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곧 이야기로 남는다
*이 글은 2017년 서른넷 어느 여름에 작성한 것입니다.
앞에서 소개한 특별한 길고양이가 사는 작은 공원은
이미 나에게 ‘묘촌’이다.
그곳을 몇 번 지난 사람은 다 그 고양이를 안다.
그 고양이가 나와 있으면 지나가며 아는 체하기도 하고,
아예 모른 척 지나가기도 한다.
그만큼 거기 그렇게 앉아 있는 게 당연한 존재다.
그 고양이와 놀아주면서 수없이 겪은 일인데,
그 고양이 공원을 지나는 사람들 중 대다수가 고양이 이야기를 한다.
고양이가 머무는 곳이니 지나가며 그 특별한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영화 <빅피쉬>를 보면
주인공의 아버지는 그 자체가 이야기가 되면서 불멸의 존재가 된다.
아들은 아버지가 과거에 대해 말하는 이야기가 허구라 믿어 진실을 파헤치려 하지만,
결국엔 아들 그 자신이 그 이야기를 완성하는 주체가 되고,
후에 태어난 자신의 아들에게도 그 이야기를 전하는 텔러가 된다.
그렇게 세상을 떠난 아버지는 이야기로 ‘구전’되면서 불멸의 존재가 된다.
그것이 허구냐, 진실이냐의 공방은 힘을 잃어버린다.
이 고양이는 자신을 불멸로 만들었다.
아마도 사람들은 그 고양이가 사라져도
‘옛날에 이곳에 이런 고양이가 살고 있었어.’로 시작되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같은 이야기를 하게 될 테니까.
정착은 그 자체만으로 기록이며 흔적이 되는 법이다.
인생은 곧 어느 때, 어느 곳에 정착하는 것을 의미하며
그렇게 홀연히 떠난 자는 이야기로 남을 것이다.
내가 머무른 곳을 지나는 사람들은 나에 대해 이야기할까?
그 이야기는 어떻게 시작될까?
사람들은 고양이 공원을 지나며 고양이 이야기를 한다.
나 또한 할아버지 고향에 갈 때는 할아버지 이야기를 한다.
같이 살던 반려견이 죽음을 맞이한 곳에 가면 그 강아지 이야기를 한다.
그 이야기를 하지 않는 날엔 괜한 죄책감이 든다.
그렇게 모두가 이야기로써 생을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