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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미 May 31. 2021

삐빅! 스위치가 망가졌습니다.


2020년 1월 쯤이었다. 아침 출근 준비를 하던 중에 TV를 보다가 중국 우한 바이러스에 대한 뉴스를 보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 바이러스가 나에게 새로운 일상을 가져올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금새 끝나리라 생각한 것과 달리 상황은 악화되고 있었다. 이로 인해 개학일이 계속 미뤄지면서 나는 아이들 케어를 위해 연차를 모두 소진해버린 상태가 되었다. 몇 주 간 고민하다가 용기를 냈다. 회사에 한시적 재택 근무 요청을 말한 것이다. 다행히 나의 요청은 받아들여져서 일을 하면서도 아이들 케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재택 근무 시작 당시에 나는 이 기간이 한 달, 길게는 두 달이면 끝날 것이라 생각하고 거실 한켠에 있는 식탁 위에 맥북을 두고 식탁 의자에 앉아서 업무를 보았다. 당시 회사 홈페이지 신규 리뉴얼 작업이 진행 중이라 업무량이 제법 있는 편이었지만 그래도 그동안 내가 해 온 일정보다 며칠 더 잡았기에 무리 없이 진행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아이들과 함께 하루 종일 지내다 보니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질이 매우 떨어지게 된 것이다.


한창 성장기에 있는 아이들은 삼시 세끼 골고루 잘 먹어야 한다. 어디 세끼만 먹는가? 간식도 먹어야 한다. 아침 차리고 치우면 곧 점심 시간이다. 점심 먹이고 일을 좀 하려면 어느 덧 저녁 시간이 다가온다. 중간 중간 간식거리는 알아서 챙겨 먹게 한다고 해도 하루 세끼를 차리며 일을 한다는 것은 정말 불가한 일이다. 게다가 이 아이들은 에너지가 넘쳐서 서로 죽이 맞을 땐 좋아서 어쩔 줄 모르다가도 싸울 땐 철천지 웬수마냥 싸워댄다. 정말 시끄럽다. 아주 많이.


이렇게 혼이 쏙 빠지는 하루를 보내고 내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잠들고 난 밤이다. 일정을 맞춰야 하는 업무일 땐 정말 세 끼를 배달을 시켜먹은 적도 있다. 이 마저도 치워야해서 일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낮에는 아이들 치닥거리를 하고 밤에는 업무를 보고 이 생활이 두 달쯤 되던 어느 날, 나는 혼잣말을 뱉었다.


하.. 미칠 것 같아. 숨막혀.. 다 그만두고 싶다.



나는 그동안 나의 행복과 만족을 위해서 일을 하고 있었기에 일이 힘들어서 투정은 부릴지언정 그만두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나는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맛있는 걸 먹고 나면 회복되고, 한숨 자고 나면 괜찮아지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뱉었을 때 깜짝 놀랐었다. 대체 나의 무엇이 변했기에 이런 상황까지 온걸까?


나의 마음속에는 세 개의 스위치가 있다. 직장인과 엄마 그리고 온전한 나를 켜고 끄는 이 스위치는 일정한 루틴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다. 내가 일과 삶 속에서 균형을 잃지 않도록 지키는 비장의 무기라고나 할까.


1번 직장인 모드는 집에서 사무실로 가면서 켜진다.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 커피빈에서 커피 한 잔을 사는 것은 이제 일을 할 시간이라고 알리는 신호다. 사무실에 도착해 재즈나 클래식 음악을 틀고 업무에 집중하는 순간을 만든다. 이 루틴은 사무실에 출근을 해야 가능한 것이라 집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특히나 아이들이 함께 하는 시간과 공간에서는 말이다. 이렇게 1번 스위치가 제대로 눌리지 못하니 2번, 3번 스위치도 동작할 수 없게 되면서 세 개의 스위치는 완전히 망가져 버렸다.


이후 나의 일상은 균형을 잃고 무너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향해 악다구니를 쓰고 미친년 마냥 파르르 거리며 동동거리는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두려운 눈을 보았다. 하나의 스위치가 망가지니 다른 스위치도 덩달아 망가졌다. 아이들과 함께 집에 갇힌 그 순간부터 1번과 2번의 스위치가 마구 눌렸고 3번 스위치는 켜질 틈도 없었다. 극도로 예민한 상황에서는 여유를 가질 틈이 생기지 않아서 자꾸만 가장 사랑하는 상대에게 상처를 준다. 나와 가족들에게 말이다.


이대로는 정말 안되겠다.



출처 : Photo by Aarón Blanco Tejedor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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