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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미 Sep 01. 2023

오늘도 욱하고 말았다.


9월 1일, 어제와 다른 산뜻한 공기가 창문으로 훅 하고 들어왔다. 몸이 부르르 떨릴 정도의 서늘함에 주춤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반쯤 감은 눈으로 아이들이 누워있는 곳으로 향했다. 아이들도 추운 지 이불을 몸에 돌돌 말고 자고 있었다. 아이들 사이로 파고들어 가 나지막이 이름을 부르며 몸을 쓰다듬어준다. 아이들은 일어나기 힘들다며 칭얼거린다. 엄마의 손길을 더 느끼고 싶은지 등을 긁어달라고 한다. 등을 쓰다듬듯 긁어주며 장난스럽게 옆구리를 콕콕 찔러주면 아이는 자지러지게 웃는다. 아이들도 나도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 루틴이다.


시작은 좋았는데 녀석들이 아침 식사 중에 장난을 치다가 우유를 왕창 엎질렀다. 이불 두 개와 작은 아이 옷이 우유로 범벅이 됐다. "이 녀석들! 밥 먹을 때 장난치지 말랬지?!!!" 호통을 치며 허둥지둥 우유를 닦아낸다. 작은 아이는 "아빠한테 엄청 혼나겠다아.."라며 휴지로 우유를 닦고 큰 아이는 어쩔 줄 몰라하다가 수건을 챙겨 오려 한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그만 "야! 수건으로 닦으면 안 돼! 그냥 가만히 있어" 하고 말았다. 시무룩해진 아이는 안절부절못했다. 나는 못 본 척하고 우유를 닦아냈다.


한바탕 소란 후에 아이들이 모두 등교를 하고 나니 후회가 밀려온다. 애들한테 그리 화내는 게 아니었는데... 화를 낼게 아니라 훈육이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또 욱하고 말았다. 마음이 편치 않다. 기분이 축 가라앉았다. 이미 지나간 일을 어쩌나, 눅눅한 기분을 달래 보려 원두를 갈기 시작한다. 헌데 오늘 그라인더도 말썽이다. 전동 그라인더 배터리가 다 돼서 원두가 갈리다 말았다. "으휴, 그라인더까지 말썽이야"하며 애먼 그라인더에 짜증을 냈다. 얼마간의 충전 후 원두를 마저 갈아서 커피를 내렸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케냐 AA 한 잔 마시며 기분 전환해야지. 커피 한 모금 마시며 맥북을 열고 잔잔한 재즈를 틀었다. 커피가 줄어들수록 정신이 말개진다. 책상 왼쪽 구석에 어제 채점 못한 아이들 학습지가 보인다. 채점을 하고 오늘치 학습분량을 체크해 준다. 아이들 책상 위에 나란히 올려두고 출근할 준비를 한다.


출근하기 전 베란다에서 밖을 내다보니 해가 쨍하다. 양산 대용으로 쓸 접이식 우산을 챙겼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1층 공동현관문을 열고 나왔다. 선선한 바람에 실린 가을 냄새에 기분이 좋아졌다. 이어폰을 꽂고 윤하의 '오르트 구름'을 틀었다.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높아진 하늘에 구름이 포슬포슬하게 떠 다닌다. 어제만 해도 따갑던 햇볕은 포근하게 느껴지고 바람까지 시원하게 불어주니 걷기 딱 좋은 날씨다. 100보, 200보, 300보, 400보... 걸음 수가 늘어갈수록 눅눅하던 기분이 뽀송해진다. 이윽고 오전에 있었던 일을 후회하는 감정에서 빠져나왔다. 아이들도 나처럼 울적한 기분은 등굣길에 흘려버리면 좋겠다.


'욱하기 전에 2초 간 멈추기'

'용서는 내가 아니라 아이들이 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기'


엄마 수련은 끝이 없구나.



사진: UnsplashEastman Chil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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