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사랑과 전율의 배신, 운명적 서사 25편
처음 오페라를 보게 된 건 13년 전으로 큰 아이를 임신하고 있을 때였다. 오페라 티켓은 시동생이 건네준 것이었는데 제목도 장소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오페라 시작 후 30분 만에 지루함을 참지 못하고 극장을 나왔기 때문이다. 이후 오페라는 어렵고 지루하고 재미없는 공연이라는 인식을 갖게 됐다. 그리고 기억 속에서 차츰 사라져갔다. 잊고 있던 '오페라'에 대한 추억을 다시 떠올리게 된 건, 오늘 소개 할 <방구석 오페라>라는 책을 읽고 오페라에 대한 선입견이 나도 모르게 허물어졌기 때문이다.
이서희 ㅣ문화콘텐츠 전문작가. 과거 홀로 떠난 호주 여행에서 처음으로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공연을 접한 저자는 오페라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와중에도 어느새 눈물이 가득 고이는 혼돈과 감동을 함께 느꼈다. 이후 이끌리듯 오페라를 찾아다녔고 저자에게 오페라는 파도 파도 끝이 없는 감동의 우물 그 자체였다. 명작 오페라의 기원부터 수많은 오페라 아리아를 탐독하며 쌓은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사랑을 둘러싼 숙명적 서사의 오페라 25편을 알기 쉽게 한 권의 책에 담아냈다.
뮤지컬이 개인의 꿈과 사랑의 드라마를 노래한다면, 오페라는 역사나 인생의 역경을 표현하는 문학적인 줄거리를 노래합니다. 다채로운 매력으로 완전한 문학적 서사를 펼치는 무대. 성악가의 육성으로 전해지는 '오페라'에서 경험할 수 있습니다.
- 방구석 오페라 프롤로그 발췌
책의 차례를 살펴보면 책을 집필하게 된 계기와 어떻게 책이 읽히길 바라는지에 대한 내용을 담은 '프롤로그'와 오페라를 잘 즐길 수 있는 배경지식이 될 '오페라 용어 해설' 그리고 25편의 오페라를 5개의 파트로 나누었고, 마지막 '에필로그'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오페라의 뜻과 구성요소 그리고 전문용어에 대한 해설을 담은 '오페라 용어 해설' 부분은 책의 호감도를 크게 높여주었다.
방구석 오페라의 본문은 '오페라의 문학적 스토리 - 메인 뮤직의 가사 - 메인 뮤직 리스트 - 오페라 대표곡 감상 QR코드' 이렇게 4개의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해당 오페라를 관람하기 전 배경지식을 쌓기 위해 활용하면 아주 좋은 가이드가 될 것 같다.
우리의 인생은 하나의 반복되는 흐름과도 같습니다. 행복할 때도 있고, 괴로울 때도 있죠.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할 때도 절정과 이별을 경험하고, 때로는 상처를 넘어 다시 도전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사랑은 인생의 굴곡과 참 비슷한 것 같습니다. 사랑의 결과가 어떻게 맺어지건, 우리는 사랑 속에서 인생도 사랑도 반복되는 흐름의 연속이라는 한가지 배움을 깨우치니까요.
'방구석 오페라' 에필로그 중에서
처음에는 순서대로 읽었는데 문득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내용이 있는 오페라를 먼저 읽어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전혀 모르는 오페라를 읽는 것보다 어떤 형태로든 정보가 있는 오페라로 시작해보는 것이 책과 오페라를 더 즐겁게 느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선택한 오페라는 다섯 번째 파트 '소신과 가치를 지켜내며'에 있는 작품인 <파우스트>다. 고등학교 시절 호기롭게 구입했던 고전문학 파우스트는 좀처럼 넘어가지 않는 페이지에 고전하다 결국 포기하고만 작품이다. 약간의 흥미를 얻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단 생각으로 '방구석 오페라'의 <파우스트>를 읽어보았다.
늙은 철학자이자 과학자인 파우스트가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의 거래로 젊음을 얻게 된다. 이후 파우스트는 메피스토펠레스의 마법으로 순수한 영혼을 가진 아름다운 여인 '마르그리트'와 사랑하게 되나 자신의 욕망과 탐욕, 책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마르그리트'를 저버린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마르그리트의 오빠 '발렌틴'이 파우스트를 찾아와 결투를 벌이다 죽게 된다. 오빠의 죽음을 알게 되고 미쳐버린 마르그리트는 파우스트와 사랑을 나눈 결실인 아이를 살해하고 파우스트를 저주하며 숨을 거둔다. 파우스트는 그간의 대가로 결국 지옥에 끌려가게 되는 비극적인 이야기다.
오페라 <파우스트>는 독일의 전설적인 파우스트를 배경으로 한 초자연적 비극입니다. 파우스트의 전설을 각색한 오페라는 16편에 이르는데 그중 구노(Charles Gounod)의 작품이 가장 성공적이었습니다.
평생을 진리 탐구에 매진한 철학자와 그의 영혼을 탐내는 악마, 순수하고 헌신적인 사랑을 보여주는 마르그리트. 이들의 성격과 심리는 노래 속에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방구석 오페라' p.299~300 <파우스트> 중에서
아래는 책 속에서 소개하는 파우스트의 대표곡으로 'Walpurgis'(발푸르기스)다. 해당 곡의 장면은 발렌틴의 죽음을 알고 미쳐버린 마르그리트가 자신이 파우스트와 가졌던 아기를 살해, 사형을 선고 받은 후 감옥에 갇힌 후 벌어지는 이야기에 대한 것으로 보인다. 대표곡을 좀 더 깊게 감상하기 위해 검색을 좀 해보았다.
발푸르기스의 밤은 5월 1일의 전날 밤으로, 이 날 밤에는 마녀들이 하르츠 산맥의 최고봉인 브록켄 산에 모여서 하룻밤을 지낸다. 마녀들의 합창소리 가운데 파우스트와 악마인 메피스토텔레스가 올라 온다. 파우스트는 황폐한 산의 무시무시한 분위기에 사로잡혀 따라온 것이다. 메피스토펠레스가 "여기는 나의 궁전이다. 내일부터는 내가 말하는대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므로 오늘의 향연을 베풀어 준다"고 파우스트에게 말한다. 이후 7곡의 아름다운 발레음악이 전개되면서 요염한 자태로 파우스트를 도취시킨다.
누비아 여인의 춤
클레오파트라의 금잔
트로이의 여인들
변주곡
제2변주곡
제3변주곡
프린의 춤
* 발푸르기스의 밤 (Walpurgisnacht)은 8세기 프란차의 수녀원장이었던 성 발푸르가 (c. 710-779)의 축일 (5월 1일) 전날 밤이 바로 '발푸르기스의 밤' 혹은 '마녀의 밤'이라 부르는 전통 축제일이다. 4월 30일 밤에는 자정만 지나면 바로 봄이 시작되는 5월 1일로서, 메이데이 (노동절) 휴일이므로 밤새도록 춤과 모닥불을 곁들여 즐긴다. 독일 민간전승에 의하면, 이날 밤에 중부 독일, 베르제 강과 엘베강 사이에 숲으로 덮힌 하르츠 산맥의 최고봉인 브록켄 산에서 마녀들이 모여 축제를 벌인다고 생각하고 그 밤을 <발푸르기스의 밤>이라 불렀다. (출처 : 샤를 구노 / 오페라 '파우스트' 제5막 중 '발푸르기스의 밤' 장면)
'발푸르기스의 밤'은 파우스트가 마르그리트의 오빠 발렌틴을 죽이고 브로켄산으로 도망가 경험하는 관능의 밤이다. 반면, 신앙심이 깊던 마르그리트는 파우스트를 만나 나락으로 떨어져 내리며, 급기야 영아 살해범이 되어 처형당한다. 근세 초기부터 18세기에 이르기까지 영아 살해범은 악마와 결탁한 마녀라는 통념으로 인해 마녀사냥의 희생을 피할 수 없었고, 이를 이론적으로 정립한 책이 '말레우스 말레피카룸'이다.
괴테는 1800년경 이 책을 참조해 '발푸르기스의 밤'을 구상함으로써 마르그리트의 비극을 통해 영아 살해범에 대한 당시의 통념에 문제를 제기하고, 마녀사냥의 잔혹성을 폭로함은 물론, 종교재판과 마녀사냥을 촉발한 기독교와 남성으로 대변되는 성적인 폭압과 사회의 구조적 악을 비판하고 있다. (출처 : 「발푸르기스의 밤」과 마녀 - 괴테의 「파우스트 1부」를 중심으로)
여기까지 <방구석 오페라> 책의 리뷰를 써보았다. 책을 읽으면서 오페라에 대한 지식이 늘었고 어렵고 멀게만 느껴진 오페라에 가깝게 다가갈 계기가 되었다. 대표곡을 감상할 때 처음엔 낯설어 어리둥절했지만 어떤 장면을 묘사하고 있는지 검색하여 스토리를 알고 다시 보니 처음과 달리 인물들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이처럼 <방구석 오페라는> 나처럼 오페라에 문외한 사람도 흥미를 얻을 수 있는 오페라에 입문하기 전에 읽으면 아주 좋은 교양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으나 솔직하게 작성한 포스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