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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달 Aug 23. 2022

가족 여행의 달콤쌉싸름한 맛

김영하 작가님은 ‘여행의 이유’라는 에세이에서 이렇게 말한다.      


“지금도 나는 비행기가 힘차게 활주로를 박차고 인천공항을 이륙하는 순간마다 삶에 대한 통제력을 회복하는 기분이 든다. 휴대전화 전원은 꺼졌다. 한동안은 누군가가 불쑥 전화를 걸어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모든 승객은 안전벨트를 맨 채 자기 자리에 착석해 있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어지로운 일상으로부터 완벽하게 멀어지는 순간이다. 여행에 대한 강렬한 기대와 흥분이 마음속에서 일렁이기 시작하는 것도 그때쯤이다. 내 삶이 온전히 나만의 것이라는 내면의 목소리를 다시 듣게 되는 것도 바로 그 순간이다 (p.202)”    
 

설렘을 안고 일상을 벗어나 여행지로 떠나는 그 순간.

꼭 해야 하는 일들로 가득한 일상에서 벗어나는 그 순간의 쾌감은

여행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여행을 너무나 좋아하고 즐기는 편이다. 운이 좋게도 학부 때는 미국 시애틀에서, 대학원 시절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했기에 공휴일, 방학을 이용하여 미국과 유럽 여행을 종횡무진 다녔다. 학생 신분이었기에 공용 샤워실을 사용하는 6인실 게스트 하우스, 한식을 주는 민박집, 단기로 빌린 친구집, 1박 숙박요금을 아낄 수 있는 야간 열차 등 다양한 수단을 이용해서 각국을 여행했다. 김영하 작가님의 글처럼. 내 삶이 온전히 나만의 것이라는 목소리를 몸의 온갖 감각으로 느끼는 시간들이었다.      

출처 : 픽사베이


밤 늦게까지 외국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고 동굴 숙소에서 눈을 붙인 후 어스름한 새벽 기운을 헤치고 열기구에 올라 내려다본 카파도키아의 모습. 친구 집을 빌리고 근처 프랜차이즈에서 포장해서 끼니를 때우면서도 이것만은 꼭 봐야 한다며 지하철로 1시간을 넘게 이동해 훌리건 같은 아저씨들에게 둘러싸여 본 영국 축구 경기. 삶은 11시부터 시작된다는 확고한 주관을 가지고 매장은 아침 11시 오픈이 기본, 유흥도 밤 11시부터 시작되는 스페인에 매료됐던 시간들. 다양한 인종, 국적의 사람들이 오가는 관광지를 돌아다니다 지친 우리를 따스하게 감싸준 한국 민박집 등. 지금 생각해도 여행가길 잘했다 생각이 드는 순간들이 너무나 많다.      


그런 나에게 가족여행이란, 마치 자유여행만 하던 사람이 패키지여행을 하며 불만이 생기듯 전혀 다른 카테고리의 여행처럼 느껴지는 것이었다. 여행이라는 말 앞에 ‘가족’이 붙었을 뿐인데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사랑과 행복으로 구성된 ‘가족’과 설렘과 기쁨으로 구성된 ‘여행’의 조합은 그 행복감이 더 배가되어야 하는 일일진데. 어째서... 현실은 그렇지만은 않을까     


이번 여름 여행 역시, 출발은 순조로웠다. 10살, 6살 아이들은 일상에서 탈출(숙제 없고, 학교/유치원/학원 없음으로 읽는)할 수 있어 들떠있었고 어른들 역시 의무감에 잠시 쉼표를 찍을수 있다는 기대로 설레었다. 그런 마음으로 강원도 평창에 도착했고 3박 4일 동안 지지고 볶으며 햄볶았다 (대체로 행복했다는 뜻).      


하지만 사춘기 직전 어린이 1명은 여행 기간에 자주 투덜거림과 불평을 일삼곤 했다. 아무데도 가지말고 호텔에 누워있고 싶다는 뜻을 온몸으로 내비쳐 우리 가족을 난감하게 하기도 하고, 산이나 절, 공원 같은 자연물과 함께 하는 일정은 하는 내내 재미없다 노래를 불러 나를 뿔나게 하기도 했다.      


아마도, 이제 내가 아이의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는 단계에 접어든 것 같다. 자신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명확해지고 혼자만의 생각도 단단해지는 과정에서 가족 여행이라는 틀에 자기 자신을 우겨넣지 않겠다는 목소리인게다. 그럴수 있지 암. 그렇고 말고. 하지만 일상을 벗어난 애미의 마음은 이미 강원도 하늘을 훨훨 날고 있는데, 아들이 계속 제동을 거니 나 역시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삐걱거리던 여행은 마지막날 워터파크 5시간과 오락실, 볼링장 일정으로 아주 깔끔하게 마무리 되었다. 마치 잘 맞지 않던 퍼즐 조각이 제자리를 찾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달콤하지만 쌉싸름한 맛이 나는 가족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의 사진을 들여다 본다. 쓴 맛이 있었냐는 듯, 사진 속 아이들의 웃음은 말갛기만 하고 그것을 들여다보는 내 얼굴에도 절로 미소가 떠오른다.      

여행은 초콜릿 같다. 내가 20대에 했던 여행이 달콤해서 입에 넣는 순간 사르르 녹는 밀크초콜릿 이었다면, 가족들과 함께 부대끼고 울고 웃는 여행은 쌉싸름한 맛이 도는 다크 초콜릿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쌉싸름한 맛이 있기에 달콤한 맛이 더욱 입안에 오래 맴도는 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가족여행에 따라가지 않는 그날까지, 그 쌉싸름한 맛을 많이 즐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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