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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미 Jun 03. 2021

망가진 스위치는 결국 고칠 수 없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래야해?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일도 육아도 무엇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무능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런 부정적인 생각이 내 마음을 파고들고 이로 인해 쌓인 스트레스는 온전히 아이들을 향해 쏟아졌다. 날카롭게 소리치고 매몰차게 심한 말을 뱉어댔다. 그리고 밤이 되면 낮에 했던 말과 행동을 후회하며 나를 향해 날카로운 말을 꽃아 댔다. 아프고 아팠다.


그날은 유독 힘든 날이었다. 나흘 동안 야근으로 새벽까지 일을 하여 피로가 누적되어 있어 심적인 여유도 없던 그런 날이었다. 큰 아이의 학습 꾸러미 과제를 돕던 중이었는데 아이는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았는지 재차 물어보았다. 세 번째 질문이 들어온 순간 나의 이성은 탈출해 버렸다. 나는 벼락같이 화를 내며 매몰차고 심하게 날카로운 말을 뱉었다. 그리고 또 아이의 등짝을 세게 후려치고 말았다. 아이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울먹였다. 그리고 두려움과 분노가 서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이의 그 순간의 표정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저 모르는 것을 물어본 것뿐인데 처음 배우니까 능숙하지 못한 것이 당연한 것인데 그날의 나는 내가 봐도 참 너무했다. 아이에게 부끄럽고 미안했다.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아이를 바라보며 나도 같이 울었다. 그리고 사과했다. 아이는 내 사과를 선뜻 받아주었다. 그리고 이내 나를 보며 헤헤하고 웃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 잠든 아이들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살짝 감은 눈, 동그랗고 오뚝한 콧날, 오물오물 귀여운 입까지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지금보다 아이들이 더 어렸던 시절의 모습이 겹쳐졌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던 한 살, 두 살 때의 모습들 말이다. 키우던 그 당시의 나는 힘겹고 버겁게 보냈지만 지나고 보니 아이들의 가장 예쁜 모습만 떠올랐다.


언제 이렇게 커버렸을까. 매일을 부대끼는 나의 아이들인데 그날따라 갑자기 부쩍 커버린 아이들의 모습에 아쉬움을 많이 느꼈다. 감정이 올라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눈물을 도로 삼켜내고 씻기 위해 욕실로 향했다.


세수하려고 세면대 앞에 섰는데 거울 속의 모습에서 눈이 떨어지지 않았다. 생기를 찾아볼 수 없는 푸석한 피부의 얼굴, 아무렇게나 묶어 올린 산발머리, 살이 쪄서 피둥피둥해진 몸뚱이를 한 내가 서 있었다. 눈물이 왈칵 났다. 거울 속의 내가 나라는 사실이 슬펐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도망치고 싶어서 울었다.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알 수 없어서 하염없이 울었다. 혹여 아이들이 들을까 봐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시퍼렇게 멍이 든 가슴을 부여잡고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그날 이후 코로나 이전의 기록들을 보는 것이 취미가 되었다. 아이들과 함께 마스크 없이 다녔던 거리, 동료들과 소소하게 식사를 즐겼던 시간, 가족들과 함께 다닌 여행 등 내일이라도 코로나를 잡을 백신이 개발되어 제발 이 고통스러운 나날이 끝나길 바랐다. 그렇게만 된다면 나의 일상은 나의 스위치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을테니까. 허나 나의 이 바람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세상은 내 뜻과 달리 이미 많이 변해버렸다.



출처 : Photo by Kat J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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