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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미 Jun 29. 2023

친구의 손등을 물어 뜯은 아이

점심 휴게 시간, 간밤에 코가 막혀 힘들어했던 큰애가 걱정되어 약을 사서 집에 갔다. 사온 약 꾸러미를 풀어서 남편에게 보여주며 아이가 많이 불편해하면 먹이라고 일러두고 약과 함께 사온 컵라면을 끓여 김밥과 곁들여 점심을 먹었다. 라면 두 젓가락, 김밥 세 알쯤 먹었을 때 큰애 담임 선생님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메시지를 확인하는데 아이 손등에 이로 힘껏 문 자국이 선명한 사진 두 장이 보였다.


어머니, 오늘 점심시간 직전에 일이 있었습니다.
아이가 화장실에서 갑자기 OO학생의 왼쪽 손등을 물어뜯었습니다.
... (중략)
통화 가능한 시간 알려주시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사진과 메시지를 확인하고 놀란 나는 곧바로 담임 선생님과 통화를 했다. 요약하자면, 피해자인 그 아이는 아무런 말도 행동도 하지 않았는데, 우리 애가 갑자기 "야, 싸울래? 싸우자!"라는 말을 외치며 손등을 물어뜯었다는 것이다. 아이를 불러 자초지종을 물어보아도 횡설수설 말이 자꾸 바뀌어 판단이 어려우니 집에서도 물어보고 폭력을 행사한 행위에 대해 훈육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전화를 끊었다. 통화를 끝낸 후 나는 곧 남편에게 상황을 알렸다. 그러자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복수한 거네. 자기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 한 거네. 그 마음 이해 가.
복수..? 아... 그런가.
그때 그 일 말이야, 그때의 복수한 거 같은데.


4학년 말쯤인가, 평소처럼 아이에게 학교에서 힘들거나 어려운 일이 있으면 꼭 엄마한테 이야기하라고 습관과도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러자 아이가 하나의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해줬다.


엄마, 내가 집에 오는 길에 OO가 길을 막고 안 비켜줬었어. 그리고 막 누구랑 사귀냐고 놀리고 그랬어.
뭐? 그런 일이 있었어? 언제 그런 거야? 어제?
아니, 좀 지났어.
OO 혼자 있었어? 아니면 몇 명 더 있었어?
두 명 더 있었어.
그래서 그러고 어떻게 했는데?
그냥 막 뛰어서 집으로 왔어.
안전하게 잘 피했네. 그 뒤로는 비슷한 일 없었어? 또 와서 너 막 괴롭히거나 그런 거 없었어?
응. 없었어.
그래, 다음에 또 그런 일이 생기면 꼭 엄마한테 이야기해 알았지?
응.


그러고 며칠 뒤 아이는 뜬금없이 지난 사건을 이야기하면서 복수를 해야겠다고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나는 복수라는 감정은 좋지 않은 거라고 누군가를 때리는 건 옳지 않은 행위라고 일러줬다. 그러나 아이는 그 후로도 몇 번을 '복수한다, 싸우고 싶다, 이기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때마다 아이가 그런 마음이 생긴 이유에 대한 물음보다 그런 행동은 그런 감정은 좋지 않다고 알려주었다. 그 이후 아이는 내 앞에서 더 이상 복수, 싸움 이란 단어를 꺼내지 않았다. 그래서 괜찮은 줄 알았다. 그런데 아이는 전혀 괜찮지 않았던 것이다. 엄마인 나만 괜찮다고 오해했을 뿐이었다.


그렇게 생각에 잠겨 불어 터진 라면과 차갑게 식은 김밥을 치우다 보니 다시 일터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마침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왔다. 아이는 불안한 듯 나의 눈치를 살폈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아이에게 다녀오겠다고 인사하고 집을 나섰다. 아이의 행동은 분명 잘못된 것이 맞지만 이번에도 잘못된 행동에 초점을 맞추면 안 될 것 같았다. 감정이 덮는다고 덮어지는 것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으면서도 엄마 마음 편하자고 아이의 감정을 인정해주지 않았던 것이 괜스레 미안했다.


퇴근 후 밥을 먹고 아이와 단 둘이 방에 앉았다. 아이는 쭈뼛거리며 방에 들어와 나의 눈치를 계속 살폈다. 엄청 크게 야단맞을 줄 알았는데 아빠 엄마가 아무런 말이 없어서 아마 많이 불안했겠지. 


오늘 학교에서 일이 있었다며?
네..
엄마랑 아빠한테 엄청 야단맞을 줄 알았는데 아무 말이 없어서 불안했어?
응..
선생님이 네가 너무 말을 횡설수설해서 이해하기 힘드셨대. 엄마한테 다시 차분히 이야기해 줄래? 야단치지 않을 거야. 왜 그랬는지 이유가 있을 테니까 말해줄래?
그러니까...


아이와 대화를 나누고 보니 역시나 그때 부정적인 감정을 제대로 해소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다. 아이가 직접 느낀 감정인데 그 감정을 엄마인 내가 받아주기는 커녕 그러지 말라고 그 친구가 그냥 장난을 친걸 수도 있다고 편을 들었으니 이 말을 들은 아이는 어떤 느낌이었을까. 서운했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이번엔 아이의 감정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아이가 한 행동에 대해서만 말해주기로 했다.


그래, 그때 그 일이 너는 많이 힘들었구나. 그 친구에게 복수하고 싶을 만큼, 그렇지?
응 맞아.
그래서 복수하고 나니까 기분이 어때?
별로 좋지 않아.
그렇구나. 왜 별로 좋지 않을까?
음.. 잘 모르겠어.
복수하기 전에 복수하면 기분이 어떨 것 같았니?
기분이 좋을 것 같았어.
그런데 실제로 복수하고 나니까 기분이 안 좋은 거네?
응.
네가 그 친구에게 느낀 불쾌한 감정을 해소하는 방법이 잘못돼서 그런 거야. 그래도 너는 이번 일로 굉장히 중요한 걸 깨달았어. 폭력을 써서 복수를 하면 나도 기분이 나빠진다는 거. 그렇지?
응.
그럼, 오늘 네가 한 행동은 잘못한 걸까? 잘한 걸까?
잘못한 거예요.
맞아, 잘못한 거야. 아주 많이 잘못했어. 아무리 분하고 그래도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쓰는 행동은 아주 잘못된 거야. 다음에도 또 이런 일이 생기면 안 돼. 알았지?
네. 절대 없을 거예요.
그래 그래~ 잘못된 행동이란 걸 알았고, 좋지 않다는 것도 깨달았고 앞으로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으니까 이제 됐어.
네, 엄마~


아이는 자기도 모르게 친구를 깨물고 난 후 정신을 차렸을 때 자신을 쳐다보는 친구들의 시선과 손등을 물린 친구의 아파하는 모습을 보며 당황했겠지. 그리고 선생님에게 불려 가 왜 그랬는지 설명을 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불안을 느끼고 아빠 엄마에게 야단맞을 생각에 두렵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냈으리라. 자신이 한 행동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를 경험했으니 앞으로는 조심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거다. 모쪼록 그랬으면 좋겠다.


이 또한 다 크는 과정이리라.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겠지. 정신 단디 차리자.




이미지 출처 : Photo by. Janko Ferlič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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