듯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선출이 되든 안되든 스스로의 힘으로 무언가에 도전한 아이가 참으로 기특했다.
그리고 뭉클했던 우영우 마지막회의 명대사를 떠올렸다. 극속에서 우영우는 자신을 길을 잃어 흰고래 무리와 함께 살아가는 외뿔 고래에 비유하며 이렇게 이야기 한다.
제 삶은 이상하고 별나지만 가치있고 아름답습니다.
어쩌면,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기준을 적용하지 않더라도, 우리 모두는 어딘가 조금씩은 외뿔고래 같은 면이 있을지도 모른다. 누구나 이상하고 별난 면이 있지만 사회에 나와서는 흰고래처럼 행세하며 외뿔고래처럼 보이지 않으려 애쓰는 지도 모른다. 어른이라는 나 역시, 여전히 모나있고 거칠고 별난 모습아닌가. 내 아이 역시 그저 그 아이 본연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내가 다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아이의 삶은 그 자체로 가치있고 아름다울 것이다. 그 외뿔고래를 품는 바다 같은 엄마가 되리라 마음 먹는다. 오늘도 모든 외뿔고래와 흰고래가 바다 같은 엄마의 사랑 속에서 마음껏 유영할 수 있는 하루가 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