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애매한 서른넷이다

남 탓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한 나이

by 변민아

*이 글은 2017년 서른넷 어느 여름에 작성한 것입니다.





서른넷이 되면 뭐가 그렇게까지 달라질 거라 생각했던 걸까.

서른넷, 2017년 한 해를 살고 있는 나를 보니

여전히 욕심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배우고 싶은 것도 많은데

소심함은 그와 정비례해서 늘어만 간다.


나이가 들면 하고 싶은 게 많아지는 것도 멋이 될 줄 알았는데,

배움과 새로움에 대한 욕구가 커지는 게 오히려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든다.


나는 애매한 서른넷이다.

결혼한 서른넷은 ‘보통’ 이유식을 먹는 아이 정도는 있을 것 같은데

나는 결혼은 했지만 아직 아이는 없고,

직장을 일찍부터 다녔다면 경력단절이 되어 있거나 회사를 다니고 있어야 할 거 같은데

나는 자진해서 퇴사를 하고 새로운 일을 저질러버렸다.

그러면 남편이 직장을 다니며 월급을 받고 있어야 할 거 같은데

내가 퇴사한 후 남편도 꿈을 찾아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 후로 약 3년 뒤인 2020년 11월 현재, 드디어 남편은 다시 직장인이 되었다)


그런데 왜 나는 이 상황을 '애매하다'라고 표현하고 있을까.


30대가 되어 포기하는 것이 늘어나는 반면,

정말 나다워지기 위해 배우고 싶은 고가의 것들도 늘어난다.

정확히 말하면

인생에 대해 아주 조금은 배운 것 같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아주 약간은 알게 된 것 같은데

그것을 실행할 만한 현실적 여건이 안 되어 좌절하는 시기가 아닐까 싶다.


이렇게 장마가 지속되는 날씨에는 세상 탓도 해본다.

꿉꿉해진 이불을 꾹꾹 누르며,

혹시 장마 때문에 나도 같이 꿉꿉해진 건 아닌가,

세상은 장마가 사라지면 다시 빳빳하고 깨끗한 대지를 갖게 되겠지만

꿉꿉해진 나의 몸과 기분은 누가 다시 빳빳하게 해주는 걸까.


애매한 나는 이걸 애써 날씨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위로받는 걸 보니,

20대에 남 탓하지 말고 환경 탓하지 말라고 했던 말을 떠받들던 나는

심지어 순진해 보이기까지 하고,

때로는 ‘탓을 할 줄도 아는 게’ 지혜라는 걸 이제 알겠다.


좀 더 어리석어지고 이기적으로 변해야 한다고 느끼는 걸 보면

30대는 ‘착해지자’보다는 ‘누가 그러든 말든 내 맘대로’가 더 강해지는 듯하다.


정확히 말하면 부딪힘이 늘어날수록

강해지고 단단해지기보다

그만큼 포기하고 버리는 것이 늘어나고,

나를 보호하고자 하는 힘이 늘어난다.

그것이 강해진다는 진짜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이 애매함에 대해

애매한 것이 결코 불안하거나 두려움의 방증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오히려 애매함을 나를 보호하기 위한 당연한 장치이자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취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임을 마음껏 해명하고 싶다.


명확해지려다 애를 쓰고

애를 쓰다 불행을 초래하는 고리를 끊어버리기 위해서.

매거진의 이전글서른넷, 워커홀릭에게 지독한 번아웃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