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마음에 꽁꽁 잠궈놓은 순간이 있다
다시 꺼내면 그때의 내가 바보같기만 해서 후회되고 아프니까
그냥 덮고 아무일도 없던 것처럼 마음 속 문을 닫고 그속에 숨겨놓은 일
최근에 발을 다쳐서 본의 아니게 집에서 많은시간을 보내게 되었고
자연스레 내가 챙기던 일들을 아이들이 스스로 하게끔 하게 되며 깨달았다.
이제 내 손이 닿지 않아도 아이들은 잘 할거라는 것을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는 것을
그러면서 나에게로 다시 돌아왔다
나에게 주어진,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도화지 같은 시간들
나를 밀어내기 시작하는 아이들
그리고 마침 본 드라마 한편이
나를 다시 그 문 앞으로 다가가게 만들었다.
드라마 <미지의 서울>의 주인공인 쌍둥이 미지와 미래
미지는 육상선수를 꿈꾸었지만 불의의 사고로 그 꿈을 이룰 수 없게 되면서 스스로를 방에 가두고야 만다
공부만이 자신을 증명할 길이었던 미래는 그 길 위에서 타협을 거듭하며 공사에 취직하지만
그곳에서 그녀는 부당하고 억울한 일들을 당하며 타의가 만든 방에 갇히고 만다
그녀들이 어떻게 닫힌 문을 여는지를 그려낸 이야기
주인공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손을 잡고
세상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과정이 인상깊었다.
특히, 미지가 히키코모리처럼 방에만 갇혀있을 때 조심스럽게 방으로 들어온 할머니가 해준 말이 마음에 많이 남는다.
할머니 "아이고 우리 번데기 얼마나 큰 나비가 되려고 이러나"
미지 "아니 나 아무것도 안될거야"
할머니 "그럼 또 어때. 지금처럼 아픈데 없이 밥 잘 먹고 가끔 할머니 말동무 해주면서 살면되지. 할머니가 너 하나 살릴 돈 있어. 진짜"
미지 "할머니 나 진짜 정신병인가봐. 다 너무 후회되고 걱정돼서 아무것도 못하겠어."
할머니 "뭐가 그렇게 걱정이야 어제는 끝났고 내일은 아직 멀었는데."
미지 "모르겠어. 나도 진짜 나가야 되는거 아는데 다시 아무것도 아닌때로 못돌아가겠어. 거기밖에 돌아갈 데가 없는 것도 아닌데 너무 초라하고 지겨워. 나한테 남은 날이 너무 길어서 아무것도 못하겠어. 할머니, 나 쓰레기 같아."
할머니 "사슴이 사자 피해 도망치면 쓰레기야?
소라게가 잡아먹힐까봐 숨으면 겁쟁이야?
다 살려고 싸우는 거잖아
미지도 살려고 숨은거야
암만 모냥 빠지고 추저분해보여도 살자고 하는 짓은 다 용감한거야.
우리 아가 괜찮아. 툭툭 털고 일어나자."
왜 나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해주지 못했을까
살면서 마주한 여러 순간들마다
못할 것 같아서
사람들 기대에 부응을 못할까봐
스스로에게 실망할까봐
그렇게 중요한 순간들마다 도망치듯 그만둔 나 자신에게 해주는 말 같았다.
문을 열면 그 앞에 어떤 일들이 있을지
내가 그 일들을 잘 해낼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르지만
할머니 말처럼
어제는 지났고
내일은 멀었고
오늘은 아직 모르니까.
닫힌 문을 조금씩 열어볼까
이렇게 작은 생각들을 조금씩 세상으로 내보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