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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성 Jul 29. 2015

배우 김대명

내 친구 대명이

<미생>의 김동식 대리는 착하다. 공부는 못했지만. 누군가 외롭게 앉아 있는 것을 못 봤다. 옆에 와서 말을 걸어주고 엉뚱한 표정을 지었다. 최근 김동식 대리가 지은 갖가지 표정이 인터넷에 뉴스가 되기도 했는데, 김동식 대리의 그런 연기는 뭐랄까, 대명이 자신이다. 

김동식을 연기한 배우는 김대명(33)이다. 대명이는 원래 그런 표정을 잘 지었다.대명이와 나는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다. 2학년 때 짝이었다. “왜그냐아.” 이 말은 대명이의 대명사였다. 나는 대명이가 “왜 그러냐”며 위로해준 ‘외로운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사실 대명이의 위로는 썩 힘이 되지 않았다. 나는 더 울컥해서 대명이에게 화풀이를 하곤 했다. 대명이는 웃었고, 나는 가까스로 기분이 좋아졌다. 대명이는 어른이었고 나는 그저 고등학생이었다.

올봄 집에서 브이오디로 영화 <표적>을 보고 있는데 어리바리한 인상의 형사가 나왔다. 그런데 그의 상사인 형사가 죽자, 이 형사는 낙심, 분노, 체념의 표정을 동시에 지어 보였다. 그러나 나를 놀라게 한 건 그 형사의 정수리였다. 위에서 내려다본 머리는 숱이 별로 없이 접시처럼 동그랗다. 낯익은 정수리의 기억을 더듬다가 알았다. 대명이다! 다음날 나는 연기를 하는 후배에게 전화를 걸어 대명이의 연락처를 수소문했다.


“어, 우성이냐?” 


대명이는 어제 통화한 친구처럼 내 이름을 불렀다. 내 번호 가지고 있구나. 새삼 ‘우리가 사실, 오랜만에 통화한다는 이유로 어색해할 사이는 아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걘 대명이고 난 우성이니까. 우리가 친하다는 뜻만은 아니다. 대명이는 원래 그런 애다. 만에 하나 김수현만큼 유명해져도 잘난 척이라곤 모르고, 거만해질 수가 없는, 먼저 믿고 먼저 다가가고 먼저 상처받는 친구다.

우리는 그날 낮에 압구정역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만나서 놀라운 얘기를 들었다. 하정우가 주연했던 영화 <더 테러 라이브>에서 목소리만 등장하던 테러범이 대명이였다. 대명이는 성균관대 연기예술학과에 입학하면서 대학로 무대에 서기 시작했다. 연극 <강풀의 바보>, 뮤지컬 <지하철 1호선>도 했다는 것을 보면 대학로에 이십대를 바쳤음이 틀림없다. 영화 <개들의 전쟁>에 이어 <방황하는 칼날>, <역린>에도 출연했다. 그런데 나는 그 영화를 다 봤는데도, 걔가 대명이인지, 동일 인물인지조차 몰랐다. 이쯤 되면 둘 중 하나다. 내가 바보거나, 대명이가 연기를 매우 잘하거나. 그런데 내가 아는데 나는 바보가 아니다.

그날 대명이가 <미생>에 대해 말해주었다. “<미생>에 나온다고? 네가?” “조연급이야.” 대명이가 말했다. 나는 대명이를 안아주고 싶었는데 걔가 여자가 아니라서 가만히 있었다. 대명이는 아무 기대 없이, 심지어 낙담한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하기로 했는데, 최종적으로 답을 안 주네. 그쪽도 나에 대해 확신을 못 갖는 거겠지?” 그날 대명이의 표정과 말투는 나를 슬프게 했다. 


“우성아, 나는 기대를 안 가져. 작품 하나 들어갈 때마다 내 기대는 밑바닥에서 더 땅을 파고 내려가. 나는 거기에서 뭐든 시작해.” 


도대체 대명이는 어떤 삶을 살아온 걸까? 고등학생 때 같았으면, 아, 씨발, 어떤 놈이 괴롭혔어? 라고 따져 물었을 텐데, 대명이도 나도 이제 그렇게 행동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다. 무명이라는 단어, 그 고통을 짐작할 상상력이 내겐 없다. 또한 위로는 말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을 만지는 일은 오직 마음으로만 가능하다. 나는 대명이가 어릴 때 나에게 지어 보였던 표정을, 대명이에게 지어주고 싶었다. 팔이 안으로 굽어서 그런지 요즘 <미생>을 보면 대명이가 주인공 같다.

헤어질 때 대명이가 말했다. “기다려. 같이 가자.” 연예인들이 타는 커다란 차가 카페 앞으로 왔다. 대명이는 나를 차에 태우고 매니저에게 말했다. “내 친구야. 우리 가는 방향에서 조금만 돌아가도 되지?” 나는 대명이랑 같이 큰 차를 타고, 압구정역에서 을지병원 사거리를 지나 신사역까지 갔다. 그날 저녁 대명이는 <미생> 김동식 대리 역으로 확정되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남의 것에 욕심내지 않던 친구, 싸움이라곤 걸어본 적 없는 친구, 그래서 늘 약하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긴 밤의 시간을 지나 여기에 와 있다.



2014, 11, 05

이우성, 한겨레 esc 


: 대명이는 연락이 없다. 영화를 3개나 찍고 있다. 

: 문득 전화를 건다. "새 책 나온 거 보냈어? 아직 못 받았어. 잘 팔려?" 라고 묻는다. 

: 갑자기 이 인터뷰가 떠올랐다... 외로워서 그런가. 친구야, 잘 있니. 

: 바빠도... 너가 잘 되는 게 내 기쁨이야. 우리 또 오래 못 만날 것 같구나. 옛날과는 다른 이유로. 

: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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