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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성 Oct 26. 2015

미술가 김영진




 

‘좋아서 하는 인터뷰’를 1년 넘게 연재하고 있다. 그동안 시인도 인터뷰했고, 소설가도, 축구선수도, 배우도, 미술가도 인터뷰했다. 대체로 좋은 사람들이었는데, 몇몇은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예를 들면 어떤 시인은 그가 쓴 시보다 훨씬 좋은 사람이었다. 어떤 미술가는 그가 그린 훌륭한 그림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작품보다 인간으로서 그들이 품고 있는 풍경에 대해 쓰고 싶었다.              

연재를 시작할 때 가장 먼저 인터뷰하고 싶었던 사람은 미술가 김영진이다. 그동안 안 하다가 이제야 김영진을 인터뷰한 이유는 간단하다. 그는 내세울 게 없었다. 그는 그림을 그린다. 하지만 회화를 전공하지 않았다. 디자인 회사에서 일했고, 회사를 그만둔 뒤엔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렸다. 그의 말을 빌리면 “제 그림을 그렸다기보다는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그림”을 그렸다. 나는 작가란 독립된 세계를 가진 이를 부르는 단어라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일러스트레이터 중에도 훌륭한 작가들이 있다. 하지만 김영진은 자신을 작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밤에 거실 스위치를 끄듯 그 생활을 끝냈다. 그때가 서른한 살 즈음이었던 것 같다. 지금 그는 서른다섯 살이다.               

그는 작업실에 들어가 매일 그림을 그렸다.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하듯 매일. 금자와 함께. 금자는 그의 강아지다. 그리고 전시를 시작했다. 갤러리나 미술관이 아니라, 카페나 유명 가구 매장에서. 사실 그에겐 아무도 없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으나 그를 아는 사람도 그가 아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니 큐레이터들이 그의 그림을 보러 오거나 미술가들이 그의 그림을 보러 올 일도 없었다.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그저 우연일 뿐이다. 그런데 우연이, 정말 이루어졌다. 작년에 김영진은 서울 평창동의 한 카페에서 드로잉 작품을 전시했다. 마침 한 갤러리 (전) 관장님이 근처를 지나가고 있었다. “슬리퍼 신고, 평상복 차림으로 산책하다가 들어오신 것 같아요. 작품을 보시더니 다음에 같이 전시하자고 하시더라고요.”                             


지금 김영진은 서울 인사동 관훈갤러리에서 개인전을 하고 있다. 내가 말했다. “첫 개인전이라고 봐도 될까?” 관훈갤러리 정도면 이력서를 쓸 때 한 줄 넣기에 훌륭하니까. “첫 개인전은 아니에요. 제 그림이 어디에 걸려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림은 전시장에만 걸리는 것이 아니잖아요. 갤러리에서의 첫 전시일 뿐이에요.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으려고 해요.”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는 건 나다. 이 부분에 대해선 할 말이 많지만 가슴속에 묻어둘 거다. 나라고 미술가들의 자유로운 의지를 지지 안 하고 싶겠어?              

김영진과 함께 그림을 봤다. 분명히 김영진의 그림이다. 누구나 따라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조악한 선들이 그의 그림을 이루고 있다. 만화 같고 일러스트 같고, 또 어떤 건 망친 그림 여러 개를 커다란 볼에 넣고 마구 반죽을 낸 후 캔버스에 바른 것 같다. 김영진이 이 글을 보면 따지러 오려나? 그럴 이유가 없다. 나는 칭찬을 하고 있으니까. 뭐, 나한테 칭찬 들어봤자 아무짝에도 쓸모없지만.               

김영진은 ‘개념’이 멋지다. 저 그림이 어떻게 불쑥 캔버스 위로 튀어나왔는가, 그것이 개념이다. 나는 김영진이 자신도 모르게 어떤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본능적으로, 어떻게 회화가 탄생하는지 탐색한다. 예를 들어 선 하나를 그린다. 미술을 열심히 배운 사람들은 아마 그 선을 아무렇지 않게 그릴 것이다. 당연한 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영진에게는 그 선이 당연하지 않다. 그는 선 하나를 긋기 위해 선은 무엇이며, 지금 이곳에 선을 왜 그어야 하는지 생각할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그는 그 선을 그리지 않을 것이다. 김영진이 평창동의 한 카페에서 드로잉을 전시했을 때 나는 이런 글을 쓰고 싶었다. 사람들이 그의 드로잉 작품을 보고, 그를 드로잉을 아주 잘하는 다른 누군가와 비슷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오만을 광고하고 싶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그의 운명을 조금 더 지켜보고 싶었다.               

김영진과 나는 갤러리 1층 카페로 내려와서 커피를 마셨다. 가을이었다. 볕이 정말 좋았다. “창작레지던시 같은 걸 신청하면 어때? 선정돼서 입주하면 큐레이터나 평론가들을 만날 일이 많아질 거야. 그럼 네 그림도 더 많이 알려질 거야.” 그는 별말을 안 했다. 부끄러운 표정을 지었다. 남자 둘이 앉아 있는데 남자 한 명이 부끄러운 표정을 지으니까, 민망했다. 그는 나중에 메일을 보냈다. “저는 미술이라는 산을 오르고 있다고 생각해요. 오르고 있는 산의 맞은편 풍경이 궁금하다고 지금 오르고 있는 길의 풍경을 등지고 싶지는 않아요.” 바보같이 왜 눈을 마주 보고 말을 못 해! 이렇게 예쁜 말을 왜, 메일로 보내는 거야! 하지만 나는 말이 없는 그가 좋다. 물론 친구로.               

“이번 전시는 차별과 억압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어요. 전시명 ‘어 초이스 오브 웨펀스’(A CHOICE OF WEAPONS)는 미국의 흑인 사진가 고든 파크스의 서적에서 차용한 거예요. 그는 흑인 인권 운동의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했어요.” 동시대성에 대해 묻고 싶긴 했다. 하지만 묻지 않고도, 김영진이 말하는 ‘차별과 억압’은 동시대에 벌어지는 여러 불평등을 함의하고 있을 거라고 적을 수는 있다. 하지만 무의미하다. 지금 김영진에게 중요한 건 그림의 의미가 아니라 그가 더듬거리며 회화라는 산을 걸어가고 있다는 것, 그 행위 자체다. 회화를 탐구하는 자는 어떤 회화를 그리는가, 바로 이것이다.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는 방식은 다양하잖아요. 저는 계속 변해왔고 앞으로도 변할 거라고 생각해요. 변하지 않는 건 제가 미술을 하고 있다는 것이죠. 저는 평생 아름다움 속에서 살고 싶어요.” 이 예쁜 말도 메일로 보냈다.               

애초 계획된 전시 일정은 2주였다. 그런데 관훈갤러리에서 전시 중에 2주를 더 하자고 말했다. 그래서 갤러리에서의 첫 전시는 한 달로 늘었다(11월6일까지). 나는 누군가 김영진을 발견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지금 말고, 조금 더 천천히. 그가 금자와 둘이 걷는 길을, 그 운명을 조금 더 지켜보고 싶어졌기 때문에.               

그의 드로잉과 회화 속에서는 종종 장미셸바스키아가 등장한다. “바스키아가 무덤에서 나와서 이 전시를 보러 왔으면 뭐라고 말했을까?” 그는 웃었다. “잘 보았습니다”라고 했겠죠. “뭐라도 들을 수 있을까 싶어서, 그의 무덤까지 찾아갔던 날이 생각나네요.” 나는 더 묻지 않았다. 볕이 아주 예뻤다.                


이우성 시인 

한겨레 esc, 2015 10 22_이우성의 좋아서 하는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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