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속초가서 살까?

남편은 전략적으로 속초살이를 계획했다.

by 나미


사람 마음이란 것이 한번 돌아서면 걷잡을 수 없이 차가워진다. 이 공식은 회사라고 별다를 것이 없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회사도 결국엔 사람들끼리 다니는 곳이니까. 회사에 다니게 된 이유도 그저 '좋아서'가 전부였던 단순한 나는 끝도 단순하기 그지없다. '싫어서'다. 과거에는 좋았던 것이 지금은 싫을 뿐이다. 앞으로도 좋아질 가망이 없기에 결국 끝을 냈을 뿐이다.


입 밖으로 꺼내면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아서 눌러왔던 말이 한 번 뱉어지니 걷잡을 수가 없더라. 생각에서 한 번 말하면서 두 번, 다시 곱씹으며 세 번... 겹겹이 쌓이는 스트레스에 눌려 남편에게 말해버렸다. 퇴사하고 싶다고. 정말 나 진짜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고. 이 말을 하는 순간에는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콩다방 커피 참아도 되니까 일단 숨은 쉬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나의 퇴사 선언을 들은 남편은 침착하게 너무 즉흥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한 번 더 생각해보라고 나를 다독였다. 즉흥적이긴 한데 꼭 그리 즉흥적인 것만은 아닌데. 그래 그럼 몇 달 더 생각해 보자 하며 꾸역꾸역 회사 생활을 이어갔다.


그렇게 몇 달 뒤, 다시 회사 일을 이야기하던 중에 남편이 내게 물었다.


"자기 회사 정말 그만두고 싶어?"

"어.. 그렇지? 지난번에 말했잖아, 퇴사하고 싶다고."

"그럼 일도 더 안 하고 싶은 거야?"

"음.. 일은.. 더 하고 싶다고 해도 내가 지금 상황에서 이직이 쉬울까.."

"자기 일한 지 얼마나 되었지?"

"나? 뭐.. 여기서만 13년 차니까, 일한 기간으로 따지면 더 됐지 뭐- 그래 봐야 자기보다 적을 텐데.."

"내 생각엔, 10년 정도 일하면 1년은 쉬는 게 맞아. 당신 좀 쉴 때도 됐어. 안식년처럼 말이지."

"안식년?"

"그래 안식년. 충전하는 시간이 필요해 당신한테도"

"흠.. 그것도 나쁘진 않네."

"그래서 말인데, 우리 아예 속초 가서 한 2년만 살다올까? 애들 어릴 때"

"응?? 속초오???"

"응. 나 꼭 퇴사하고 나이 들면 바다 근처에서 한적한 곳에서 살고 싶었거든. 서울 이제 너무 복잡해서 싫으네. 코로나도 심하고, 미세먼지도 뿌옇고 한 서울 떠나서 애들 어릴 때 맘껏 뛰놀게 공기 좋은 데 가서 살다오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어때?"

"아니.. 근데 왜 꼭 속초야? 연고도 없는데..."

"그냥.. 내가 어릴 때부터 이십 대까진 설악산에 자주 가서 그냥 왠지 속초가 땡기네"

"... 흠... 속초.."

"아파트 베란다 창 너머로 설악산 자락이 딱~ 보이는 거지, 매일 그 모습 보면 진짜 좋을 것 같아. 우리 딱 2년만, 2년만 살아보고 다시 서울 오자. 어때? 요즘 제주살이 뭐 이런것이 유행하잖아?"

"..... 그럼 뭐 한 번 알아보든가.."


건조한 대답을 흘리고 난 후 생각에 잠겼다. 그래 맞아, 남편은 결혼 후 이따금씩 '시골살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곤 했었지... 서울은 사람도 많고 북적이니 한적한 곳에 가서 살고 싶다며 말이다. 그때마다 나는 절대 서울을 떠나서 살 수 없다고, 시골에서는 답답해서 하루도 살 수 없다고 결사반대를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정신적으로 지치고 마음이 힘들어서 그런지 아주 살짝 '속초살이'란 단어가 내 마음을 흔들었다.


그 이후로도 남편은 꾸준히 내게 속초에서 살면 얼마나 좋을지 이야기했다. 바다가 가까우니 아이들이 자연에서 놀기 좋을 것이고, 공기가 맑으니 아이들 건강에도 좋을 것이며 한적하니까 안식년을 보내기에 적합할 것이라고 말이다.


퇴사 일을 회사에 말하고, 거주지를 정하고 새로 살게 될 곳을 직접 가서 둘러보면서 나도 서울을 떠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가장 어렵다는 마음의 준비를 말이다. 내가 이렇게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보는 것을 두려워 하는 이유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기간이 1년 정도로 꽤 길기 때문이다. 결혼 후 신혼집에서 그 이후 이사한 동네와 집에서도 각각 1년 정도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여기가 나의 집이구나 싶었기 때문에 속초에 가서도 나는 1년 동안은 마음이 붕 떠 있는 채로 지낼 것이 분명하다. 물론 겉으로는 매우 잘 적응한 척 보일 수 있고, 아무렇지 않게 행동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


이런 내 마음을 남편은 알까? 말하지 않으니까 모를 것이다. 왠지 억울한 마음이 들어서 함께 속초에서 살게 될 집 구경을 가는 날 말했다. 나는 새로운 곳에서 적응하기까지 1년이 걸린다고. 속초에서도 아마 같을 거라고. 알고 있으라고 말이다.


이게 뭐라고 말하기까지 10년이란 세월이 걸렸네.


그래 어차피 이왕 이렇게 된 거, 당신 좋아하는 설악산하고 바다 실컷 보면서 살아보자. 대신 꼭 2년 후엔 서울로 돌아오는 거다?!! 나중에 딴소리하기 없기야!!



31C12895-1956-4613-8B5B-764FCDF6AA94_1_105_c.jpeg 속초에서 살 새로운 '우리집'에서 바라본 설악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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