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파괴하는 지독한 일관성

30대, '서서히'가 필요한 나이

by 변민아

*이 글은 2017년 서른넷 어느 여름에 작성한 것입니다.




그동안 무언가를 꼭 휘몰아쳐서 처리하고 장렬히 전사하듯

몰아서 쉬는 패턴으로

일도 공부도 해오다 보니 몸과 정신이 너무나 힘들다.


분명 어렸을 적엔 너무나 규칙적으로 융통성 없는 일상을 지냈던 것 같은데,

원래 내가 이런 사람인데 어렸을 적에 잠시 환경과 교육으로 잠시 그렇게 살았던 건지,

내가 변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이 패턴은 정말 끊기 어렵다.

이게 너무 괴로워 별 조치를 다 취해봤지만

‘작심삼일’만 수십 번을 해왔다.


누군가는 그럼 작심삼일을 계속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자도 있는데,

작심삼일을 반복하는 것 또한 반복이다.

그건 마치 반복 구간을 아주 짧게 설정해놓고

그 구간만 무한반복해서 음악을 듣는 것과 같다.

그렇게 구간을 나눠 한 곡을 다 듣는다면 절대 그 곡의 묘미를 알 수 없기에

그 방식으로 일을 이어가는 건 결국 일의 즐거움과는 멀어지게 만든다.


이런 식으로 일을 하는 사람은 열정적으로 보인다는 장점 혹은 단점이 있다.

그 열정이라는 게 정말 무서워서 늘 자신을 다치게 한다.

그 끓어오름이 20대에는 참 좋았다.

나는 늘 무언가를 하고 있었고,

도전하고 있었고, 설정했던 목표를 단기에 이루며 성취감을 느꼈으니까.


그런데 이게 30대가 되고 나니,

성취감이고 나발이고 너무 힘들다.


그러다 책과 강연을 통해 ‘이런 유형의 사람’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걸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거기서 위로를 얻긴 했지만, 위로고 나발이고 그냥 너무 힘들다.


왜냐하면 일, 살림, 운동은 그렇게 몰아쳐서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은 몰아칠 수 없는 영역의 것이다.

반복을 견디지 못하는 내 고질병 때문에 일상이 만들어낸 일관성은 견디지 못하면서

내가 만들어낸 일관성도 견뎌내지 못한다.

이 불협화음에 대해서 항상 고민한다.

프리랜서가 되어 시간과 공간을 택할 수 있는 자율성이 늘어난 반면,

이러한 특징 때문에 일상의 모든 패턴이 무너지는 때가 많이 있다.


이 지독한 일관성과 결별하는 것만이 답은 아닐 것이다.

이런 유형의 사람이 있는 거라면 나답게 산다는 건 그 특징을 유지해야 된다는 건데,

안타깝게도 나답게 사는 게 나에게 해로운 경우 어떻게 해야 되는지까지 말해주진 않는다.


저 패턴 자체가 좋다, 나쁘다를 따질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다만 결과적으로 너무 힘이 드니까 나쁜 습관이라고 할 수는 있겠다.

서른넷이 되니 저 패턴이 나에게 보람보다 힘겨움을 안겨줄 뿐이다.


역시나 이제는 ‘서서히’의 지혜를 발휘해야 하는 것 같다.

그 패턴을 갑자기 버리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규칙성과 불규칙성이 섞이도록 자연스럽게 놓아두는 것.

반복의 영역을 조금 더 넓히고,

몰아쳐서 하는 영역을 조금씩 줄여나가는 것.

그렇게 서서히 균형을 맞춰가는 것.


그러니 함부로 나다움에 대해 논하지 말라.

그 나다움이 오히려 나에게 독이 되는 경우도 있다.

누구보다 나다움을 예찬했었는데, 그 나다움이 만들어낸 족쇄도 있다.

일관성은 결국 그것이 나에게 최적화된 패턴이기 때문이 생겼으리라.


하지만 그게 역으로 나를 괴롭히는 시점도 온다.

그건, 내가 나이를 먹고 있기 때문이다.

기력이 점점 딸리고

끌고 가야 하는 것들이 점차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포기를 몰랐던 사람이 포기하는 일이 생기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겼던 사람이 가차 없이 연을 끊기도 하는 것이다.

나를 괴롭히는 나다움과는 멀어질 필요도 있다.


마음 편히 살아갈 권리를 위해

쓸데없이 열정적인 나를 기꺼이 놓아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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