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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미 May 31. 2021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한 세 개의 스위치


나는 나의 일보다는 내가 더 중요하고 나의 가족들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한 번도 일 자체가 목적으로 있었던 적은 없었다. 그래서 늘 자신의 일을 위해서 총력을 다해 집중하고 몰입하는 사람에게 부러움을 느꼈다. 그들은 내게 동경의 대상이고 내가 가질 수 없는 탄탄한 전문성과 이를 관통하는 화려한 커리어를 갖고 있었다. 이에 비하면 나는 참 별 볼일 없는 평범한 직장인이자 엄마일 뿐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과연 내가 바라보는 대로 일을 목적으로 두고 살아가는 것일까? 그저 그들은 자신이 세운 목적을 향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 일이 필요한 것이고 그래서 일과 목적이 일치되어 보이는 것은 아니었을까? 이렇게 생각하니 나와 그들은 각자 서로 다른 길을 따라 자신만의 삶을 사는 것이라 여겨진다.


나는 직장에서 모나지 않고 주어진 일은 최대한 손부끄럽지 않게 하며 이에 대한 보수를 받으며 살아가는 월급쟁이다. 자신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보았을 때 사업가의 기질이 있다거나 어떤 조직에서 개혁을 하는 역할에 맞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내가 받은 월급으로 내가 좋아하는 커피빈에 가서 고민하지 않고 원하는 커피를 사서 마시는 것, 직장 후배들에게 힘내라고 커피 한 잔 사주는 것, 아이들이 먹고 싶어하는 음식을 사줄 수 있는 정도면 괜찮은 삶인 것 같다. 너무 욕심 없는 사람 같아서 발전이 없어 보일 수 있겠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에 한해서 부릴 수 있는 욕심은 부리고 산다.


아니다, 나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왜냐하면 일과 육아 어느 것 하나도 놓을 생각이 없다. 둘 다 하고 싶다. 왜냐하면 위에 적은 소소한 욕심을 부리려면 최소한 내가 내 힘으로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직장을 그만 두어 일을 멈추는 순간 나는 사라지고 엄마밖에 남지 않을 것 같은 불안함이 나를 계속 일터에 남아 있게 만들었다.


그래 맞다. 나의 목적은 '나를 잃어버리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렇기에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오롯이 나의 행복과 만족을 위해서 말이다.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과 가정에서 쓰는 에너지를 균형있게 써야한다. 자칫 잘못하면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져 사랑하는 나와 내 가족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워킹맘의 워라밸을 지키기 위한 비장의 무기인 세 개의 스위치를 만들었다.


1번 직장인 모드

2번 엄마 모드

3번 온전히 '나' 모드


1번 직장인 모드 스위치는 당연히 일터에 가면 켜진다. 정확히 말하면 아이들을 등교, 등원 시킨 뒤 회사로 가는 지하철을 타는 순간부터다. 그리고 회사 근처에 다다르면 가까운 커피빈에 들어가 커피를 사서 한 모금 물어 예열한다. 퇴근 전까지 이 스위치는 켜져 있다.


2번 스위치는 회사를 나와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는 순간 켜진다. 만원 지하철에 몸을 싣고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집으로 향한다. 집에 들어가서 아이들의 얼굴을 보는 순간 기분이(잠깐) 좋아진다. 그리고 엉망으로 어질러진 집안을 보며 한숨, 대충 치우고 저녁을 먹으며 아이들의 학교 생활과 유치원 생활에 대한 이야길 듣는다. 식사를 마치면 첫째의 과제를 챙기고 둘째의 조잘거림도 들어주며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켜져 있다.


3번 스위치는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고 난 다음, 다음 날 준비물들을 챙기면서 켜진다. 보통 밤 12시부터 2시 사이 쯤 되겠다. 맥주를 마시거나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는 등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잠이 들면 꺼진다.


이 스위치는 2017년 4월 초에 만들어서 쓰기 시작했다. 스위치를 만들게 된 계기는 우연히 읽게 된 하나의 글 덕분이었다. 당시의 나는 복직 한지 6개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벅찬 일 앞에서 자신감을 잃고, 두 아이를 키우는 스트레스에 괴로웠다. 내가 과연 일을 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나만 그만 두면 모두 행복할 수 있는걸까, 그렇다고 일을 그만두는 것은 죽어도 하기 싫단 생각에 둘러싸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답답해 하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당신은 잘하고 있어요" 어느 워킹맘 은행 임원의 조언 이란 글을 읽게 되었는데, 세 가지 조언 중에서 첫 번째 조언인 "스위치 끄고 켜기를 잘해라"가 내 삶에 매우 큰 영향을 끼쳤다. 내 삶에도 적용하고 싶어서 그녀의 조언대로 세 개의 스위치를 만들고, 여러 시행착오와 관찰, 연구를 통해 내게 딱 맞는 스위치를 갖게 되었다. 이 스위치 덕분에 세 개의 자아(직장인, 엄마, 나)가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예기치 않게 찾아온 그 놈, 코로나가 찾아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출처 : Photo by Karim MANJR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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